준장과 대위의 다른 점

by 임용 posted Feb 15, 2015 Likes 0 Replies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준장과 대위의 다른 점


우여곡절 끝에 훈련소의 훈련을 마치는 날
선임하사가 신상명세서를 작성하라며 용지를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신상명세서를 보고 필체가 좋은 몇 사람을 뽑아서
육군부관학교로 발령을 낸 것이다. 사실 나는 군의병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 때 같이 훈련을 마친 동료들은 육군부관학교로 가는 것을 최고의
특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다음이 군의학교로 꼽았는데 그 때는
그 이유를 잘 몰랐다. 그래서 경북 영천 옆에 단포라는 곳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부관학교 군의학교 병참학교 헌병학교가 울타리를 같이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인사행정반 317기로 8주의 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은 그 곳이 3사관학교 바뀌었다는 말만 들었다


그곳에서 배우는 것은 주로 사단 부관부에서 인사 행정에 대한 것과
초등 1학년 같이 글씨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군대 행정을 담당하는 모든 병사들은
판에 찍은 듯이 글씨체가 정자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은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 할 테니까 그런 과정이 없어졌겠지만
그 때는 모든 서류를 손으로 써서 작성하는 때였으니......

8주의 교육을 받아야 하니 안식일이 여러 번 걸리는데
다행히 첫 째 안식일에 교육을 거부했더니 부관학교장이
별이 하나인 준장이었는데 교장실로 불려갔다.


역시 지체가 높은 분이라 젊잖게 나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만약에 토요일에 이북에서 쳐들어오면 너는 예배만 드리고 있을 것이냐?
하고 질문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토요일 안식일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실 것이며 만약에 일어난다고 하드라도 하나님의 천사가 막아줄 것입니다.
라고 대답 했더니 그 분이 기가 막힌다는 뜻으로 허허 웃으시더니
안식일을 지키도록 허락해 주셨다.


중대장은 몽둥이로 개잡듯 했는데 역시 별은 다르구나......
이곳에서 8주의 교육을 마치고 3보충대로 발령이 났는데
이곳에서 머무르는 동안에 부관병과가 왜 최고의 병과인지
알게 되었다. 일반 행정은 700인데 부관 행정은 709로


전방 사단 부관부에서 나와서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골라가는데

나는 돈도 없고 신앙인으로 기도하며 처분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동료 대부분이 사단 부관부로 팔려가고 나만 21사단 보충대로 가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돈을 쓰고 빽을 쓰고 해서 사단으로 가면


비록 졸병이지만 직책이 직책이니만치 영관급들이 굽실거리고
생기는 돈도 많아서 시골집에 논밭을 사준다는 말도 들었다.
그 시절엔 그것이 사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단 보충대에서 66연대로 12중대 말단까지 내려갔는데
하필이면 중화기 중대로 간 것이다.


여기는 각 개인 앞으로 M1소충이 지급되고 66㎜ 박격포를
세 사람이 총열 총받침 총대를 하나씩 분담하여 훈련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훈련소에서부터 집총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던 터라 박격포까지
라는 데서 굉장한 거부감도 있었고 가자마자 중대장에게 신고하면서


안식일 문제를 언급했더니 중대장이 부대 군목을 불러서 상담을 시켰는데
이 무식한 중위 목사는 재림교회를 무슨 사이비 종교로 보며
무조건 일요일에 교회로 나오라고 하고는 가버렸다.


이어 닥친 안식일 아침 식사를 끝내자마자
성경 찬미가 과정책을 챙겨 조금 높은 산에 있는 군교회로 갔다.
혼자서 기도하다 울다 성경 보다 찬미하다 하면서 해가
질 때까지 있었다.


그런데 한편 부대에서는 총 비상이 걸렸던 모양이었다.
임용 이놈 교회에 가려는 것을 못 가게 했더니 탈영했다며
부대원을 다 풀어서 온 천지를 찾아 헤맨 모양이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렇게 찾으면서도 교회는 올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다.

해질 무렵 귀대할 준비를 하는데 선임하사가 헐래 벌떡 교회로
올라오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대단히 좋아하는 듯하더니


금방 돌변하여 나를 잡아끌다시피 하여 부대로 갔는데
중대원들이 하루 동안 찾아 헤맨 고통이 나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변하여 도열하여 있었다. 순간 나는 죽었구나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안식일 피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중대장은 부대원들의 분노를 대변이라도 하듯
엎드려뻗쳐를 시킨 상태에서 떡메로 떡을 치듯 엉덩이를
수도 없이 내리치더니 그래도 분이 덜 풀렸는지 선임하사에
인계하여 또 때렸다. 그 일로 실신도 하고 여러 날을 앓아야 했다.


조금 움직일만 할 때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빨리 끝내고
연대 인사계 담당 상사를 찾아가서 의무중대로 발령 내줄 것을 호소했다.
성경에 돈 없는 과부가 재판장에게 계속 호소하니 귀찮아서


들어주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귀찮으면 들어주겠지 하는 심정으로
하루 세 차례 찾아가서 호소하니 “지독한 새끼구먼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의무중대요” “알아서 가 있어”


2일인가 기다려도 아무 일이 없기에 또 찾아갔더니
  “이 새끼 며칠을 못 참아” 하면서 쪼인터를 깠는데 죽는 줄 알았다.
그 다음 날로 의무중대로 발령을 받아서 의무중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의무대에는 총이 지급되지 않았고
보초용 카빈 소총 한 자루만 부대에 비치되어 있었다.


중대장은 군의관으로 중위였는데 사람이 참 좋았다.
사람을 치료하고 살리는 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다음에서는 놀라운 기도의 응답 평생 앉은뱅이로 살 뻔 했다.
올리겠습니다. 마라나타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