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안식일의 일기

by fallbaram posted Mar 03, 2015 Likes 0 Replie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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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류시화)


소금이

예수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교회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위에서

흰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로 사랑이란 걸

아는 신자들은

많지 않다

그 사랑이 있어

교회의 모든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가을바람)


한두주전에

새벽성서학교를 계획하고 시작하신

연로한 장노님이 오셔서 한주말 내내

"그러면 그렇지" 의 남은무리

"그러면 그렇지"의 영원한 복음

"그러면 그렇지" 의 이천삼백주야를

열강하셨다.

늘 그렇게 믿고 살아온 우리지만 그분의 강의 때문에

 이런 남은교회의 빛이 어디에서도

읽고 구할 수 없는 진리(?)가 되어 그 진리에

갇혀사는 (?) 냉냉한 우리들이 다시한번 그 냉냉한 믿음(?)의

확신을 동여메게 되었다.

새벽성서학교 등록자도 많이 늘어 났다.


그리고 한주일이 지나서 무슨일로

늦어져서 허겁지겁 교회로 갔더니

영어부와 국어부가 함께 예배하는 날이어서

찬양대 연습이 없으니 교사들이 충분한 공부를

지도하라는 지시가 내려진다.


매번 십분정도의 시간밖에 없어서 과정공부를

그 시간에 요약하는 실력 아닌 실력이 이미 생성되었는데

이번엔 삼십오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오랫만에 내 마음에 있어왔던 부담을 털어내고

마치 오늘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강의인것처럼

눈물같은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진리라는 명제를 놓고 신앙인에겐

세가지의 방향이 있어 보인다.


알고자 하는 방향

지키고자 하는 방향

그리고 행하고자 하는 방향


알고자 하는 방향은 지식에 머무르는 방향을 말한다

지키고자 하는 방향은 율법적 방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하고자 하는 방향은 어떻게 살라고 부탁하신

그리스도의 부탁하신대로 살아가는 복음적인 방향을 말한다


시작부터 뜬금없이 성경을 들고 이것이 진리냐 아니냐를 물었다.

질문이 이상하게 나오니까 눈치가 발달된 이들이 입을 굳게 다문다.

성경도 진리고 우리에게 따로 주어진 수많은 종류의 책(?)도 진리고

또 교단의 석학들이 다듬어 올린 이십팔개의 교리도 진리라고

생가하는 이들에게 다 이런것들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라는 대답을 하고는 두번째 질문으로 달려갔다.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안식일 교회와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장노교회가

맞은편에 있는데 두 교회중에서 더 뜨겁고 열성이 있는 교회가 있다면

우리의 선택이 무엇인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날짜를 구분않고 더뜨거운

교회로 가고싶다고 했다.


뜨겁다는 것 그 소금한덩어리 보다 못한 안식일의 진리가 무엇이며

사랑하며 살라고 부탁하신 그 눈물 한방울 보다 못한 이천삼백주야가 대체

무엇이며

내게 주어진 양들 (이웃 그리고 우리 교우들)에게 가까이 정말 살갑게\

눈빛하나로도 대접하지 못하면서 무슨 세천사의 기별은 또 무엇인가

우린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눈물을 내 비쳤더니 모두들 잠시나마

숙연해졌다.


그리고 결론부분에서 이런 말도 했다.

예수가 두분이신데

한분은 아버지께로 가신 승천하신 예수님이고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의

예수님이며 또 다른 예수는 내가 세상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는

성령하나님과의 합작으로 우리 마음에 계신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마음에 계신 예수와 함께 살므로 다시 오실 그분을 만나는 준비가

되는 것이지 하늘만 쳐다보고 날짜도 ㅁ모르는 마른 하늘만 바라봄이 재림준비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


우리끼리 (한 칠십명 정도 되는 교우) 먼저 뜨겁게 살아보자고 했다.

삼십년이 지나도 옆자리의 누구는 없어서는 안될 막역한 사이가 되지 못하고

삼십년이 지나도 서로간 주중에도 만나서 밥한끼 따습게 나누어 보지 못하는

얼음같은 마음으로 어디를 바라보고 예배를 드리는가? 라고 물었더니

모두들 고개를 숙인다.


소금이 진리인가?

소금이 사랑의 눈물인가?


나훈아의 노래 보다 못한 진리에 사로잡혀서 삼십년 사십년 이렇게

얼음같이 살아들 오시다니!!!


예수가 우릴 어떻게 사랑했는데?

고작?


사랑과 진리는 행하고자 하는 방향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행하신 진리요 사랑이요 방향이다.

방향이 없는 이 교회에 현대진리가 방향이라고?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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