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게질 - 민초스다의 꿈

by 잠 수 posted Mar 17, 2011 Likes 0 Replie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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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 비게질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이러하다.

 

비게질 :

말이나 소가 가려운 곳을 긁느라고 다른 물건에 몸을 대고 비비는 .

 

비게질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시가 떠오른다

김 의환 시인이 지은 시다

 

제목 : 아침 해를 가슴으로 안으며.                                                        

 

다독여지지 않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갈수록 불퉁해지는

삶이 역겨워 허물 벗 듯

내던진 일상의 옷

희붐스런 하늘 위로

마음은 연처럼 바람을 타고

기대감에 가든해 진 기분은

알몸의 속성을 아는듯 하다

지금 이 길은 한 곳으로만

흐르는 물줄기 같은 것

새벽길은 여유롭다

양편에 격 없이 늘어선 산들은누군가

오랜 세월 빚어 낸 인고의 형상

그 깊은 창조 사이로 우리는 서로 향한 길을 만들고

깊은 도랑 위에 서슴없이 다리도 놓았지

사랑이란 때로는 날름거리는 뱀의 혀처럼 간사할 수도 있지만

 

비게질을 용납한 바위처럼

내게 살가운 당신은 언제나 변함없는 아침 해의 모습이다,

 

눈부심 없이도 빛을 느끼게 하고

아직 싸늘함 속에서도 온기를 느끼게 하는 이

눈먼 소경의 시야를 트이게 하는 치유의 손

당신을 두고 생의 끝까지 서원한 사랑이 있어

갈 수 있는 길이 있는 한

나의 길은 오직 당신께 나아가는 길.

 

이 시에

비게질을 용납한 바위가 등장한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바위

그 상대를 변함없는 아침 해로 비유한다.

 

아름답고도 멋진 시이다.

 

이 아침에 생각한다

민초스다가 비게질이였으면

시인의 비유 - 아침 해처럼 말이다

 

우리의 삶에서

이처럼 가려운 곳을 찾아 긁어주는 민초스다이기를 소망한다.

 

누구나 다 와서 비빌 수 있는 그런 민초스다

마음 편히 머물다 갈 수 있는 그런 민초스다 말이다

이것은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 ?

 

요즈음 용납의 한계점에 대하여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아디까지가 용납의 한계점일까 ?

지금도 생각 중이다.

 

이 민초스다가 비게질의 역할을 감당한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때로는 비비다가 상처를 입는다.

때로는 서로 비비다가 진한 우정을 맛보기도한다.

 

비게질의 사명을 다하는 민초스다

 

그 어떤 자가 이곳에 와서 비비대어도

용납과 감동이 살아있는 민초스다 말이다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꿈일까 ?

 

삼위일체를 부정하여도

재림 교회 근간의 교리를 부정하여도

화잇을 부정하여도

성소 기별을 부정하여도 말이다

 

우리는 그들의 주장을 용납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삶 그 자체를 그 인격 그 자체를 용납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곳에서 비비대는 여정을 통하여 비게질을 통하여

변화하는 하늘의 은총을 입기를 바랄 뿐이다.

용광로 같은 민초스다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간절히 소망한다

 

이곳에서 비게질을 못하면 다른 곳을 찾는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모른다

 

그럴 것이면 이곳이 비게질하는 곳이기를 소망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주장을 어느 누구의 지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아집이란 그리도 무섭고 견고한 것이다.

 

민초스다가 모든 것을 용납하여 용해하는 용광로이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하늘에서 영원히 이웃하며 살아갈 운명이다.

이 땅에서 하늘까지 말이다

 

사소한 다름은 아무것도 아니다

 

너와 나의 다름으로 우리는 헤어져서는 안된다

너와 다름은 그저 다름일 뿐이다

다름이 틀림이 아니다

다름이 잘못이 아니다

다름이 더구나 죄악도 아니다.

다름은 다름으로 끝내야 하는 것이다

서로의 다름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다름으로 불화하여서는 안된다.

 

서로 용납하는 정신이 곧 그리스도인의 정신이다.

 

비게질을 생각하며 다름을 반추하여본다.

 

그동안 민초스다 힘들게 살아왔다

온갖 풍파를 벌써 여러 차례 겪었다

그러나 이렇게 굿굿하게 살아서 존재한다

 

때로는 피 터지게 싸워도

우린 헤어질 수 없는 운명체

영원한 공동 운명체이기에 사랑으로 안고 보듬는다

 

때로는 과열 현상이 표출되기도 한다.

그런 현상들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민초스다의 정상적인 성장통이리라.

 

이곳에 와서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고

시시비비하며 관심과 애정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무한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다.

 

집안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의 울음소리 싸우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야 한다

이런 집은 살아있는 집이다.

 

적막감이 감도는 고요만이 흐르는 집안은 죽은 집이다

 

울음과 웃음이 교차되는 운명체 - 공동체 말이다

사람 사는 냄새 풍기며 살아가는 공동체가 그리운 것이다.

민초스다가 이런 공동체이기를 소망한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무엇인가 ?

숨김이 없는 꾸밈이 없는 노출이 아닌가 말이다.

 

싸워라 더 크게 싸워라

그래야 희망이 보일 것이다.

 

울고 불고 그리 싸우자.

그래야 미래가 있는 공동체이다.

그래야 사람 사는 냄새가 진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게질을 떠 올리며 민초스다의 꿈을 그려본다

 

민초스다여 영원하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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