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6, 376>
모든 교회는
분명한 나팔 소리를 내는
명확하고 예리한 증언이 필요하다.
우리가 절제에 대해
우리 백성의 도덕적 감성을 일깨우면
큰 승리를 얻을 것이다.
삶의 모든 일에 있어서
절제는 가르쳐지고 실행되어야 한다.
먹고, 마시고, 자고, 옷 입는 일에 있어서의 절제는
종교 생활에 있어서 중대한 원칙들 중에 하나이다.
영혼의 성소에 전해진 진리는
몸을 다루는 데 있어서 안내자가 될 것이다.
인간의 건강에 관계된 어느 사항도
무관심하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영원한 복지는
생활 중에서 시간과 힘과 영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다윗은 선언하였다.
“나의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그러한 몸을 주셨는데
매 부분을 왜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는가?
생각과 마음의 방들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육감적이며 저열한 쾌락을 즐기며 지하실에 사는 대신에
이 아름다운 방들을 열어 놓고 주 예수님을 들어오라고 초청하여
우리와 함께 살도록 하지 않겠는가?
한때 술먹고 담배피고, 노름하고, 문란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정죄했었죠. 저도.
그렇지만 어떤사람들은 그걸 끊기가 죽기보다 힘든 사람들이 있어요.
신앙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신앙으로 모든게 해결되면 교회에는 천사들만 살아야죠.
아프거나 슬픈 사람들도 없고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선 암걸리면 이상하게 보는갑죠? 저 사람이 뭘 잘못했을까.
거봐.. 거러더니 저렇게 됐구만..
익숙하지 않나요?
술먹고 담배피는 사람들도 얼마나 힘들줄 아세요?
의지할데가 없어서 그런 사람들 많아요.
십수년간 노름과 담배에 찌들어 사는 사람이 저한테 그러더군요.
참고로 우리 교인이에요.
제가 물었죠. 왜 그렇게 담배를 못 끊으시냐고.
이게 유일한 친구라고 그러더군요. 유일한.
하나님 잘 알아요. 화잇부인 좋아하고 대챙투 총서 많이 읽으시고
한때 선교부장도 하시던..
그런데 또 다시 노름에 빠지니 또 담배를 손에 잡으시더군요.
그 순간이라도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잊어보려고요. 나쁜줄 알면서도.
그 순간에는 하나님도 위로가 안돼니까.
저도 한때 정죄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노름에, 어떤 사람은 다른 형태의 중독에 잘 빠지는 태생적 성향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그런거 안하는 사람이 있고요.
님이 말하는 그 "육감적이고 더러운 쾌락"이 정당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런걸 퍼나르실 시간 있으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나 한사람 더 돌아보세요.
님때문에 다시 돌아올수 있게
여기 오시는 분들 99.999%가 그런사람 아닐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