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37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등록 : 2015.03.20 18:39

최근 몇 년간 생겨난 가장 강력한 예능 트렌드는 ‘체험’에 관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주인공은 연예인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대개 셀레브리티로서 대중과 동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연예인들이 자신들뿐 아니라 대중도 쉽게 접하기 힘든 일들을 몸소 체험하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즐거움과 감동, 교훈을 유발하는 포맷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연예인들의 체험 예능은 크게 네 가지 분야로 나뉜다. 농어촌, 육아, 오지, 군대가 그것이다. 체험의 장소나 소재는 달라도 효과는 동일하다. 이 예능 프로그램들은 궁극적으로 모두 정서적 ‘힐링’을 추구하는 데 힘쓴다.

‘농어촌’이라는 공간은 언제나 힘들고 지치거나 혹은 실패한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이들에게 감정적 안정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다시 일어서서 도시라는 전쟁터로 나갈 수 있게 만든다. 도시의 편리함 대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농어촌에서의 생활은 신체의 활력을 회복시킴으로써, 도시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무한경쟁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만들어주는 역할도 한다. <삼시세끼>에서 그려지는 농어촌은 정확히 이런 모습이다. 텃밭에서 야채를 뜯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손수 밥을 해 먹고, 작은 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다 같이 누워 자는 경험을 통해 출연자들은 도시 생활에서의 정서적 피폐함과 신체적 피로를 회복한다.

이러한 ‘농촌’의 기능은 ‘육아’에서 동일하게 변주된다. 농촌이 그렇듯 남편/아빠가 아내/엄마 대신 아이를 키우는 일 역시 힘들지만 정서적 행복감을 선사해준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그램이 보여주듯, 아이를 키우는 연예인 남편/아빠는 연예활동(도시)을 벗어나 육아활동(농촌)에 하루 이틀 전념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도외시했던 다양한 감정노동과 신체노동을 겪음으로써 이전에 ‘몰랐던’ 무언가를 깨달으며 행복해한다.

‘리얼’을 표방하는 이 예능 프로그램들은 철저히 기획된 것이며, 이 기획은 도시-남성-노동자라는 한국 사회의 전형적 주체가 농촌과 아이라는 ‘타자’를 만남으로써 겪는 신체적 고됨과 이 고됨이 주는 정서적 행복감을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먼저 아픔, 고통, 힘겨움이 있어야 하듯이, 대중문화는 이 아픔과 고통, 힘겨움을 인공적으로 제공한다. <진짜 사나이>(군대생활)와 <정글의 법칙>(오지생활)도 마찬가지다. 규율, 제한, 힘겨움의 무대라는 점에서 군대와 오지는 농촌과 육아의 또 다른 반복이다. ‘힐링 예능’은 밀린 일을 위해 밤샘 야근을 준비하는 이들이 마시는 ‘핫식스’가 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으니, 즉 다가올 ‘진짜’ 고통을 어떻게든 견뎌내게 만드는 인공적 자양강장의 역할이 그것이다.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인공적 자양강장제가 필요한 이유는 대중문화가 필요한 이유와 같다. 노동과 경쟁으로 가득한 대중의 진짜 삶의 조건, 그 초라하고 치열한 삶의 모습을 짧지만 여운은 긴 상상적인 쾌락으로 채우고, 이를 통해 진짜 삶을 견뎌내도록 하기 위해서다. ‘고통을 견디라’고 하는 것은 사업가 기질이 농후한 멘토들만의 몫이 아니다. 바쁘고 지친 우리들 ‘대신 놀아주는 사람’ 역할을 하는 연예인들은 오지에서, 육아를 하며, 군대에 가고,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며 이미 우리 삶에 만연한 고통을 새로운 차원에서 다시 경험한다. 새롭고 드물기에 그 고통은 그럭저럭 견딜 만한 것이 되며, 때로는 신선한 기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자양강장제가 그렇듯, 그 인내와 기쁨은 더 본질적인 것, 즉 노동에의 전면적 몰입을 응원하기 위해서만 의미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대중문화가 이런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노동을 소외시키면서 동시에 그것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우리 시대의 어떤 특징이 이런 인공적 자양강장제를 끊임없이 요구할 뿐이다.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출처: 한겨레신문 논단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오케이, 오늘부터 (2014년 12월 1일) 달라지는 이 누리. 29 김원일 2014.11.30 11979
공지 게시물 올리실 때 유의사항 admin 2013.04.06 38302
공지 스팸 글과 스팸 회원 등록 차단 admin 2013.04.06 55214
공지 필명에 관한 안내 admin 2010.12.05 87101
11465 타인의 시선 6 아침이슬 2015.03.22 310
11464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대북전단 살포 전면 중단하겠다" 1 자유 2015.03.22 292
11463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의사 예언 2015.03.22 159
11462 어떤 이유로도 등한히 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사업> 예언 2015.03.22 195
11461 나는 구 나~~ 8 file 깁스 2015.03.22 291
11460 뜨거운 감자 맛보기 남쪽바다 2015.03.22 142
11459 도올의 기독교이야기 (1) 석국 2015.03.22 236
11458 도올 "한국 기독교가 편협성을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으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 석국 2015.03.22 205
11457 영화.[요한 계시록 한글더빙 및 자막판] 물병자리 2015.03.22 266
11456 우리는 '목사'가 뭔지 알고 있었던 걸까 '한국교회 개혁을 위한 연중 포럼', 김근주·김동춘·김애희·조석민 발제…영화 '쿼바디스'에 답하다 현미 2015.03.22 306
11455 <최후의 위기>를 위한 준비 예언 2015.03.22 160
11454 교회 3 하주민 2015.03.21 283
» 자양강장제의 서글픈 환상 김원일 2015.03.21 377
11452 아빕월 1일에 드리는 새해 인사 1 김운혁 2015.03.21 216
11451 유대력 새해 첫날인 아빕월 1일에 일어난 개기 일식(영상) 김운혁 2015.03.21 363
11450 우리집 강아지가 죽으면...... 9 아침이슬 2015.03.21 399
11449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나니 1 야생화 2015.03.20 227
11448 <아마겟돈 전쟁>이 곧 일어날 것입니다 예언 2015.03.20 235
11447 1000원 짜리 백반 여적 2015.03.20 288
11446 그리운 마음 2 무실 2015.03.20 276
11445 겨울의 끝 2 fallbaram 2015.03.20 398
11444 노래하지 않아도 봄은 오겠지만 fallbaram 2015.03.19 296
11443 허경영 씨가 차기 19대 대선 후보로 공약을 페이스북에 발표했습니다. 8 file 허본좌 2015.03.19 441
11442 우리가 <국가에 대한 반역자>로 취급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예언 2015.03.19 153
11441 [2015년 3월 21일(토)] 제1부 38평화 (제20회) : 삼육교육의 역사와 철학 VII: 프레이리의 『억압받는 자의 교육(Pedagogy of the Oppressed)』와 발트국가 핀란드와 스웨덴의 교육에서 배운다. 명지원 교수 / 제2부 평화의 연찬 (제158회) : 평화의 네트워크를 위한 ABC: 21세기 예수의 제자들의 네트워킹 방법. 유재호 (사)국제구호개발 이사 (사)평화교류협의회[CPC] 2015.03.19 244
11440 물을 많이 마시면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은? 일상 2015.03.19 378
11439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려면 1 임용 2015.03.19 214
11438 "사탄 짓 그만둬라"... 친정엄마의 의절 선언 삼손 2015.03.19 369
11437 식욕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 1 파수군 2015.03.19 245
11436 건강개혁을 위한 호소 파수군 2015.03.19 132
11435 [의혹과 진실 - 한승헌의 재판으로 본 현대사](1) 여운형 암살사건 (上) 1 겸비 2015.03.19 315
11434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 짭조름(9) 아기자기 2015.03.18 349
11433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 이렇게 생각한다 4 김원일 2015.03.18 440
11432 사탄의 회 2 SDA 2015.03.18 241
11431 전용근과 함께 걷는 음악산책 ' 시실리안' 바흐 2 전용근 2015.03.18 258
11430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파수군 2015.03.18 96
11429 지상에서 완성해야 할 사업 파수군 2015.03.18 95
11428 남자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뜨거운 감자) 3 FALLBARAM 2015.03.18 357
11427 재림때...교인들이 목사들을 죽입니다 3 예언 2015.03.18 261
11426 '접촉사고 사진 촬영' 이렇게… 경찰이 직접 알려준 방법은? 일상 2015.03.17 246
11425 근래 미치도록 좋은 음악 하나를 발견하고... 음악은 인생 2015.03.17 318
11424 김재원 靑 정무특보, 세월호 유가족 명예훼손으로 고소 2 경향 2015.03.17 192
11423 “오이에 콘돔보다 교실서 포르노 틀어줘야” 가디언 2015.03.17 164
11422 재림교회 개독교인의 민낯 7 개독교의 민낯 2015.03.17 463
11421 전용근과 함께 걷는 음악산책 '동무생각'박태준 3 전용근 2015.03.17 302
11420 '53세,어느날' <한국산문> 신간수필 3월호 -하정아 전용근 2015.03.17 149
11419 전용근과 함께 걷는 음악산책 '째즈 모음곡 왈츠 2' 쇼스타코비치 2 전용근 2015.03.17 236
11418 돈 없어서 감옥 가는 사람 돕는 장발장은행 ... 무이자·무담보 대출,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시민사회·종교계 참여 요구 장발장 2015.03.17 79
11417 민사모 28 fallbaram 2015.03.17 443
11416 직업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사람이 배워야 할 것 3 예언 2015.03.16 249
11415 930년 살동안 그토록 가고싶었던 에덴동산에 다시 들어간 아담은 너무 감격하여... 예언 2015.03.16 251
11414 뜨거운 감자 8 fm 2015.03.16 260
11413 6개월이 지난 지금은 1 하주민 2015.03.16 234
11412 龜鑑 4 수녀 2015.03.16 216
11411 <목사의 딸> 박혜란의 사촌 형부 목사, "이 책은 거짓" 현미 2015.03.16 323
11410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 충격적 실태…“완전 다른 사람이 된 딸, 엄마한테 아줌마라고 불러” 충격 신천지 2015.03.16 414
11409 난 민초 가 좋다 2 민초 사랑 2015.03.16 228
11408 재림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늘로 가는 신나는 우주여행 3 예언 2015.03.16 233
11407 사드 '전략적 모호성' 이면에 中 협박 있었다 배달원 2015.03.15 208
11406 “목사들은 전도나” “군인들은 국방을” 재림이 2015.03.15 273
11405 민초님들 본전은 하고 가야 하지 않겠소? 4 fallbaram 2015.03.15 393
11404 박근혜 대통령, "양떼 돌보는 목자의 심정으로" 1 기도 2015.03.15 270
11403 Hayley Westenra - Pie Jesu (live) serendipity 2015.03.15 134
11402 나는 선, 너는 악, 박근혜의 선악 세계관 8 해람 2015.03.15 304
11401 <육감적이며 저열한 쾌락>을 즐기며 지하실에 사는 교인 2 예언 2015.03.15 259
11400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이 재림교인이 되지않도록> 하시는 이유 5 예언 2015.03.15 192
11399 나는 광부에 딸로 태어났습니다. 8 야생화 2015.03.14 326
11398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2015년 3월 14일 토요일> 세순이 2015.03.14 252
11397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2015년 3월 13일 금요일> 세순이 2015.03.14 286
11396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2015년 3월 12일 목요일> 세순이 2015.03.14 230
Board Pagination Prev 1 ...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 ... 225 Next
/ 225

Copyright @ 2010 - 2016 Minchoquest.org. All rights reserved

Minchoquest.org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