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중고)

by 하주민 posted Mar 26, 2015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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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창2:7)

여호와께서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셨다, 그는 흠 없는 순결 가운데 살았지만 그러나 그 순결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유지 할 수 있었다,

그를 붙드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아담은 자신의 능력으로 살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내 자신의 능력으로 살려고 했으므로 타락했다,

사단의 말을 들어 자신의 노력으로 신이 될려고 즉 하나님의 말을 무시하고 사단의 말을 들어 반역 했다는 말이 아니든가.

구약 시대부터 이사상이 내려오고 신약에 와서도 이사상은 더욱더 편만하게 널리 퍼졌으며

성소제도의 왜곡으로 말미암아 과연 몇사람이나 구속의 경륜을 이해했든가?

사도시대 교회에서도 이 사상은 왜곡된 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할례(행위)가 믿음을 삼켜버려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런데도 모든 종교는 믿음을 논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공평하지 않게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와 불의가 어찌 사귀겠느냐? 빛과 어둠이 어찌 친교를 나누겠느냐?(고후6:14)

이와같이 믿음과 행위는 공존할 수 가 없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는데 너희가 나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자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가 그를 받아들이리라.(요5:43)이 말씀은 너희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나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너희 육신을 기쁘게(자존심을 지켜주면)하면 받아들인다 이 말씀이다,

이 땅의 모든 종교가 다 이렇다

서양의 대표적인 인물 소크라테스, 동양의 공자 맹자. 이런 사람들이 도덕론을 가르쳤고

도덕을 가르쳤지만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결여된 점은 이런 이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방법을

말해주지 못한 점이다, 이 사람들은 가르치기는 했지만 도덕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행해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그것을 행할 능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는 의가 무엇이라고 가르칠 뿐만 아니라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그리스도가 가르침 속에 없으면 도덕을 가르치려는 모든 노력은 한낮 옛날 이방의 도덕인 부도덕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도덕은 부도덕이며 죄이다,

 

 

이방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기독교가 거의 대부분이 이런 상태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되는 줄 알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자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느니라.(갈2:16)

전부가 믿음을 말하면서 율법에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율법 조목 조목을 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범죄로 인해 감옥에 있다고 하자 법조문을 그에게 읽어줌으로 감옥에서 풀려나오게 할 수 없다, 그를 그곳에 집어넣은 것은 법이었으므로 그에게 그 법을 읽

어주는 것은 오직 그의 감금을 더욱 중하게 해줄 뿐이다,

이런데도 지금의 상태는 어떠한가?

보라, 위로 높여진 자의 혼은 그 사람 속에서 곧바르지 아니하나 오직 의인은 자기 믿음으로 살리라.(합2:4)이스라엘 백성은 자기신뢰와 하나님 불신으로 가득하여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을 불평하고 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할 수 있고 그분의 약속을 수행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지금도 옛날과 다름없다, 율법을 지킴으로 백성이 되는 조건이라고 하지 않은가.

이런 사상에 처해 있으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들을 하리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요6:28-29)

바로 이 사상이 세상 끝날까지 가며 알곡과 가라지가 구별된다,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 조상 아담의 범죄로 인간들은 자존심이란 대단하다.

이 자존심이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고 절대적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자존이란 정신이 있을 수 없고 바로 사단의 정신이란 말이지요.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여 자기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10:3)

복종이란 단어는 이미 이루신 말씀에 복종한다는 의미보다는

율법 조목조목에 복종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인식하고 있다,

 

 

우리가 율법을 사랑하고 선한 것으로 여기며 또 어떤 이들이 말한 대로 소위 우리의 연약한 방법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율법에 복종했다고 생각하고 또 그런 생각으로 위로를 받는다.

그러면 무엇이 육신의 생각이 되는가?

육신의 생각은 율법에 복종하지 않으며 또 할 수도 없다,

그러면 무엇이 육신의 생각의 증거가 되는가?

선한 행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고.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갈5:17)

이런 상태 때문에 그들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한다면 약속은 그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

여기에 율법을 주신 목적이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으려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이것은 율법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을 경시하는 것이다, 율법은 거룩하고 그 요구는 아주 크므로 어떠한 사람도 율법의 온전함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 율법의 영광이 된다,

 

 

남편 있는 여인이 자기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는 법에 의해 그에게 매여 있으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자기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런즉 만일 그녀가 자기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간부라 불릴 터이나 그녀의 남편이 죽으면 그녀가 그 법에서 해방되나니 그러므로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할지라도 간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게 되었나니

 

 

이것은 너희가 다른 분 곧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신 분과 결혼하게 하려 함이요, 또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롬7:2-4)

현대말로 비유하면 신품이 사단의 말을 들어 중고품이 되어버렸는데 중고품이 된 자신을 자기가 고치려고 한다, 자기는 절대로 못 고친다,

왜냐 하면 중고품의 생명의 주인은 자기가 아니고 주인이 있을 뿐더러 자기를 만든 주인 외에는 자기가 자기를 고칠 수 없고 사단도 못 고칠 뿐더러 더욱 고칠려고 하면 할수록 중고가 고물로 변하고 더 더러워질 뿐이다,

 

중고를 만든자가 철학과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이론의 조끼를 입고 인문사상이란 두루마기를 걸치고 세상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고물삽니다. 고물삽니다, 하고 다닌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달콤한 세상 (울령도 호박엿)맛이 들여져 영생을 바꾸어 먹고 자신이 고물이 되는 줄도 모르고 모여든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주인의 호소는 그들의 귀에 경 읽기가 돼 버린지가 오래다.

주인께서 말씀하신다, 타락한 자녀들아, 너희는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타락한 것을 고쳐 주리라. (렘3:22)

 

또 목마른 모든 자들아, 너희는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참으로 와서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치르지 말며 포도즙과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빵이 아닌 것을 위해 돈을 허비하느냐? 또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느냐? 내 말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일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며 너희 혼이 기름진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 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와 영존하는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긍휼이니라.(사55:1-3)

이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는 말이 엄연한 기정사실이다,

우리말로 공짜는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하늘의 모든 것은 공짜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탈은 절대로 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이 살아있다,

음부가 되어있다는 말이다,

고백도 하지 않았고, 십자가도 지지 않았다,

십자가의 거치는 것은

인간의 연약성과 죄의 고백과 어떤 선한 일을 할 수 없는 무능력의 고백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하여 모든 것을 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모든 인간의 자부심에 굴욕이 된다,

 

너희 자신을 누구에게 종으로 내주어 순종하게 하면 너희가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

율법을 지킴으로 이런 말이나 구원은 일종의 협력이란 이런 정신이 음부라는 말입니다,

이제 말씀을 받아들여

바울과 같이 우리는 상상하는 것과 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

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고후10;5)

오직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킴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9;27)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7.8)

 

 

전에 우리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버리기로 한다면 그때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그리스도에게 바칠 수 있다, 우리가 즐거이 희생하고 우리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며 이생의 자랑육신의 정욕과 우리의 옛 생애와 관련된 모든 것을 버리며 육신을 위하여 살지 않게 되는 바로 그 순간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한다,

 

 

그러나 아직 지상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생명을 포기 했으므로 이제 우리에게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육신에 상관된 모든 것을 부인하는 그 순간 그리스도는 우리의 것이며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졌다고 말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다,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되는가, 죽음으로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는 더 이상 육신이 그 정욕을 이룰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릴 때에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복종하게 되며 그 후부터는 그의 능력을 신뢰하여 계속 복종하는 상태에 머무른다.

우리에게 있는 큰 문제는 때때로 그리스도에게 승리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우리가 어떤 좋아하는 죄를 가지고 있으면서 버리려고 하지 않으며 그 죄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을

즐거이 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승리하고 그 죄를 버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것을 좀 생각해 보자 우리가 원수를 쳐부수기 위하여 그리스도에게 도움을 청하고서 정작 그가 왔을 때에는 우리가 원수의 편에 있다, 그러나 만일 이 모든 것을 버리면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무한히 가치 있는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우리의 마음을 결정할 때에 이 세상의 하찮은 것은 장차 우리에게 주실 것에 비교하면 가질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우리가 항상 주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살아 있는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항상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 안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11)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홀로 남거니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갈2;20)

이 말씀은 영원히 지속되고 영원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은 하나의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우리도 역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그는 우리가 되셔야만 했다, 그러므로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우리가 아니고 누구였겠는가, 이것은 성경 알려주는 위대한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이시다, 그는 우리와 똑 같은 혈과 육을 가지셨으며 우리의 본성을 지니 셨으며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이 되셨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히2:17)자기를 비어 인간과 같이 되시고 마지막 아담이 되셨다,

 

그러므로 간단히 말하면 첫 아담이 우리 자신이었던 것같이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자신이셨다, 첫 아담이 죽었을 때에 우리는 그 안에 있었으므로 그와 함께 죽었다,

그러므로 마지막 아담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그는 우리 자신이고 우리는 그 안에 있었으므로 우리도 그와 함께 죽었다, 첫 아담 자신 안에 온 인류가 있었던 것같이 마지막 아담 자신 안에 온 인류가 있었다, 그러므로 마지막 아담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온 인류 곧 옛 사람의 죄 있는 인성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중고품 생산 공장에서 금형으로 찍혀 나왔음에도 빛을 알아보는 혜안의 안목은 놀랍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참 씨를 본 것 같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도다(요6:65)

이 마당에 마리아. 석가. 일요, 등 잡초들과 아직은 마호멧 잡초와 비누스 잡초는 안보이네요. 엽집 카스다는 예신이란 시멘트 콩크리트로 마당을 굳혀놔서 참씨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굳혀 놨으니 가망 없고 이 마당은 주인이 후해서 예신이란 잘못의 지적도 허용하는 곳이니 세상 어느곳 보다도 알곡들이 많이 잠재해 있다고 봅니다

 

이 마당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익어가는 열매도 있을 것이고. 잠간 왔다가 지금은 잠시 쉬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예신이란 잡초들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려서 보지 못한 결과이니

이미 믿은 우리는 안식에 들어가나니 이것은 창세로부터 그 일들이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노하여 맹세한 것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려면 믿어야 하리라, 함과 같으니라.(히4:3)

 

이 땅에서 아주 적은 무리지만 안식의 참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래도 안식일을 지킬려고

노력하는 이 무리에게 참 씨가 수건을 벗을 수 있도록 봉사합시다,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내게 있으므로 그들도 내가 반드시 데려오리니 그들이 내 음성을 듣겠고 이로써 한 우리와 한 목자가 있으리라.(요10:16)

또 그분께서 사람들의 모든 민족들을 한 피로 만드사. 온 지면에 거하게 하시고 미리 작정하신 때와 그들을 위한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니

이것은 그들이 혹시라도 주를 더듬어 찾다가 발견하면 그분을 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그분은 우리 각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아니하니

이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며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이라. 너희의 시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도 이르되, 우리 또한 그분의 후손이라, 하였나니(행17:26-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네게서 내버리라. 네 지체 중의 하나가 없어지고 네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네게 유익하니라.

만일 네 오른손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네게서 내버리라. 네 지체 중의 하나가 없어지고 네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네게 유익하니라.(마5:28-30)

하나님의 계명은 약속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계명은 반드시 이와같은 약속이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실 때에 그것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기만 하면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죄로부터 지켜 주실 것이라는 그의 보증으로 생각할 수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 가운데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실 것이다.

너희가 진리를 알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네가 믿은 그대로 네게 이루어질지어다,(마8:13)

이 약속을 내 것으로 삼으란 말이지요.

 

(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우리는 상상하는 것과 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고후10:5)

“나는 하나님 안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살리신 그 능력의 손에 내 자신을 굴복하면 그 능력이 나를 새 생명 가운데 살도록 계속 붙들어 주실 것이다, 날마다 이렇게 할 때에 우리의 마음은 그의 놀라운 능력에 대하여 하나님에게 감사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육신이 그 정욕을 행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나아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붙들어야 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것을 체험해야 한다, 우리 안에 이루어진 기적인 그 능력이 역사하는 것을 느낄 때에 우리가 지금까지 흔히 굴복했던 시험과 정복했던 죄의 습관들이 정복될 뿐 아니라 그것들을 초월 할 것이다, 그때에 비로소 전과는 달리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에 나아가서 기별을 전할 수 있다,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고후10:6)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복종의 의미이고

아울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정의이기도 하지요.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으며 그분께로 돌아가나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롬11:36)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내가 이미 그것을 영화롭게 하였고 다시 영화롭게 하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곁에 서서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천둥이 쳤다고도 하며 다른 사람들은 이르기를,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하니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이 음성은 나 때문에 나지 아니하고 너희를 위해 났느니라.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있으니 이제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나리라.

나 곧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리라, 하시니라.(요12;18-32)

 

예수님께서 이제 모든 일이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 기록을 성취하시려고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예수님께서 식초를 받으신 뒤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고 숨을 거두시니라.(요19:28.30)

무엇이든지 믿음에서 나지 아니하는 것은 죄니라.(롬14:23)

결론은 십자가 없는 믿음은 알맹이는 없고 껍질만 있는 육신의 입맛에 맞는 믿음인

인본주의 사상(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중고를 고물로 만드는 자의 궤변-----

그러면 이 땅의 기독교가 남발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필자의 글을 보시는 형제님들 한때 이 사람도 중고 노릇 많이 했습니다,

우리 모두 중고품이 아닙니까.

내가 네게 권고하노니 너는 내게서 불로 정제한 금을 사서 부유한 자가 되고 또 흰옷을 사서 입어 네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말며 또 네 눈에 안약을 발라 볼지니라.(계318)

안약을 공짜로 주시니 발라보고 완전히 복종하는 자입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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