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댓글이 참으로 나를 슬프게 한다

by 배상금 posted Apr 02, 2015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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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풍등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정택용

 

 

 

안산 단원고 2학년 1반이었던 유미지 학생의 아버지인 유해종 씨는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과묵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 1월 29일 안산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을 기록한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한 구절을 읽어나갔다.

담담한 듯했지만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청중들은 그의 억눌린 슬픔을 감지했고 그에 공명했다. 콘서트장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들이 새어 나왔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딸에게만은 속정이 깊었을 이 아버지를 슬프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너무나도 일찍 지켜버린 약속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집필하기 위한 인터뷰 과정에서도 유해종 씨는 딸 미지가 너무나도 일찍 지켜버린 약속 '하늘여행'을 말하며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세 번의 인터뷰, 10시간만의 일이었다.
아빠, 이다음에 내가
비행기 태워줄게
"미지가 나하고 농담을 잘해. 생전에 나랑 팔짱 끼고 드러누워서 '아빠, 이다음에 내가 아빠 비행기 태워줄게' 했어. 그 말 많이 하잖아. 딸 낳으면 비행기 탄다고.

한 200번(시신 수습 순서) 전까지는 앰뷸런스 타고 올라왔을 거야. 그 뒤부터는 훼손이 많이 돼서 바로 바로 올라가야 하니까 헬리콥터를 타고 간 거야. 근데 미지가 나왔는데 그 생각이 딱 나는 거야. 헬리콥터를 딱 탔는데. 

아유, 이 자식이 죽으면서까지 비행기를 태워주는구나. 내가 왜 연관을 거기다 지었는지,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때 딱 그 생각이 나더라니까. 봐봐, 먼저 나왔으면 앰뷸런스 타고 올라왔을 건데 늦게 올라와가지고 헬리콥터 탄 거, 그것도 비행기잖아. 그죠?

그때 울음이 나더라고. 헬리콥터로 올라오는 동안 내내 관 옆에서 울었어. 와, 이 자식이 죽으면서까지도 약속을 지키려고 그랬을까."
죽으면서까지도 약속을 지키려고 한 미지는 사고 한 달 만에 바다에서 떠올라 아빠를 기다렸다. 시신을 찾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키가 160, 161센티미터 이렇게 두 명이 나왔더라고. 내 딸이 그 정도거든요. 가서 컴퓨터 사진을 봤는데 잘 모르겠잖아. 미지 엄마가 둘째 아이 학교 보내려고 안산으로 간 다음에 바로 미지가 나왔어.

전화로 미지 엄마한테 속옷서부터 팬티까지 얘기했지. '겉옷은 무슨 색인데 이게 맞냐' 그랬더니 '맞다'. '속옷은 땡땡이 입었는데 이거 맞냐', '맞다'. '팬티는 줄무늬에 뭐가 있는데 맞냐', '맞다'. 거기까지 확인했으니까 70퍼센트는 맞는 거잖아, 엄마가 확인했으니까.

근데 우리 미지는 오른쪽 무릎에 큰 점이 하나 있어. 근데 시신 중에서 옷을 안 걸친 데가 많이 상했더라고. 발목부터 여기(무릎 밑)까지는 다 상할 거 아냐. 그 사람한테 "내 딸은 오른쪽 다리 무릎에 점이 하나 있다. 2센티미터 되는 점이다. 한번 확인 좀 해달라"라고 했는데, 갔다 오더니 맞대. 우리 딸인 거야.
아,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는지 나도 몰라. 생각이 도대체 안 나. 아무리 부모가 확인했어도 정확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DNA 검사를 받아야 한대. 그전에 시신이 몇 번 많이 왔다 갔다 했었거든.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 부모가 DNA 검사한 뒤에 시신을 내줬거든.

근데 미지가 관 속에 있는데 새마포라고 하나 하얀 옷을 덮었더라고. 거기서 일 하시는 분이 '아버님, 제가 이런 말씀 드리면 죄송하지만 생전에 좋은 모습만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이러는 거야. 

내가 왜 그러냐고 했더니 따님이 많이 그러하니까 그냥 보지 말고, 좋은 모습만 기억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 '만일 이거 보면 평생 기억에 남고 후회할 거 같으니까 안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러더라고.
그래, 생각해보니까 우리 딸 어차피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좋은 모습만 기억하자고 마음먹고 안 봤어.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진 것만 봤지. 그때는 나도 왜 그랬는지 몰라. 왜 좋은 모습만 기억하려고 했나 모르겠는데 장례를 치르고 나니까 그게 또 후회가 되더라고. 혹여 나쁜 모습이더라도 내 딸 마지막 모습인데 그걸 왜 안 봤을까. 아무리 망가졌어도 볼 걸, 후회가 되더라고.
봐도 후회, 안 봐도 후회,
너무 가슴이 아픈 거야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많아. 근데 본 사람은 보지 말라고 하더라고. 이거는 봐도 후회, 안 봐도 후회, 너무 가슴이 아픈 거야. 본 사람은 자꾸 꿈에 보이는 게 싫어 차라리 괜히 봤다는 사람도 있고, 안 본 사람들은 내 아이의 마지막인데 그것도 안 봤다고. 참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아, 진짜 이런 사고 다시는 나선 안 돼."

세월호는 태평양 한가운데 먼 바다에서 침몰하지 않았다. ⓒ최호철

 
 
 
 
한 배를 타고 가는 길이었지만 어떤 이는 살고 어떤 이는 죽었다. 미지 친구의 증언이 미지의 죽음이 어떠했는지를 유해종 씨에게 전해주었다. 하지만 이 증언은 유해종 씨에게 '훌륭한 사람'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2학년 1반 생존학생이 안산법정에서 증언을 했대요. '반장 때문에 살았다. 반장이 선장 역할 다 했다. 반장이 지금 우왕좌왕하지 말고 조금 있다가 나가자. 지금 문을 못 여니까 물이 좀 찬 다음에 나가자,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나가자' 이랬다는 거야. 미지는 아마 위에 있다가 다시 배 밑으로 들어간 것 같아. 밑에서 한 사람씩 올리고.

근데 그 아이가 올라가려고 하는데 물에 쓸렸대요. 그래서 걔도 죽는구나 생각했는데 마침 봉을 잡고 있어 간신히 살았대. 자기까지만 살고 밑에 있는 애들은 쓸려 들어가버리고. 걔가 올라와서 해경한테 울면서 저 밑에 우리 친구들 많으니까 구해달라고 했는데 안 들어가더래요. 미지는 맨 밑에서 걔까지 올려주고 물에 쓸려서 소식이 없었던 거지
생존자 말이 없으면 우리 딸이 그랬는지 몰랐을 거야. 그게 언론에 엄청 떴어. 2학년 1반 반장은 반장 역할 다하느라 살아나오지 못했다고. 아마 포털 사이트 들어가면 지금도 있을 거야. 

거기서 뭐 반장이라는 책임 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우리 딸이 평소에 남을 많이 끌어안는 성격이야. 자기보다 못한 사람 이렇게 지켜주고 끌어가는 성격이거든. 대안학교 졸업하고 일반 고등학교 진학해 2학년 되더니 '반장 나가면 어떻겠냐'고 물어서 미지 엄마가 그냥 원하면 하라고 했대.
미지 엄마는 애들의 증언 듣고는 너무 괴로워했어. 분명히 사고 당일도 아이들 챙기느라 자기를 돌보지 못했을 거라고. '저는 못 나왔으면서, 저는 좀 살아나와야지, 반장만 아니었으면 살아나왔을 텐데' 하면서 많이 자책했어. 

미지 엄마한테는 '미지 같은 성격은 반장 안 했어도 그 책임은 다했을 거다. 그러니까 당신은 애를 잘 기른 거다' 그렇게 위로를 해주긴 했는데 잘 모르겠네. 책임감 있는 사람이 훌륭하다는 건 아는데 미지가 그렇게 가고 나니 잘 모르겠어. 훌륭한 게 뭔지."
 
 
 

딸을 보낸 아버지는 이런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한다.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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