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자냐 사상이나?

by fallbaram. posted Apr 05, 2015 Likes 0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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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때

책읽기를 잘 하지 않던 내가 어쩌다가 심오한 냄새가 나는 책이라면

밤을 새더라도 끝까지 읽는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책을 두번이상 꾸준히 읽은것은 없다.


하지만 성경만큼은 다른 책이었다.

여러번 그리고 꾸준하게 읽게 된 책이다.


통독의 기록을 세우기 위해 읽지는 않았다.

원하는 대답을 얻기위해서도 읽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것 때문에 읽지도 않았다,

무언가 궁금해서 읽은적은 있지만...


문장의 뜻이 무엇인가 하여 단어 하나하나를 살펴보기는

했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얽메이고 싶지는 않았다.

단어 한개보다는 문장 하나가 더 큰것이고

문장 하나 보다는 단락하나가 더 큰것이며

한사람의 저자가 쓴 한개의 책보다는 (사십여명이

육십여섯개의 책을 썼지만) 전체적인 책 즉 성경책이라는것이

더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축자영감설로 가는 목적이 일점일획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문자적 해설로 끌고가게되는 폐단이 있다면

사상영감설의 잘못될 수 있는 목적은 말씀의 영성보다는

저자의 영성쪽으로만 갈 수 있는 폐단이 열려있는 것이다.


참 신기한것은 사상영감설을 설명하기 위해서 축자 영감적인

방법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예를들면

"It is not the words of the Bible that are inspired, but the men what were

inspired." 라고 하면서 밑줄까지 그으면서 단어 자체의 문자적 의미를 부각시키고

그 배경에는 영감을 받은 사람 즉 선지자의 글이라는 것으로 아직도 열려있는

그리고 쉽게 닫지 말아야 할 토론의 뚜껑을 덮으려 한다.

축자영감설과 사상영감설이 짬뽕이 되고 두개의 이중주가 연주되지만 내세우는 제목만은

사상 영감설인 것이다. 축자영감적 사상영감설이라고 해야 하나.


요한복음의 저자는 선생의 가슴에 기대어 들었던 선생의 말속에서 다른이들이 듣지 못한

독특한 표현들을 많이 듣고 증언했다. 성경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거기에 있다. 구약에 대한

그분의 말씀은 "이 성경(구약)이 곧 나에 대하여 말한것" 이라 하셨고 비록 암시적이긴

하지만 신약은 아버지께로 나오시는 보혜사 성령이 앞으로 나를 증언할 것이라고

그리고 나의것 (출생과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사건들 그리고 그분의 입에서

나왔던 말씀의 내용과 의미들)을 가지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것이고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릴것이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신약의 진정한 저자를 소개 받는다.

소위 대언의 영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 대한 기록이 성경이며

그 저자는 성령이라는 말이다.

잉태에서 부터 어린시절과 광야의 시험 또 요단강의 침례와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깊이 관여했던 셩령께서 다시

인간의 연약한 표현을 통해서 글을 쓰게하고 글을 보관하게 하고

또 성경이라는 전체적 구성이 완성되기까지 관여하신것으로 보아

성경의 저자가 성령이시라고 한다면 오히려 인간적 약점이

감춰질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성경을 문자로만 읽을때에 생기는 많은 의문들이 전체로 읽을때에

훨씬 줄어들고 또 여러명이 저자라는 생각보다는 오직 성령이

유일한 저자라는 생각으로 성경을 대하면 훨씬 안전하다고

느껴지는데...


혹 영감을 받은 한 사람 (선지자?) 는 어떤 특정한 교회에 있을 수 있지만

성령은 모든교회 (일곱이라는 숫자)에 계심같이  특정한 사람이 제한된 시기에 나타나서

말하고 증언한 내용보다는 나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어떤 방향에서도 활동하신

대언의 영 즉 성령의 저자적 사역을 더 선호하고  좋아하는 이유이다.


축자영감이 가고자 하는길도

사상영감이 가고자 하는길도

오직 예수와 십자가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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