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슬머리

by 아침이슬 posted Apr 16, 2015 Likes 0 Replie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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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안식일 시간에 어떤활동이 허락되고 안되는여부를  조목조목 기록되지 않은 이유는 인간에게 두뇌를 주셔서, 그것을 사용하여 개인이 결정하라는 말씀이야! 중학교 졸업할때까지는 두말 안하고 금요일 저녁시간에 진행되는여러 사교모임등 모든 활동을 일체 거부하고 안식일을 금요일 해지는 시간부터 토요일 해질때 까지 잘 지겼다. 조금도 의심으나 불평없이 그어진 선안에서 잘있었다.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 시작하면서, 깊게 그어진 줄에 대해 진지한 의문과 도전 들이 시작되면서 14살의 딸이    엄마에게 울먹이면서 한말이다.  


이세상에  형형색색의 선들이 존제한다. 인간의 존엄을 파괴시키는 선들을 생각해본다: 아리안족에 보존을 위해 온갖 최악의 잔인성을 실행한 독일 나치시대의 정책, 미국의 흑인 노예제도, 인도의 카스트 제도, 우리나라에 출신에 의해 계층을 정해지는 신분제도.극소수의 사례들이다.


당연히 피해자들은 이 억울한 선을 향해 도전한다. 정권잡고 총과 칼쥔 세력이 배부는 배를 더둑더 채우기 위해 저향하는 무리들을 고삐를 더욱 세차게 조이면서 억제한다. 미국흑인 노예들이 고분고분 하지 않아서 백인 노예주인들이 다루기 조금 불편해졌다고 했을때, 린칭 (Lynching) 이라는 참혹함이 하나더 그들에게 가해졌었다.


개인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또한 여러 선을 밟고 건너면서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며 마음이 들뜨고 짜릿한 경험을 한게된다.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으로 ‘높이 뛰기’ 해서 선을 넘어왔다. 첯아이의 출산과 동시에 얻은 엄마라는 타이틀은  그야말로 황홀한 새 여정이 시작된 순간이였다. 이런경험들은 “첯” 이라는 말이 앞에 붙는다: 첯 월급, 첯 아이, 첯 애인, 첯인상, 첯 여행. 이런 첯경험들은 오랜 추억속에 간직된다. 나는 대학시절까지 극장에 가본일이 없었다. 그래서 극장에 제일 처음 갔을때 보았던 영화제목은 (Kramer vs Kramer) 물론, 내용, 그리고 영화본후에 소감과 대화들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떤 선들은 잘 지키면 모든사람들에게 도움이된다. 그러나 과연 어디가 제일 이상적인 곳이닌지는 애매모호 할 경우도 종종있다. 선생님이 학생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에 대해도 많이 다루는 주제이다. 너무 딱딱하고 차갑게 사무적으로 대하지 말고 인간적으로 친절하게 대하라, 그러나 너무 친절하면 존경하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지혜롭게 처신해야한다. 확실이 무슨뜻인지 풀이하기는 애매할때도 있다. 나는 학생들을 모두 공평하게 매우 친절하게 대하고 또 잘 가르키기 위해 준비도 많이 한다. 작녁 가을 인턴 할때, 학생들은 따스한 미소와 친절로 나의 친절에 대응하였다. 그런데 어느 학생하나는, 나만보면 악수를 청하고, 악수한후에 내 손에다 키스를 하곤하였다. 아무런 뜻이 있는 행동은 아니였지만, 몹시 신경이 쓰이고 매우 싫었다. 아마도 내가 친절의 선을 넘어서 그랬을까 하고 여러 생각을 하면서 정신 에너지를 투자했던 일이었다.


나의 배우자는 반드시 한국인 재림교인이여야 한다고 자라나는 딸에게 어머니께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신말씀이다. 어머니가 절대로 넘어서면 안된다고 굵직하게 그어주신 줄을 나는 단 한번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한다는 생각이였다. 젊은시절에 재림교인 청년들이 내눈에는 제일 멋있어 보였었다, 담배 술 안하는 두가지만도 충분한 매력이였었다.


어린딸들을 양육하면서, 그들이 장차 격어야하는 이성문제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했었다.   내 주변을 돌면서 마냥 귀엽게 재롱을 떠는 어린것들이 어느날 처녀로 성장하여  이성을 알게될때 어떻게 대처하는데 따라서 인생의 방향이 좌우될수있다. 어느날 가슴을 뛰게하는 남청년과 눈이 맞았을때, 미리 생각해놓은 바가 있으면 가장 현명하게 처신 할수있을겄이라는 생각이였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요소들을 아주 어렸을때부터 마음에 각인이 되도록 가르켰다. 한국인 재림교인이면 아마도 제일 공유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행복한 결혼생활이 될것이라고도 말해주었다. 그러나 내어머니께서 나에게 그어주신 줄보다는  현저하게 부드러운 선이였다.


지난 주말에 내마음을 뛰게 하는 기쁜소식이 있었다. 내생애에 또다른 선을 넘어 첯경험을 하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원다니고 있는 딸이 다음달에 남자 친구를 데리고 집을 방문하겠다는 연락이였다. 애인의 부모님 집에도 조만간 방문한다고 하니, 신중하게 생각하는 관계인듯하다. 가슴속에 화사한 꽃망울이 연달아 터지는듯  껑충껑충 뛰도록 기뻤다, 내 사랑하는 딸이 사랑을 만났다는 일이 그렇게도 나를 즐겁게 하였다. 사진을 두장 보내왔다, 3살때 하고 최근에 찍은 두장. 어렸을때 곱슬머리인 남자아이가 얼마나 귀여운지. 이 청년이 내 사위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리도 사랑스럽기만 하였다.


사진에 모습도 성도 한국인이 아닌것 같다. 혹시 모른다, 어머니가 한국인일지도. 나는 딸이 성인이 될때까지 그가 올바른 선을 선택하고 지키면서 살어갈  마음바탕을 형성하는 작업에 심혈을 기우렸다. 이제 내가 할일은  딸의 모든 선택과 결정 위에  큰 하트를 그리고 사랑과 이해 감사 격려로 넘처나게  선사하는 일이다.


마음이 많이 설레인다, 빨리 보고싶다.   내 딸, 그리고 메이비 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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