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천안함 한방’에 공든 탑 와르르 |
‘왜곡과 편파’ 언론 기본 상실로 최근 잇단 특종·이슈 빛바래 |
최근 조선일보의 천안함 1년 특집기사는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큰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어떤 한 기사를 떠올리게 해준다. 1998년 10월 월간조선 11월호를 통해 폭로(?)한 최장집 당시 대통령자문정책기획원장(고려대 교수)의 ‘충격적 6.25 전쟁관’이 그것이다.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이 기사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완전히 상실한, 오직 ‘최장집 죽이기’ 외에 다른 의도는 없는 왜곡·편파의 대명사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기사의 근거가 된 최 교수의 논문을 읽어보면 ‘역사적 결단’이 긍정적 의미로 사용된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최 교수는 “‘역사적’이라는 표현은 그것이 이후 한국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점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난 3월 21일자 조선의 천안함 관련 기사를 보자. 조선은 해난전문가인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를 인터뷰해 <좌초설 제기자, TV로 천안함 봐 놓고 “딱 보니 좌초”>란 제목을 뽑아 보도했다.
확인 결과 이 대표가 그런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대표 주장의 극히 일부분일 뿐, 그는 해난전문가로서 좌초된 배, 충돌한 배, 폭발한 배를 모두 보아왔던 사람이며 “폭발이 됐다면 순간적인 기체의 팽창으로 엄청난 압력과 폭음이 발생해 승조원들의 귀와 콧속 모세혈관이 가장 먼저 터진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지 않았다”는 나름의 근거도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딱 보니 좌초”라는, 거의 한 인간을 ‘미친-놈’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제목을 뽑는 데 조선은 주저하지 않았다. 과거 “역사적 결단”으로 최장집 교수를 죽이려 했듯이, 이번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한 인간을, 그리고 정부의 천안함 검증에 의문을 제기하는 세력을 죽이고자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 3월 21일자 5면 | ||
우 회장은 “한국기자협회 회장이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많이 알지 못한다는 겸양의 전화 녹취를 발췌해, 마치 검증위가 과학적 사실관계에 입각하지 않고 보고서를 내놓았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품격 있는 정론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기사”라고 비판한다.
검증위 측은 “조선은 취재 대상인 조직의 대표도 아닌, 조직 구성에 참여한 단체의 대표에게 ‘5개월이나 검증을 했다는데 내용을 모르느냐’고 물었고, 적절한 답변자에게 물으라는 취지의 대답을 ‘모른다’로 뭉뚱그린 것”이라며 “조선일보의 구체적인 기사 내용에 대해 조선일보 사장에게 물으면 그는 뭐라 답하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검증위 측은 또 기사에서 검증위 실무책임자(노종면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가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밝힌 것과 관련, “조선일보 스스로 적절한 취재원을 취재하지 못했음을 고백한 셈”이라고 꼬집는다. “적절한 취재원에 접근하지 못했으면 기사를 쓰지 말았어야 하는데 언론으로서 기본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국방부의 천안함 보고서는 당시 조선일보조차 의문을 제기했을 만큼 허점이 많았다. 조선은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인 9월 14일 사설을 통해 “정부가 조사단에 여러 외국 전문가를 포함시키고 군 주도가 아닌 민·군 합동조사를 진행했는데도 국민 불신이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커진 것은 정부의 초기 접근이 정치적으로 무신경했고, 군의 세부 사항에 대한 잇따른 발표 실수가 의혹을 확대 재생산한 탓이 크다”고 지적한 바 있었다.
그 의혹의 ‘실체’를 검증하기 위해 나섰고, 나아가 전문가들의 진술과 도움을 토대로 흡착물질이 폭발재가 아님을 밝히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던 게 바로 언론검증위의 활동이었다. 과연 누가 더 ‘언론의 기본’에 충실하다고 봐야 할까?
조선일보는 최근 잇단 특종과 이슈 선도로 ‘역시 조선일보’란 평가를 듣고 있었다. 비록 종합편성채널 선정 이후 정권의 눈치로부터 자유로워진 탓이라거나 더 많은 특혜를 얻기 위한 의도라는 ‘삐딱한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나, 구제역 침출수 재앙을 비롯해 이귀남 법무부장관의 불법 수사개입, 국정원 요원들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잠입 사건 등을 연이어 폭로한 것은 분명 찬사를 받을 만한 것이었다.
미디어오늘은 이에 지난 2월 23일자 <조선일보 분발, 보수신문 제 역할 계기되길>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당파적 보도를 줄이고, 언론권력으로서 빗나간 정치적 영향력 행사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고, 언론으로서 해야 할 일을 지금처럼 계속 해나간다면 조선일보도 ‘이른바 보수신문’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보수신문’으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천안함 사건 관련 보도는, 역시 미디어오늘 사설에 나온 내용인 “지금껏 조선일보 하면 반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대북보도, 시민사회와 진보세력에 대한 편파적 공격, 자본과 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당파적 신문으로 평가받아왔다”는 부분을 다시 떠올리게 충분한 것이었다.
더구나 조선일보는 천안함 언론검증위의 보고서조차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있다. 검증위를 평가하고자 한다면 그들의 ‘활동의 전부’라 할 수 있는 보고서부터 파악하는 게 상식일텐데 오직 몇몇 관계자의 ‘자극적인 코멘트’만 뽑아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검증위 측은 “정부의 조사 결과를 손대기 두렵다면 언론검증위의 보고서 내용이라도 속속들이 파헤쳐 시시비비를 가려보길 바란다”며 “조선일보는 지금이라도 천안함 사건의 진상에 천착하는 언론의 기본으로 돌아와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 이하 방통위)가 23일 KBS 2TV <추적60분> ‘천안함’ 편에 대한 ‘경고’를 의결한 것은 정치권력이 자행한 언론자유 탄압이다. 정부 기관인 방통위는 이날 오후 상임위원 전체회의를 열고 <추적 60분>에 대해 ‘경고’를 의결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의 지난 1월 결정을 그대로 수용했는데, 이는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행정 권력의 언론에 대한 사후 심의제재 행위다.
방통위의 이번 결정은 언론의 환경감시 역할에 가장 핵심적인 탐사보도 영역을 정치권력이 직접 말살하겠다는 권력의 언론에 대한 백색 테러다. <추적60분>에 대한 정부의 이번 폭거는 광우병 우려를 보도한 MBC <PD 수첩>에 대해 정치권력이 총동원되어 전 방위 공세를 가했던 끔직한 사례와 닮은꼴이다.
심의위는 <추적 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편(2010년 11월 17일 방송)에 대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결론 자체가 오류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방송심의규정 ‘공정성’, ‘객관성’ 등의 조항 위반을 이유로 ‘경고’를 의결했다. 이 같은 결론에 불복한 KBS가 재심을 청구했고, 방송법상 재심권한을 가진 방통위가 이날 전체회의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 원심 처분을 적용해 심의위의 ‘경고’ 조치를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PD저널 23일).
방통위가 이번에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경고를 의결한 심의위의 결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은 전형적인 ‘귀에 걸면 귀 거리, 코에 걸면 코 거리’식의 행정결정이다. 객관적 사실관계에 의한 명백한 결론 제시가 아니라 주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유죄’를 결정한 것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직권남용행위다. 방통위의 이번 결정은, 언론은 정부가 내려 보내는 보도 자료를 베끼거나 권력의 대변인의 말이나 그대로 전하라는 직접적인 요구에 다름 아니다.
방통위의 이번 결정이 더욱 심각한 것은 언론의 고유 영역인 탐사보도 자체를 금지한다는 행정명령이라는 점이다. 탐사보도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거나 될 소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 언론이 현장을 뛰면서 진실을 가려내는 보도 형태다. 언론 본연의 역할이 환경감시라 할 때 탐사보도는 언론의 존재의의가 확인되는 가장 대표적인 필수기능의 하나다.
방통위가 천안함 관련 탐사보도에 철퇴를 가한 것은, 이명박 정권이 추진해온 언론의 탐사보도를 원천봉쇄하겠다는 비민주적 통치행위의 연장선상에 있다. 몇 년 전 이명박 정부의 행정고위관리와 검찰 등이 한 통속이 되어 MBC <PD수첩>이 광우병 발병 위험을 안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정부의 졸속 협상 태도 등을 파헤친 것을 문제 삼았던 것은 이번 사례와 너무 닮은꼴이다. MBC <PD수첩>이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대미 수입쇠고기 협상을 졸속으로 밀어붙이려 할 때 광우병 위험과 미국 방역체제의 문제점 등을 상세히 전달한 것은 전형적인 탐사보도였다.
언론 교과서에 나온 바와 같이, 탐사보도는 진실을 밝히고 부조리를 규명하기 위해 보도하는 것이 기본적인 목적이다. 탐사보도 대상은 대개 그 취재대상이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을 파헤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거나 두려워하는 그런 내용이다. ‘천안함’의 경우 군이나 행정 고위관리들이 사건 발생 후 진실 감추기, 말 바꾸기 등을 되풀이 해서 국민적 의혹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추적 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편의 취재과정도 순탄치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점을 살필 때 방통위가 유죄 결정의 유일한 근거로 삼았던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결론 자체가 오류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한 것의 원천적 책임은 군과 국방부 등이 포함된 이명박 정부에게 있다 할 것이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의 진실에 대해 누구의 눈에도 확실한 증거 등을 <추적 60분> 취재진에게 제시했다면 방송 내용도 그런 식으로 나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권력이나 현 정부를 상대로 한 탐사보도의 경우 취재 대상인 권력이나 정부가 얼마나 정보 공개를 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좌우된다는 사실을 방통위가 참고했다면 이번과 같은 폭력적 결정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방송장악에 혈안이 된 것은 방송이 탐사보도 등을 통해 사회의 소금과 목탁이 되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낙하산 사장이 투하된 뒤 KBS, MBC의 시사 프로 등이 대거 폐지되거나 변질된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KBS, MBC의 시사프로는 탐사보도를 통해 PD 저널리즘을 꽃피게 하면서 언론자유의 영역을 업그레이드 시켜왔다. 탐사보도가 활성화되는 만큼 사회도 건강해지고 투명해진다. 방통위는 우리 사회가 이 만큼 민주화되고 정의가 정착되는데 탐사보도의 역할이 컸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현 정권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과정에서 언론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박탈하려는 시도를 강행하고 있지만 결국 실패할 것이다. 전체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눈높이는 현 정권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이 되어 있고 표현의 자유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그 영역이 계속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은 전근대적인 기본권 탄압을 즉각 멈추고 남은 임기동안이라도 민주주의를 선진화시키는데 노력해야 한다. 이런 점을 살핀다면 방통위의 KBS 2TV <추적60분> ‘천안함’ 편에 대한 ‘경고’는 즉각 백지화되어야 하고 이번 폭거에 대한 책임소재가 분명히 가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