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xter

by 김균 posted Apr 29, 2015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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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xter

 

dexter는 요즘 보고 있는 미국 드라마(2006년에 상영)로 법의학자 이야기이다

면도를 하다가 칼에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린다

그 피를 휴지로 닦아 내는데 피가 휴지로 번진다

그리고

칼이 피부를 썰다가 그 장면이 고기로 바뀌고 구워 입으로 들어간다.

계란이 깨지고 그게 후라이가 되고

오렌지가 썰리면서 생명이 파괴된다

즉 인간이 먹는 모든 것이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란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법의학자의 간담 서늘한 이야기로 옮겨간다

젠장 참혹해서 화면에서 눈을 떼는 장면이 너무 많다

 

인간은 창조되면서부터 생육하고 번성해야 한다는

절대 절명의 말씀의 순종을 전제로 살아왔다

에덴에로의 복귀를 꿈꾸는 사람들조차도

식물의 생명은 선물이요 동물의 생명은 식물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오인한다

커터기로 오렌지를 자를 때 그 오렌지가 말만 안 한다는 것뿐이지

상처 난 부분이 얼마나 아팠을까를 생각하지 않는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에는 약육강식이 파도친다는 것을 이해 못한다

 

내가 채식을 하니 생명존중이라 여긴다

내가 채식을 하니 피흘림이 없다고 여긴다

그런데 기독교는 피흘림으로 시작하는 고대 종교 유대교를 모태로 만들었고

그 피흘림이 창세전부터 죽임을 당한 예수를 예표해서

양과 염소와 소와 곡식을 드리는 제사제도에서 시작된 것 잊는다

죽이고 죽고 그 시체를 뜯어 먹으면서 우리는

그의 피 그의 살을 연상하는 예식까지도 하고 있는데

그게 예식으로만 존재하도록 가르치는 저의를 나는 이해 못한다

제사제도 자체가 도살하는 행위이며 피를 보는 일이다

 

이스라엘은 자기 죄 때문에 죽는 짐승의 피를 보면서

자신의 죄를 더 깊이 뉘우치라고 가르쳐왔다

그 피를 보면서 죄를 깨달아라 하는 것인데 우린 죄보다도 입맛을 먼저 다신다

그 이야기가 엘리의 두 아들이 보낸 사환의 입을 통해서 나온다

그것이 형식화 되고 인간은 형식을 넘어서 반대자를 처형하는 수준까지

기독교를 피로 물들여 왔으면서

코란과 칼을 들고 포교하는 이슬람만 유독 못 봐 주는 우를 범한다

똑 같은 것들이 말이다

 

교회 안에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는다고 강조하면서

끼리끼리 문화에 익숙하게 만들고 자리만 잡으면 칼을 쳐든다

그러니 칼을 맞자 않으려고 줄기차게 운동도 하고 세력도 불리고

칼춤 연습을 한다

심지어 급료도 없는 교회 교직 자리까지 그것도 감투라고 마패차고 거들먹거린다.

 

왜 이런 비겁한 일들이 교회 안에서 자행되는가?

고기 안 먹고 건전한 육체 거룩한 육체 운동까지 했던 후예들이

왜 제단위에만 서면 칼질의 명수가 되는가?

더욱 더 깨끗해져야 할 교직에서부터 왜들 이러는가?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9:4)

그 성읍은 본디부터 가증한 일이 성행했던 곳이다

아론의 자식부터 시작해서 다른 불 사랑하고 잿밥에 목맨 민족이다

그래서 다른 불 사랑하는 가증하게 살고 있는

오늘로 말하자면 선거운동이나 하고 자리 잡으면 칼질을 전문으로 하는

그들을 위해 울어도 보고 깨끗하게 정리도 해 보는 그런 백성이 있어야 한다는

대전제가 우리들의 심성 속에 잠재해 있어야 한다

 

채식을 하면 육식하는 사람들 보다 더 거룩해 지는가?

내 경우를 보면 하나도 맞지 않는다

내가 채식했을 때가 더 더러운 옷을 입은 시절 같다

형식이 판을 치고 거룩함의 진실은 외면한 채

먹고 마시는 자들의 행위에 대한 정죄가 오히려 더 역겨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하늘가면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는 주의자이다

이 땅에서 먹는 것으로 그만큼 고생했으면 안 먹는다는 생각을 할 때도 됐건만

아프리카 오지에서 하루 1끼로 살다가 왔는지 먹는 것에 환장한 사람들이 되어

이 땅에서 안 먹고 살았던 것 보상이라도 받을 것처럼 열두 과일에 현혹되고

그것 먹고 싸 놓은 똥은 누가 치울 것인지도 계산하지 않고

거기 가서도 먹을 궁리만 하고 있다

 

과일과 채소도 죽음에 대하여 신음한다는 것쯤은 생물학적으로 알기 바란다

나뭇가지에 상처가 나면 나무는 절로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진액을 만들어 낸다

그게 모인 것을 벌들이 따 와서 자기 집을 방어막으로 만드는데

바로 plopolis 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을 건강기능식품으로 분류하고 이집트에서는 5000년 전부터 사용했고

항암식품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즉 식물도 그들 아픈 상처를 싸매는 물질을 배출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늘가면 식물의 죽음도 없다고 나는 믿는다

시듦이 없는데 죽음이 있을 리가 없고 먹는다고 분지르는 일이 없는데

왜 고통이 수반될까?

 

칼이 번뜩이는 곳에는 죽음이 따른다

그것이 육식이건 채식이건 말이다

노아의 방주 이전에는 그들이 육식을 하지 않았을까?

오늘 우리들의 해석처럼 홍수 후에 먹을 것이 부족해서 육식을 허용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홍수 후 인간의 수명은 급격히 짧아졌다 줄줄이 사탕처럼 낳던 후손도 줄었다

그렇다면 인구 증가를 염려해서 육식을 주신 것은 아닐 것이다

난 그렇게 단언한다

우리 중의 어떤 이의 해석에 의하면 홍수 전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인간이 살았다는데

-물론 나는 그런 가설 믿지 않는다-

그럼 그 때 육식을 주셔야 맞다

홍수 후에는 8식구뿐이었는데 육식을 줬다는 해석을 나는 오류라고 본다

죄 많은 세상에서 죽어야 할 인간을 더 빨리 죽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바로 육식이라 나는 믿는다

거기다가 제사제도에서 생성된 고기의 처리를 위해서라도 육식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육식은 또 하나의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 선물은 홍수 후에 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회복된 에덴으로의 여행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님을

그 여행길은 영적 생애의 오직 예수로의 길임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라 믿는다

고기 많이 먹으면 암에 걸린다고?

그럼 걸려야지 그리고 오래 사는 것이 복이 아님을 알고 죽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란 것에 감사해야지

 

일요일 휴업령으로 하늘 갈 길 닦는 분들이시여

그 빠른 방법이 왜 이런 곳에서 나 같이 하찮은 사람들에게서 푸대접을 받는가?

그건 성경의 원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들만의 해석이 지구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환상은 버리자

더 너그러워지고 더 사랑스러워지고 더 존경받는 사람이 되자

나만의 울타리 그만 치고 나만의 천국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서

나보다 너를 더 위하는 신앙의 태도부터 가지자

이 땅에는 하루 한 끼니도 못 먹고 살아가는 인구가 몇 십억이란 것도 기억하자

 

dexter

오른 편에 섰다고 칼질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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