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님도 아마 잘 모르실 엘렌 화잇의 면모 (제 6장)

by Harmon posted May 03, 2015 Likes 0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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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제 6장  Speaker (연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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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예언님을 언급한 건

엘렌 화잇을 사랑하는 예언님께서 요약하셨더라면 좋을 것 같은 챕터였기 때문이다.

다른 어먼 의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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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15세) 소녀 엘렌은 공중기도나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부끄러워했다. 

전도를 위해 집집방문을 할 때도 앞에 나서지 않았다. 


1876년  (49세) 매사추세스에서 열린 야영집회에서 엘렌 화잇의 절제 강의를 듣기 위해

15,000 명에서 20,000 명의 군중이 운집하였다. 

교인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 지역 유지들도 참여하였다. 

화잇은 인기 있는 강사였다. 

엘렌 화잇은 "영국 여왕도 이런 영예를 누리지 못했을 것" 이라며 감격했다. 


대중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던 소녀, 초자연적인 육체 현상으로 땅에 넘어지던 그 처녀에서

수천, 수만의 대중 앞에 강의하는 설교자로 성장한 그녀의 역정은

그녀의 삶의  영적 여정과 길을 같이 한다. 



전화위복

주지하는대로 엘렌은 어린 시절 돌에 맞아 얼굴이 일그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이 부상 때문에 엘렌은 일찌기 복식호흡하는 법을 익혔고

그것은 나중에 공중 연설이나 설교를 할 때 성공의 비결이 되었다. 

그녀의 깊이 공명하는 목소리는 멀리까지 닿았고 큰 규모의 회중에게 잘 전달되었다. 

몸이 약했던 것과는 달리 그녀의 소리는 대중 설교와 강연에 효과적이었다. 

그녀의 일생을 바꿔 놓은 어렸을 때의 상처 (그녀의 라이프 스토리는 항상 그 사건으로 시작한다) 는

변장한 축복이었던 것이다


무대체질? :)

어떤 때는 일년에 150번 강연/설교를 해야 할 때도 있었고 80대까지 공중 설교를 했다. 

남달리 허약했던 그녀는 오히려 설교를 할 때 강해졌다. 

움직이기조차 힘들정도로 약하다가도 겨우 강단에 서면 초자연적인 힘으로 소생되어 힘차게 설교를 했던 기록이 여러번 나온다. 

초기에 전형적인 집회는 남편 제임스가 오전에 교리적인 강연을 하고 오후 Social meeting 에서 엘렌은 좀 더 친근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권면하는 설교를 했다.  때로 묵시를 받는 때도 있었다. 

제임스의 말에 따르면 "엘렌은 스무번 이상 이렇게 말했다.  묵시를 받을래 무덤을 택할래 하면 무덤을 택하겠다고" 

초자연적인 묵시는 그렇게 몸에 힘이 들었다.  점차로 묵시보다는 설교로 집회를 끝마치는 일이 많아졌다. 

(중년 이후로 엘렌은 묵시를 받지 않게 된다)


PR 의 역할

조카 메리 클로(Mary Clough) 가 문서 편집 비서로 일했는데,  또한 대중에게 엘렌을 알리는 PR 의 귀재였다. 

메리는 기자회견을 주선하고 신문에 광고와 기사를 내보내는등 조직적으로 이모 엘렌을 대중에게 알렸다. 

메리의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PR 로 엘렌 화잇은 초교파적으로 인기있는 강사가 되었다. 

1870년대 중반 메리와 엘렌은 중서부를 돌며 야영집회에서 교인들과 비교인들의 대규모 집회에 강연을 했다. 

서두에 말한 1876년 매사추세츠의 야영 집회는 메리의 능력있는 PR로 이루어졌다. 

(엘렌의 언니 캐롤라인의 딸인 메리는 안식일교인이 아니었다) 


설교로 살아나다 

1881년 8월, 화잇 부부는 말라리아에 걸려 입원했다. 

이미 거듭 중풍을 맞았던 제임스는 회복되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 소식에 엘렌은 거의 심장이 정지되고 혈압을 잴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져서

심장에 전기 충격을 받아야 했다. 

1주일 후 열린 제임스 화잇의 장례식에서

그녀는 남편을 추모하며 간증을 했다. 

부축을 받아 겨우 강단에 선 엘렌은 감동적인 간증을 했다. 

두달 후 여전히 쇠약해 있던 엘렌은 캘리포니아의 야영 집회에서 다시 절제 강연을 할 수 있었다. 

1882년 8월에는 다시 열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고 가족들은 그녀가 회생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10월이 되자 엘렌은 자신을 야영집회에 데려가 달라고 했고 거기서 강단에 서자 다시 회생했다. 

그녀 자신도 그것이 자신의 고별 설교라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번개같은 전기 충격이 전신을 휩쓸고 머리까지 솟구쳤다. 

사람들은 창백하던 그녀의 얼굴이 붉게 제 색깔로 돌아오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았고

고별설교를 할 줄 알았던 그녀는 그 야영회에서 여섯차례 강연을 했다. 


1901년 대총회

1891년부터 1900년까지 화잇은 호주에 있었다. 

류마치즘등으로 육체적으로 극심하게 시달리던 시기였지만 아본데일을 개척하고 시대의소망등을 쓰던 매우 결실있는 기간이었다. 

미국으로 권면과 증언들을 써 보내기도 했지만 그녀는 고국의 교인들 앞에 직접 서서 설교하는 것을 그리워했다. 

호주에서 돌아온 엘렌은 1901년 대총회에 참석하는데 이 총회는 SDA역사에서 큰 획이 된다. 

개회가 선언되자마자 엘렌 화잇은 발언권을 얻어 작심한듯 교단의 개혁을 요구했다. 

(아래 사진 1901년 대총회)

대총회는 돌연 의제를 바꾸어 조직을 개편하고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어윈 대총회장이 물러나고 화잇과 함께 호주에서 돌아온 다니엘스가 대총회장이 되었다.

(그 때 개편된 조직을 이 교단은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  당시 개혁을 주도하던 화잇이 살아 있다면

아마 '너희들 아직도 이러고 있니?  왜 내가 백년도 전에 만든 데서 한 발짝도 못나갔니?' 할 거다)


1901년 대총회 이후 이미 70 중반에  접어든 그녀는 맹렬하게 대중 설교를 했다. 

교단 정치 행정이 민감하던 시절이라 그녀는 개인적인 면담을 자제하고 공적인 발언만을 주로 했다. 

사적 이야기가 왜곡되어 전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egw 1901.jpeg




팔순의 설교자

80대의 엘렌에게는 오히려 개인적인 대화가 더 힘들고 설교가 더 쉬웠다. 

설교는 엘렌에게 힐링이고 회복이었다. 

1909년  그녀는 마지막 전국 투어를 했다. 

링컨의 유니온 칼레지에서 2000명 앞에서 설교했고

남부 테네시 알라바마 노스캐롤라이나를 돌며 흑백 모든 회중에게 설교했다.

설교 후 흑인들과 악수하는등 당시 분위기에서는 상당히 용기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워싱톤DC 에서 열린 대총회에서 열 한번 연설했다. 

대총회 후 고향 메인 주 포틀랜드를 방문하여 설교하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했던 그 사건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러분이 다시다시피 나는 여기서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누가 던진 돌에 맞아 코가 깨졌습니다. 

모두 내가 죽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던 사람들은 나중에 내가 설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 애는 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저렇게 설교하는 말을 내가 알아듣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주님은 왜 나를 선택하신 것일까요?  그분은 여러 많은 말들을 이해하기 어려워 하는 사람을 통해 당신의 뜻을 가장 단순한 말로 전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포틀랜드를 떠나 매사추세츠, 뉴욕, 미시간, 아이오와, 캔사스, 콜로라도를 거쳐 캘리포니아로 돌아오는 동안 포틀랜드의 교회를 위한 헌금을 모금하기도 하였다. 

엘렌 화잇의 마지막 공중 설교는 1911년 캘리포니아의 야영 집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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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챕터를 쓴 테리 다프 아모트 (Terrie Dopp Aamodt  여) 는 왈라왈라 대학교 영문학 역사학 교수다. 

보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역사와 문화 속에서의 기독교의 역할이 그녀의 관심분야다. 

개리 랜드, 라너드 넘버스와 더불어 이 책의 대표 편집자로 표지에 이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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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13 시간 전
    화잇이 대총회에서 마지막 연설을 한 것은 1909년이다. 

    "화잇은 용기를 주는 고별의 말을 몇말씀 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단상에 놓인 성경을 펴서 떨리는 팔로 쳐들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나는 이 책을 여러분에게 추천합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성경을 덮어 강단에 내려 놓고 하단하였다"

    앤드루스에서 공부하는 딸아이가 최근에 클래스에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아빠, 화잇여사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그랬다는 거야. 
    그런데 왜 우리 교회는 성경 말고 그녀의 말과 글에 매달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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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국인 12 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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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균 3 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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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침 2 시간 전
    사울이 하나님의 선지자인 사무엘을 업신여기고 자기가 제사를 드리고 하던 일을 성경에서 읽어 보셧나요? 선지자란 하나님의 대언자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한다는 말이에요. 그런 선지자를 무시하다가 사울이 강신술에 심취해서 처참한 인생을 맞이 햇죠. 지금 재림교회가 선지자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때 어떤일이 벌어질까요? 바로 엔돌의 무당을 찾아가는 강신술을 받아드리게 되고 그것이 재림교회의 멸망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선지자를 찾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도 고작 한다는ㄴ 말이 화잇이 이랬느니 저랬느니 허허.. 화잇은 그저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언의 신을 무시하니까 강신술 같은 영성신학 Spiritual formation 이러한 마귀의 신학이나 연구하고 목사들에게 가르치니 재림교회가 박살나는 거 얼마 남지 않았네요 참으로 통탄할 일이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왜 우리교회가 성경말고 그녀의 말과 글에 매달릴까요? 허허.. 성경과 예언의 신 모두 하나님의 말씀인것을 모르니 저딴 소리를 할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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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균 19 분 전
    맞는 말이네요
    성경을 따르지 않고 다른 불을 성경자리에 놓으면
    엔돌을 찾은 사울 짝 나지요
    옳은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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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다보다 11 시간 전

    "잘 처먹으라고..??" 말이 ㅜㅜ 수준이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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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장수 6 시간 전
    썩은 나라 분들 에게는 관심 끊는게
    최고에 약 입니다 
    그저 어제 오늘만 그런거 아니잔아요
    반응하지 마세요
    그저 뉘집 개가 발길에 차였나보다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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