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주의의 특산물-안식일 제도

by fallbaram posted May 10, 2015 Likes 0 Replies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아래의 글은 최근에 하주민님이 쓴  내용이다.


그러므로 안식일 곧 주일 중 일곱째 날은 하나님이 쉬신 날이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표로 주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그들을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겔20:12.20)안식일 준수가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와 조금도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인준하는 표와 인이 되며 사람이 자신의 행위를 버리고 하나님의 완전한 행위를 받아들이는 표이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 안에서 쉬는표로 제칠일을 지키지 않고 다른 날을 세우는 것은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표가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을 인간의 방법으로 대치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사실은 인간이 하나님보다 우월하며 인간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의 표가 된다, 다른 날을 지키는 모든 사람이 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겸손히 하나님이 그분 안에서 안식하는 표로 주신 날 외에 다른 날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단순히 완전하고 충만한 믿음의 표현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진실함과 하나님이 그들의 진실한 믿음을 받으시는 사실이 그들이 지키는 날이 인간을 하나님보다 높이는 표라는 사실을 변경 시키지는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비의 경고를 들을 때에 재앙이 만연한 집에서 나온 것처럼 배도의 표를 버릴 것이다,

 


안식일에 대한 내 나름의 이해를 나누고자 한다.

안식일 제도 또는 안식일을 "표" 내지 "인"으로 뛰어들기 전에 안식일을 일곱이라는 숫자에서 먼저 출발하는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라 여긴다. 창조는 밤과 낮, 빛과 어두움, 아래의 물과 위의 물, 육지와 바다, 날으는것과 기는것,

남자와 여자로 나누고 대조시키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노동과 하나님의 쉼으로 대조하면서 육이라는 숫자와 칠이라는

숫자의 대조로 창조가 끝맺음을 하게된다. 이상의 나누임은 어둠과 공허와 혼돈이라는 상태에서 발전되는 과정이다.

다시말해서 어둠과 공허와 혼돈이라는 과정에서의 마지막 탈출은 일곱이라는 숫자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쉼 즉

여호수아의 안식 (히4장)이다. 거기에 들어간자들이 자기의 일에서 쉴것이라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이 일곱이라는 숫자를 부여한 상대는 어린양이다. 예수 그리스도란 말이다. 그분을 표상했던 많은 인물들이

일곱이라는 숫자와의 관련이 상당한 이유가 있음도 이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명찰인 "제 칠일 안식일 예수" 는

적절하고 의미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의 흥정에서 우물을 판 증거로 암양 일곱을 제시하는 사건이나

야곱이 두명의 여자를 얻기위하여 칠년이라는 숫자를 사용한것은 일곱으로 표상되는 예수의 사역에 관한 이야기다.

계시록에는 저자가 예수의 계시라고 시작하듯이 일곱이라는 숫자가 홍수를 이룬다. 어둠과 혼돈과 공허를 대표하는

바벨론의 임자가 666을 가지듯이 그 어둠과 혼돈과 공허를 해결할 어린양의 숫자는 777이라고 말한 어느 성경학자의

이야기에 솔깃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르게 이야기 하자면 어린양의 명찰이 7이기도 하지만 어린양의 본질은

바벨론의 역사 (이땅에서 어둠과 혼돈과 공허를 유지하기 위한)를 끝장내고 인류뿐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쉼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을 가정제도와 안식일 제도라고 우기면서 명찰에만 붙들리면 십자가가 두팔을 벌려 사방에서

당신의 백성을 끌어 모으려는 암닭의 본질이 무너지게 된다. 이 두 제도라고 우기는 이것들은 제도가 아니고 표상이다.

둘다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다" 라고한 말씀대로 그 제도를 뒷받침하는 예수가 아니고 그 둘의 이야기가

바로 예수의 본질을 가리키는 표상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이 날의 주인" 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결론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쉬신날에 들어가기 보다는 하나님의 본질 즉 예수 (안식의 주인) 그리스도에게로 들어가는 착한 신부 (교회)가ㅣ

되라는 말이다.

예수가 쉬었던 그날

예수가 침례를 받았던 그 요단강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

예수가 받았던 유대인의 혈통

이 모든것들은 나비가 나비가 되기전에 입고있던 뻔데기처럼 예수가

벗어서 무덤에 가지런하게 개켜놓은 세마포일 뿐인데...


끝으로 하주민 님이여 이부분에서

님이 언제나 즐겨 사용하던 성경절도 한절 (구약의 성경절 말고)제대로 대지않고 아래와 같이 못을 박으면 구원받을 사람들이

셀수없이 후두둑 떨어져 나가는데 무슨 다른 방도가 없을까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 안에서 쉬는표로 제칠일을 지키지 않고 다른 날을 세우는 것은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표가 된다"



혹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그리 준비 하시고 있다고 해도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의인 오십 사십 삼십 하면서 뭣좀 궁리할 끈덕지가 없을까요?

안식일을 구원의 표로 주신것이 아니라 예수의 표상이라고 하시면 아니될까요?


내 생각엔 제도에 얽메이지 말고 본질에 얽메이면 될것같은데 말입니다.

참고로 나는 신실한 재림교인이며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