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n Harmon White
American Prophen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제 7장 Builder
Builder 을 마땅하게 번역할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 장의 내용을 함축할 단어가 별로 좋은 게 없다는 말이다.
'건축자'는 아니고 '설립자' 가 좀 더 나을 듯한데 제목으로 좀 뭣하다.
그래서 별로 좋은 냄새는 아니지만 '기업가' 라고 했다.
'사업가' business woman 는 좀스럽게 들린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이고 큰 사업을 일궈 발전시키는 사람이라는
좀 더 적극적 긍정적 뉘앙스를 주는 '기업가' entrepreneur 로 했다.
이 챕터는 SDA 의 여러 사업과 기관 - 출판, 교단, 의료, 교육 - 설립과 발전에 대한 엘렌 화잇의 영향을 다룬다.
재림교회 역사를 돌아보시면, 또한 이 책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엘렌 화잇은 그 어떤 지도자들보다 앞서 비전을 제시하고 목표를 향해 과감한 시도를 했다.
'기업가' 라고 번역한 것은 그런 선지자에 대한 찬사다.
(( ))괄호로 친 부분들은 나의 사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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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기관'(institution) 이란 어떤 한 사람의 긴 그림자다" 라고 에머슨이 말했다 (1841).
재림교회의 기관들을 만들고 그 성격을 결정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엘렌 화잇이다.
물론 엘렌 화잇 혼자 이런 일을 한 것은 아니다. 목사들, 행정자들, 기관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관들을 시작하는 영감, 그 성격과 방향의 결정등에 있어서 엘렌 화잇의 역할은 막대하였다.
비록 한번도 어떤 공식적인 기관장의 직함을 가져 본 적이 없지만
엘렌 화잇은 "이 교단에 대하여, 그 어떤 선출된 지도자들 voted leaders 보다 훨씬 더 광대하게 탁 트인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출판
교단보다 먼저 생긴 것이 출판사다.
재림교회 출판사업은 무에서 시작했다.
"당신을 위해 받은 묵시가 있어요. I have a vision for you" 라고 엘렌은 남편 제임스 화잇에게 말했다 (1848년 12월).
"사람들에게 이 기별을 인쇄 해서 보내야 해요.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게 되겠죠.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읽으면 돈을 보내 올 거예요. 초장부터 성공할 겁니다.
이렇게 미약하게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온 세상으로 환한 빛줄기들이 비치게 될 것을 보았어요."
((초기 SDA 3인의 설립자는 제임스 화잇, 엘렌 화잇, 조셉 베이츠다.
제임스 화잇은 많은 직함을 가지게 되지만 그의 가장 고유하고 오랜 직책은 출판가였다))
제임스 화잇은 이 말을 듣고 외상으로 인쇄기를 사다가 출판물을 만들어 흩어진 소수의 남은 밀러주의자들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인쇄기 대금은 독자들의 기부금으로 갚을 것이었다.
그 인쇄물의 처음 제목은 "Present Truth" 였는데
엘렌은 묵시 중에 1844년 재림운동 당시의 출판물들을 다시 인쇄해서 보냄으로 재림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다시 복습하여 경각심을 가지게 해야 함을 보았다. 그래서 Adventist Review 라는 정기 간행물 제목이 나오게 된 것이고, 안식일에 관한 진리를 발견하게 되자 Adventist Review and Sabbath Herald 라는 제목으로 발전하고, 이것이 Review and Herald 가 되고, 지금은 다시 Adventist Review 로 되었다.
3인의 지도자중 연장자인 베이츠 (1792-1872) 는 출판 일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정기 간행물을 내보내는 것은 너무 기성교회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제임스 화잇은 그 말에 낙담하여 이 일을 그만두려고 했으나
엘렌은 묵시 중에 "하나님이 제임스가 이 일을 중지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는 쓰고 쓰고 쓰고 또 써야 함 write, write, write, and write" 을 보았다고 했다.
베이츠는 이 일로 제임스와 틀어져서 1849년부터 1951년 까지 13개월 동안 기고를 하지 않는 몽니를 부렸다.
설상가상으로 제임스도 과로로 쇠약해져 이제 폐간한다는 광고를 쓰고 있었는데
엘렌은 묵시를 받았다. "나의 남편은 절대로 이 잡지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사단이 기뻐하는 일이다. 계속 출판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를 도우실 것이다."
결국 베이츠도 한결같은 엘렌의 강력한 설득에 마음을 바꾸게 된다.
1860년, 출판사가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Seventh-day Adventist Publishing Association
교단보다 먼저 SDA 란 이름을 최초로 쓴 기관이다.
교단조직
1863년에 SDA 대총회가 조직되었다.
그 필요는 1849년경부터 이미 대두되었다.
제임스 화잇이 1849년 9월에 이 기별을 전하는 사역자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문제 교인들을 단속하고 (광신도들?)
사역자들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등의 일이 절실함을 이야기했다.
엘렌 화잇은 1850년 묵시에서 그런 사실에 동의했다.
재림교회 선구자 3인 중에 베이츠는 교리형성시기 (1846-49) 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제임스와 엘렌은 조직형성시기 (1850-63) 와 그 이후 20년간 가장 큰 지도력을 행사하게 된다.
제임스는 행정자였고, 아무 직함을 가지지 않은 엘렌은 조언자였다.
이 부부의 조합은 35년 동안 강력한 지도력으로 이 교단을 세우고 이끌어 나갔다.
이 시기에 엘렌과 제임스는 서로 의지하며 불가분의 관계였다
(('엘렌 화잇이 없었다면 SDA 의 모습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제임스 화잇이 없었다면 SDA 는 없었을 것이다'
라는 말이 2003 년에 출판된 그의 전기에 나온다))
1881년 60세에 제임스가 사망하고 나서 엘렌 화잇의 생애는 제 2기를 맞는다.
남편 없이 홀로 그녀는 34년 동안 홀로 이 교단의 지도자로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 1863년 SDA 대총회가 조직되는 데에는 또 다른 실질적인 필요가 있었다.
출판 사업, 교인들의 헌금 관리, 사역자 대우 등에 있어 제임스 화잇 혼자 일을 처리하다 보니
재정 운영의 투명성이 이슈가 되는 일이 있었다.
자칭 타칭 유능한 비지니스맨이었던 제임스는 출판사 교단 일 뿐 아니라 개인 재정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주로 주식과 부동산 투자였다.
이러다 보니 그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섞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고 이것은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자주 여행을 해야 하는 그는 매우 비싼 마차를 타고 다녔다 (요즘 말하면 BMW?).
교인들과 사역자들이 가난하던 시절 이것은 가십거리였다.
1854년, 제임스가 출판사 재정을 오용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감사를 받은 적이 있다.
제임스는 이런 구설수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일인 체제가 아닌 교단 기관이 있어야 할 것을 절감했던 것이다.
1863년 3월, 대총회 조직이 거의 막바지에 달한 무렵, 제임스의 재정 운용에 대한 조사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대대적인 조사가 있었다.
제임스는 여기서 잘못 없음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리뷰 지에 부동산 광고를 내고, 스스로 부동산을 팔고 사고 (배틀크릭의 집은 그렇게 마련되었다)
사슴 가죽을 수입해다 파는 등 제임스는 끊임 없는 재테크를 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은 지도자의 다른 일면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그의 정서의 배기 밸브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어쨌든 1869년에 교단은 다시 그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그에게는 일생 그런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서 오늘은 여기까지 합니다.
제 7장 나머지 부분
의료기관
교육기관
에 관한 것은
며칠 후에 올리겠습니다.
김주영님
어떤 재림교회의 사학자가 화잇의 선지성을 말할때 그분이 쓴 책들보다 더 선지성이 우선하는 쪽이
오늘 기업가로 소개되는 그런 부분들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만큼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병원 교육 출판을 미리 바라본 그 안목이 빛을
발했던 결과 입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