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로 광주민주화운동 발생 35년이 지났지만 언론의 왜곡과 폄훼가 계속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발생한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되풀이 됐다. 독재정권 시절 통제 받던 언론이 민주주의 이후 사회에 안착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안종철 정치학 박사는 자유언론실천재단,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등이 지난 16일 광주 5·18 기념재단에서 연 5·18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 심포지엄 ‘5·18과 언론’에서 “2년 전인 2013년 5월 본격적으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 보도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종합편성채널인 TV조선은 2013년 5월 13일 탈북자 임천용씨를 출연시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600명 규모의 북한군 1개 대대가 침투해왔다”,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북한에서 내려온 게릴라”는 등의 방송을 내보냈다. 


채널A는 같은 해 5월 15일 북한군 특수부대 탈북자 출신을 출현시켜 “50명의 북한군이 80년 5월 광주에 남파돼 광주시민과 군인에 반반씩 나뉘어 활동했다”, “북한에서는 5·18민주화운동이 북한군 소행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안 박사는 ‘광주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 의혹’이 전두환을사랑하는모임, 일간베스트저장소, 지만원씨 등이 주도적으로 퍼뜨리는 괴담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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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이 광주 금남로에서 한 시민을 연행해 탱크 앞에 무릎을 꿇리고 있다. 
@연합뉴스
 

 

안 박사는 먼저 북한군이 광주에 왔다는 주장에 대해 “당시 현장에서 ‘북괴는 오판 말라’는 구호를 외쳤다”며 “조금이라도 과격한 발언을 하는 시민이 있으면 계엄당국에 수사를 요청한 반공민주화운동”이라고 말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국가기관의 6차례 걸친 조사에서도 ‘북한군의 개입’이라는 주장은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이 논란이 재론된 2013년 국방부는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부인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대학생은 없었고 북한군만 있었다는 주장도 허구라는 지적이다. 안 박사는 “지씨가 ‘책가방 속에 돌멩이를 가져와 던졌기 때문에 광주 대학생이 아니고 북한 특수군’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이는 어떤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심각한 논리적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북한 특수군이 교도소를 공격했다는 주장은 어떨까. 광주민주화운동 괴담 중 “시민군으로 가장한 북한 특수군 600명이 광주교도소를 공격했다”는 주장은 1995년 검찰수사결과 보고서와 1985년 국가안전기획부 자료를 참고했다고 한다. 


안 박사는 “실제 해당 자료를 보면 시민군이 간헐적으로 6회 가량 접근했다, 안기부 자료에는 3회 습격, 2회 교전으로만 표현돼 있다”며 “북한 특수군 600명”이나 “공격했다”는 주장 모두 허구라고 반박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천주교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주검 사진을 컬러로 배포해 광주시민의 분노를 촉발했다는 주장은 시대적으로 맞지 않다는 평가다. 안 박사는 “1980년 당시 컬러 사진은 희귀했고 현상·인화 하는 데 며칠씩 걸렸기 때문에 이는 시대상황과 결부해 판단할 때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안 박사에 따르면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사진은 1987년 5월 광주가톨릭센터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소문과 유언비어만 난무하던 80년 광주 모습을 7년이나 지난 후에야 광주 시민들이 알게 됐다는 것이 안 박사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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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앞 광장은 상황을 파악하려는 시민들로 가득찼다. 19800년 5월 25일 시민들이 희생자의 관을 앞세우고 광장에 모여있다. 
@연합뉴스
 

 

“복면한 사람들이 북한 특수군”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가 있은 후 일부 시민들이 복면을 한 것이라는 반박이다. 안 박사는 “경찰 수사 결과에서도 유모씨와 홍모씨가 복면을 하다 체포됐다는 등 다수 기록이 존재한다”며 “그나마 계엄군 철수 후 시민군이 자체적으로 무기 회수에 나섰기 때문에 복면부대가 특수부대원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안 박사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가유공자나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폄훼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법 개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전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세월호 참사는 정부·자본·언론 권력의 문제점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특성을 지녔다”며 “세월호 참사 후 불거진 ‘기레기 언론’이라는 신조어는 특히 이명박 정권 이래 심화된 대중매체의 위상 추락 속에서 등장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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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서울 광화문 중앙광장에 세월호 유가족과 5천여 명의 시민이 모인 가운데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 촉구 범국민추모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4.16연대 제공
 


고 대표는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나타난 ‘기레기 언론 보도’ 사례로 탑승객 전원 구조를 “한국 언론 사상 최악의 오보 사태”로 꼽았다. 이어 지상파의 해경 구조실패·정부 책임 외면에서 신문은 세월호 참사의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뤘고 방송은 다소 자극적인 선장과 선원, 청해진 해운 등에 더 주목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 대표는 ‘유병언 괴물’ 만들기 보도에 대해 “정부 당국과 언론이 참사의 본질인양 대대적으로 부각시켰다”며 “특히 지상파 방송 등은 유병언 보도에 치중하면서 참사의 구조적 문제를 짚는 탐사보도 등을 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고 대표는 또 참사 1년이 지난 뒤 책임 규명이 안 된 점이나 정부의 국가대개혁 약속 실종 등 정부 책임론이 거론되지 않는 언론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보수언론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매도하고, 악성 루머를 확대재생산한 데 대해 고 대표는 “정부·여당의 책임은 묻지 않고 모든 갈등의 원인을 유가족으로 돌렸다”고 지적했다. 


고 대표는 “TV조선의 세월호 민심 조작 보도”, “세월호 특위를 무력화시키는 정부 행태 방관한 보수언론과 KBS”, “세월호 특조위원과 시민을 폭력적 좌파로 몬 조선일보” 등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부적절한 보도로 꼽았다. 


고 대표는 이런 ‘기레기 언론’ 등장 원인으로 전체 사회의 정치·경제적 상황, 언론사 조직 특성과 사회와의 관계, 언론인의 가치관·자질 문제 등으로 분석했다. 그러면서 고 대표는  “독제체제 하에서의 보도지침 등 국가권력에 의한 야만적인 언론통제가 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고는 하지만 낙하산 사장·방송통신심의위의 정치심의·청부심의가 방송의 자율성을 짓밟고 공정·공익보도를 저해하는 폐해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