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화잇 11장 과학과 의학 (2)

by passer-by posted May 25, 2015 Likes 0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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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이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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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잇은 1871년 11월자 <건강 개혁자(Health Reformer)>에 기고한 한 글에서 “정신력과 도덕력이 신체적 건강에 달려 있다”고 썼다. 수십 년 뒤 이러한 그녀의 논조는 더욱 명확해졌다. 그녀는 뇌의 건강이 정신력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뇌가 건강하려면 피가 정결해야 하고, 피가 정결하려면 잘 가려먹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결론은 당연히 그녀의 어린 시절 경험과 맞닿아 있었다. 그녀의 영육간의 연관성에 대한 신념은 무엇보다도 평생 선과 악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의해 한 개인의 구원이 결정된다는 그녀의 오랜 신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녀는 한 개인의 오감과 뇌를 통제하고 하나님께 복종시키는 삶이야말로 그를 영적 승리로 이끌어줄 비결이라고 생각했다. 화잇은 하나님이 꿈과 이상을 통해 인간의 오감으로 영감을 주는 것처럼, 사단 역시 최면술과 강신술의 형태로 젊은이들을 사로잡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는 최면술, 영매술, 크리스찬 사이언스, 임마누엘 운동, 신지회, 동양 종교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강신술(spiritualism)”이란 단어를 종종 사용했다. 실지로 오늘날로 보자면 최면술과 유사한 강신술은 1836년 프랑스인 샤를 뿌엥(Charles Poyen)에 의해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화잇 당시 많은 미국인들에게 각광받기 시작하던 때였다. 당연히 화잇의 망아(忘我)적 상태에서 보여주는 징후가 이러한 동물 자기(animal magnetism)의 형태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그 둘을 같은 것이라고 판단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화잇 스스로도 자신의 계시가 하나님께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최소한 한 번은) 의심했는데, 그 결과인지 (그녀의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이 그녀를 12시간 동안 벙어리가 되게 만든 적도 있었다고 한다. 1850년대 폭스 자매의 영적 두들김과 함께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최면술과 강신술이 독버섯처럼 퍼져 나갔다. 이처럼 당시 질병을 진단하고 적절한 처방전을 내려주는 최면술사와 최면제의 인기는 상당했으며 그 인기에 힘을 얻어 에디(Mary Baker Eddy)는 크리스찬 사이언스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크리스찬 사이언스의 상당한 성공과 기적적인 부흥에 위기를 느낀 주류 기독교진영에서는 웨케스터(Elwood Worcester)와 맥콤(Samuel McComb)은 사이비 종교가 아닌 “진짜 기독교” 종교로서의 치유를 강조하는 임마누엘 운동을 주창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화잇은 명확한 판단을 유보했다. 대신 그녀는 그러한 강신술자들과의 대화를 피하라고 조언했고, 그들의 감화력에서부터 멀어지라고 경고했을 뿐이다. 심리학 역시 화잇은 종종 강신술과 연관 짓기도 했는데, 이러한 정신과학을 통해 사단이 수천 명의 사람들의 정신에 독소를 심어 그들이 불신앙에 빠질 것을 염려했다.

화잇은 사단이 인간의 정신을 통제하여 인간이 육적 욕망이 골몰하고, 담배나 술, 기름진 음식, 감성적 문학작품, 대중음악, 춤과 같은 모든 도시 문화에 탐닉하게 된다고 믿었다. 반면 하나님의 정신이 들어오면, 인간은 단순한 식사와 깨끗한 물, 맑은 공기, 노작과 야외 건전 활동, 그리고 인간의 윤리를 고양시켜주는 도덕적 문학작품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화잇은 여성이 가발을 쓰면 뇌 중앙의 척수신경을 뜨겁게 하고 흥분시켜 도덕적인 민감성을 일깨우는 게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녀는 가발이 과도한 흥분이나 정신병을 가져온다고도 생각했다. 이렇게 사람들은 유행을 따르면서 이성을 잃고 광란적으로 타락하며 늦은 저녁 춤을 추고 난 뒤 하는 야식은 영육 간에 모두 위해를 끼친다고 믿었다. 그래함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화잇은 위장이 질병에 걸리면 인간의 뇌는 저열한 열정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생각했고, 불규칙적인 식음 습관과 부적절한 의복은 인간의 고상한 속성을 잃어버리고 동물의 욕정에 휩싸이게 만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자기절제의 습관이 몸에 배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그 영혼을 구원하는데 필수적이라고 가르쳤으며, 케이크와 파이, 양념된 고기 같은 자극적인 음식은 아이들이 자위를 반복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했다.

남편이 신경쇠약에 걸린 것을 두고 화잇은 교단 업무에 대한 지나친 걱정으로 그의 뇌가 과로한 탓이라고 여겼으며 인간이 걸리는 질병의 십중팔구는 과도한 걱정, 원한, 영원히 타는 지옥불에 대한 신앙 따위의 마음의 병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영육의 구도에 대해서 화잇이 생각한 비유는 조화를 이룬 기계나 관리가 잘 된 가정, 식물의 성장과 발달이었다. <실물교훈>에서 예수의 비유를 설명하며 화잇은 잡초를 뽑고 식물을 전정하는 원예에 대한 개념을 기본적으로 활용했다. 그녀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지식이 우리의 신체적인 능력을 개발하고 돌보는데 가장 최고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하나님의 천연계의 법칙을 드러내는 학문이야말로 죄악으로 기울어지는 우리의 유전적 경향을 극복할 수 있는 무기인 셈이다. 에덴 이후로 저열화된 인간의 능력과 의지력을 개발하고 단도리하지 못할 경우 인간의 운명은 타락일 뿐이다. 문제는 그 능력이 인간 어느 부분에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화잇이 살았던 19세기만 하더라도 그간 발달한 인체해부학적 지식으로 위장과 간, 심장(혈액), 그리고 뇌가 인간 능력이 발휘되는 장소를 두고 각기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뇌는 이해력과 정신의 장소로, 심장은 영양소와 정서가 운반되는 감정의 장소로, 위장과 간은 신체 기능을 위한 필수 영양소를 처리하는 장소로 이해되고 있었다. 이러한 신체에 관한 이해가 화잇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별히 갈(Franz Joseph Gall)과 스푸츠하임(Johann Gaspar Spurzheim)과 콤비(George Combe)에 의해 각기 개발되고 대중화된 골상학적 지식이 그녀에게 이러한 관점을 깊이 심어주었다. 당시 그들은 인간의 뇌에 색골기질, 양심, 존경심과 같은 다양한 “장기들”로 또아리를 틀고 있다고 여겼다. 운동을 통해 누구나 긍정적인 특성들이나 기질을 담당하는 정신적 장기(mental organs)를 개발하고 강화시킬 수 있고 부정적인 특성들은 약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1830년대 골상학자들이 미국을 돌며 강연을 했을 때 당시 미국인들은 열렬히 이 새로운 학문을 하나님의 기이한 설계의 한 단면으로 받아들였고 화잇 역시 1864년 수치료를 위해 댄스빌에 머물 때 두 아들 에드슨과 윌리를 제임스 잭슨의 골상학 저서들을 읽게 했다. 그녀는 물리주의자였지만 유물론자(물질주의자)도 이신론자도 아니었다. 그녀는 인간의 신체가 일단 돌아가면 계속 저절로 돌아가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인간의 호흡, 심장의 박동 하나 하나가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기속적인 증거라고 믿었다. 화잇은 인간의 신경조직을 살아 있는 기계와 같은 인간의 몸의 작동을 주관하는 명령을 전달하는 메신져와 같은 것으로 여겼다. 뇌에서 발원하는 이 전기력(electric power)이 인간의 신체라는 전체계에 생기를 주고 질병을 이기는데 혁혁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 전기 자극이 그녀가 믿었던 신경생리학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그 결정적인 사례로 (비록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1877년 메사추세스주 댄버스(Danvers)에서 있었던 기이한 치유의 경험을 꼽았다.

19세기 초반 지질학자들은 옥스퍼드의 지질학자 버클랜드(William Buckland)의 제안에 따라 소위 “수백만 년 된” 지질주상도(geological column)라는 걸 만들었다. 1840년대 초반 복음주의적인 기독교인들조차 지구 6천년설과 노아 홍수의 지질학적 증거를 찾는 데에서 벗어나 당시 우후죽순 발견되는 여러 고대 생물들의 화석을 근거로 창세기 1장을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창세기와 지질학적 증거를 조화시키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들은 모세가 말한 “날”을 지질학적인 연대로 해석해 버리거나, “태초에” 이루어진 창조와 후대 에덴의 창조 사이에 소위 “갭(gap)”을 끼워 넣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화잇은 줄기차게 지구상에 생명체는 아주 최근에 등장했으며(젊은지구설) 발견되는 화석들은 보편적 홍수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고집했다. 그녀는 정확한 묵시를 통해 지구가 창조된 지 6000년 밖에 안 됐으며, 하나님이 단 육일 만에 천지창조를 하셨음을 보았다. 그녀가 창조과학에 이렇게 완고한 관점을 유지한 이유는 안식일 준수에 대한 신학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하루를 지질학적 연대로 여기고 더불어 안식일마저도 무한히 확장된 기간으로 해석하여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을 흔드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불신앙이었던 셈이다. 그녀는 평생 보편적 홍수 사건과 그로 인한 산악지대 형성, 화석화 과정, 석탄-석유 형성을 설명하는 근거로 격변설을 주장했다. 또한 그녀는 노아 홍수 때 방주를 통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종을 보존시키셨으나, 그간 “혼종(amalgamation)”의 결과로 만들어진,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은 동물들은 홍수로 멸망당했다고 분명하게 글을 통해 주장했고, 홍수 이후 인간과 동물 사이의 혼종이 있었고 이것이 동물의 무한히 다양한 종과 여러 인종들을 낳았다고 밝혔다. 이 발언을 통해 이후 여러 신학적 난제들과 불필요하게 복잡한 비판들이 촉발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흑인에 대한 화잇의 인종차별적 태도였다. 물론 이에 대한 변호를 유라이아 스미스가 했으나 그런 수고가 무색하게 수년 뒤 화잇은 자신의 혼종 이론을 동식물계 전반에 확대해서 적용했다. 결국 화잇은 그러한 혼종을 낳는 존재로 사단을 지목했고,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대로 모든 종이 구분되어진 채 남아야 한다고 명령하신다는 묵시를 보게 된다.

그녀가 단 한 번도 직접 찰스 다윈을 언급한 적은 없으나, 인간이 세포나 배아에서부터 진화되어 나온 존재로 여기는 자들은 맹렬히 비난했다. 그녀는 학교에서 이러한 진화론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가르쳐지는 것을 가슴 아파했다. 1902년 젊은 캐나다인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는 화잇의 이러한 관점을 반영한 저서를 내놓는다. 그는 특히 지질학적 연대를 놓고 씨름을 벌였는데, 화잇의 천지창조와 타락, 세상의 배도, 홍수에 이르는 일련의 성서적 사건들을 풀어내는 해결책을 “홍수지질학(flood geology)”이라는 유사-지질학적 지식을 가지고 찾으려한 것이다. 특히 그는 홍수 때 동식물이 매몰된 것이 화석화되었다는 화잇의 개념에 매료되었는데, 이를 두고 “신격변설(new catastrophism)”이라 명명했다. 1920년대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과 같은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자들과 논쟁할 때 프라이스의 이런 이론들을 자주 인용했다. 196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비재림교 학자들인 휘트콤(John C. Whitcomb)과 모리스(Henry M. Morris)가 그들의 저서에서 프라이스의 홍수지질학을 젊은지구창조설의 핵심으로 삼으면서 그의 이론(사실은 화잇의 이론)이 복음주의 주류로 편입되었다. 1970년대 이런 관점은 “과학적 창조론(scientific creationism)” 또는 “창조과학(creation science)”라 명명되었지만, 사실 여기에는 갭이론과 6000년설을 믿었던 화잇과 명백한 노선의 차이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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