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 Slavery, and Race

by 아침이슬 posted May 26, 2015 Likes 0 Replie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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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 Slavery, and Race

Introduction

화잇여사의  비평가와 추종자 모두그녀의  미국의 남북전쟁과 그 여파에 대한 진솔들을 왜곡하였다.  그들은 너무 자주 그녀의 의견, 추측, 그리고  그녀가 거짓 선지자 혹은 진정으로 영감을 받은 선지자로 즉명하는 논쟁목적으로 쓰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동의하는 여러 공감대가 있었고 그것을 주목할때 서로에게 이익기 될수도 있다: 노예제도와 남북전쟁은 화잇여사에게 중요한 주제였다, 그녀가 오늘날의 기준으로 "인종 차별 주의자" 로 표시 된다면  신뢰성이 손상 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엘렌화잇이   정말 선지자라면 사건의 과정들을 정확히 예상할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그녀의 글은 비록 예언적이고   미래에 대한 독자의 추측을 장려하지만 이 기능은 그녀의 주 목적에 주차적이다. 재림교회신자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지시하는것이 그녀의 주목적 이였다.   그리고  엘렌의 남북 전쟁에 과 노예제도의 대한  논평은 놀라울 정도로 빈약하였다.

엘렌화잇의 전쟁과 관련된 문제들을 정치적 운동가 혹은 역사적 분석가의 신분으로가   아니고  이세상 종말을 전파 하는 복음 전도자로 접근하였다. 화잇여사는 재림의 설교자였고 종말 예언자로써 그녀의 주위에 모든 것을 시대의 기호로 해석하였다.  

Civil War

재림교회는노예 제도를 반대하였지만,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면서 재림시에 노예제도가 존제할것이라고 가르쳤다. 따라서  노예 제도는  절대로 폐지되지 않고 모든 지상의 정부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것이라고  믿었다. 미국 남북 전투가 시작했을 때, 재림교회는  최악을 예상하였고   전쟁 은 지구의 마지막 위기의 시작을 의미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노예 제도를 비난하였지만  미국을 경멸하지 않았다. 재림교인들에는 미국은 지구상에서 마즈막이고 가장 큰 희망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 실패하는것을보고 , 나라가 퇴보하고    "설립자의 지혜와 미덕 "에서  급신속히 떠나고 있다고 믿었다.

화잇여사는 남북전쟁은 노예제도를 문제로 일어났고 초기에 북쪽의 실수, 즉 진리에 따라 행동하지 못함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녀를 비롯한 재림교인들은 전쟁이 끝나고 "자유의 새로운 탄생"    또는 국가의 번영, 평화 및 확장의 기간을  따를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Slavery

노예 제도를 반대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엘렌도 노예 소유자의 죄에 대해 그녀의 의견을 집중했다.   노예는  어떤 사람의 재산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들의 정당한 주인이라고 그녀는 선언했다.  엘렌은 도주한 노예의 자유를 부정하거나, 심지어는 잔인한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일들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녀는 기근과 역병과 그리고   궁극적으로 투쟁, 전쟁, 유혈 사태를 포함하여 점점 더 크게 고통이 증가될 것과 결국에는  미국이 겸손히 먼지로 남을것을 예상하였다. 엘렌은   틀림없는 명확한 미래를  자주 밝히지 않았으나 재림교인들에 의무에대해서는 강력하고 분명한권고 를  했다.

징병 제도의 경우, 정부는 하나님의 법의 위반의 책임을 맡아야하고  재림교인들은  여전히 미국 국가의   모든 좋은 법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신자들은 하나님의 강력한 힘을 신뢰하고 군사징병 때문에 무서워서 떨필요가 없고 징병을 피해서 미국에서 도망칠 필요도 없다고 말씀하였다.   동시에 신자들은  전쟁에  자원봉사 로 가입하여 싸우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하였다.

1863 년도 이후 엘렌은 미국이 격고 있던 불같은 시련에 대해 더이상 별 말씀을 안했고  동맹 동정과 군대에 자원봉사를 비난하는 신흥컨센서스와 승인한후  정부와의 세부한 사항 처리들 는 형제들 (brethren) 에게 마껐다.

Race and Reconstruction

연합군의 승리와 노예 제도의 종료 후, 재림교회의 예언 해석과 나라가 급속도로 쇠퇴한다는 확실성을   재검토 할 수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들은 재건의 위기도  남북 전쟁의 반응했던 동일한 방법으로 반응하였다. 선지자 나 다른 교회 지도자들은 변하지 않았다.

화이트은 성경에는 어떤 계급이나 색상이 존제하지 않음을 확인하였지만, 아직 편견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일할수 있는 시간이오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얼굴색에 관한 문제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처리해야하고 누구도명확하게흑인들의 보편적으로  적절한 위치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였다.

인종적 갈등과 긴장감이 (racial tension)  상승하는 기간 동안 모순 된 진술들 을 하였다.  1891 년, 그녀는  우리 예배드리는 장소에 흑인들을 제외할 자격증을 신에게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였고 1908년도에는 흑인들은 백인들하고 평등한  배치를 촉구하면 안된다고 언급하였다.  

결론

엘렌 화잇여사는  컬러 라인, 미국의 개혁 운동, 평등의대한 정치적 의미등 "인간의 이론"에 대한  별 관심이 없었다. 재림교인으로, 그녀의 주로 마즈막 시대와   최후의 판단에  포커스를 두었다.  그녀의 리더십은 미래의 상세한 예언를 제공 하는 능력으로 기반하지 않았고할 수 있지만,  화잇여사는   “복된 희망” 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을 독자와 청중을 설득시키는 카리지마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


나의 생각들

젠더와 문화에 대한 글들과 다르게 War, Slavery, and Race 를 읽을때는  약간의부담을 느꼈다. 몇년전에 나의 세계관을 성립하는데 중요한 핵심 적이였던 믿음들이 큰 지진속에 와르르 무너지면서 경험했던 그 당혹함을 다시 구경하러 온 느낌이였다. 아무리 강력한 감정이라고 시간이 지나면서 첨차 그 강도가 줄어들듯이 이 경험도 그러하였다.

나의 삶에   화잇여사의 글들을 학문적인 방법으로 공부하기를 갈망하던 계기가 있었다.  내주의에 믿음의 멘토들에게 나의 마음의 원함에 어떻한 답을 얻기 위해 탐구하였지만, 나는 더욱더 깊은 수렁이 속으로 빠지고 있었다. 혼자 연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주로 인터넷에 올려진 여러 입장에서 쓰여진 글들을  읽었다.   D.M. Canright 의 간증과 페스픽 유니온 대학에 Fred Veltman 의 Desires of Age 책의 대한   표절행위해 대한 연구 발표등은 나를  크게 놀라게 하였다.  진실을 탐구하는 너무나 소중한분들이 혼신을 다하여 기도와 연구의 결과라고 믿어지는 글들이였고 동시에 나에게 줄넘기를 하게한 경험이였다.

재림교회 예언 해석과 달리 연합군에 승리 그리고 노예제도 종료 됨 그리고 흑인의  대한 엇갈리는 발언들은 화잇 여사에 대한 첯 믿음에  흔들림을 주었던 시간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였다.  그러나 “복된 희망” 을 많은 사람들에게 심어준 화잇여사께서 하신 좋은 말씀들과 업적들에 촟점을 두고, 잘이해 되지 않는 부분들은 훗날에 또 다른 깨우침이 오기를 기대하며서 오늘도 “복된 희망” 을 감사하게 마음에 품고 올바른 길로 열심히 살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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