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한국은 이름다웠다
하정아/수필가
하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5/05/27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05/26 22:58
'이 참에 조국의 의미를 확실히 알려주겠노라.' 한국은 작심했음에 틀림없다. 눈길 가는 곳마다 발길 닿는 곳마다 곱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싱그러웠다. 고국이 나를 받아준다는 느낌이 뭉클, 마음과 피부에 닿아왔다. 만 30년 만이다. 그동안 대여섯 차례 오고갔지만 한 번도 그 품에 제대로 안기지 못했다. 일주일 혹은 사흘 밤낮을 머물다가 홀연히 떠나오곤 했다. 2015년 4월을 잊지 않으리라. 모악산 금산사 뜰에서 생애 처음으로 만난 모란꽃, 그 검붉은 꽃송이 앞에 서니 이민생활의 영고성쇠가 명멸했다. '모란', 니은(ㄴ) 발음을 하려는 순간, 참 이상했다, 영어 단어인 양 입술이 저절로 동그랗게 모아지면서 혀가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후두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둥근 단어에서는 감미로운 향기마저 났다. 산사에 어울리지 않는 자홍빛 자태로 고혹적인 향기를 내던 모란이 지금도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물을 만난 기쁨을 어떻게 설명할까. 섬진강은 늘 '그리운 그대'였다. 언제나 그 물에 손을 대어볼까 꿈꾸었다. 임실 옥정호에서 흘러내리는 섬진강 상류와 노량의 하동대교 아래에서 남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섬진강 하류를 만났다. 500리 섬진강 물길을 따라가는 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뼛속까지 메말랐던 사막의 갈증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발원지가 멀어질수록 넓고 깊고 맑게 흐르는 강. 더러운 것 하찮은 것 가리지 않고 받아주었기 때문이라고 강은 말한다. 그 마음 덕분에 조금도 흐려지지 않고 오히려 깨끗해지고 깊어졌다고 한다. 신록의 화원. 녹색의 향연. 완만한 산등성이마다 봄으로 충만했다. 홍목련이 있고 꽃잔디와 철쭉이 있는 산. 아기단풍과 소나무와 아카시아가 있는 산. 품마다 나무와 꽃으로 가득하고 골마다 물기와 물길을 넉넉히 품고 있는 산. 바윗돌로 이루어져 사시사철 거칠고 건조한 남가주의 산과는 대조적이었다. 다시 만난 한국은 내게 조국이기도 하고 타국이기도 했다. 조국은 내가 지금까지 만난 그 어느 낯선 땅보다 밝고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미 바뀌고 사라진 곳일망정 여전히 정겨운 지명들과 함께 희미한 흔적으로 남아있어서 내 유년기와 청년기의 얼룩진 상처를 다독여주고 어루만져 주었다. 조선시대 시인 박원준은 세상 사람들이 꽃의 빛깔을 볼 때 자신은 꽃의 기운을 본다고 했다. 나는 한국의 온화한 4월의 기운 속에서 자연을 닮은 달콤한 모국어와 정겨운 얼굴들을 보았다. 설악산 모퉁이에서 마음을 씻는 세심교(洗心橋)를 건너며, 제비산 기슭 금평저수지를 바라보고 마음을 닦는 동심원(同心圓) 계단을 오르며,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마음의 올레길을 걸으며, 한국이 마음과 영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라임을 새삼 깨달았다. 조국의 진심을 발견한 기쁨이 컸다. 정겨운 내 나라, 따뜻한 내 조국, 한국. 사람은 모름지기 태어난 땅에서 제 나라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하거늘. 나는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부럽고 또 부러웠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내 나라 내 조국에 반드시 되돌아오리라, 는 간절한 소망이 물밀듯 차올랐다. |
감사드립니다
전용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