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남자의 이상한 사랑

by fallbaram. posted Jun 12, 2015 Likes 0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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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민초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딱 장례식 분위기다.

세월호 때문인지...


오늘은 이 세상의 노래중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고 이 세상의 소설중에서 가장

많은 주제가 되고 이 세상의 영화나 드라마 중에서 이것 빠지면 앙꼬없는
찐빵이 되고 마는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날이다.


우선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부엌에 있는 한국형 다방 커피 두개를 온수에 풀어

벌써 한두번 홀짝거리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예언님은 벌써 커피 마시고 쓰는 이야기는 영적이 아닌것으로 판단하고

바로 여기에서 고개를 돌리게 되겠지만...


한때는 이런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들어본 기억이 있다.

남자들이 여자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요리나 바느질에서

여자보다도 더 뛰어난 분들이 있고 또 최고도 언제나 남자였다는 이야기.


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 이 "사랑" 이라고 말하고 노래하고 열광하고

인류가 공히 추구하는 마치 불멸같이 영원한 주제속에서 사랑의 화신은 아프로디테라는 여신이

아니고 어떤 이상한 남자라는 사실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커피 한잔이 아니라 막걸리 한잔 마시고 해야 할만큼 뜨겁고 아름답고 취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는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행여 남자의 알량한 사랑에 발목 잡히고 실망하고 배신당한 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권하고 싶은 또 하나의 남자 그 마지막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창세기의 창조를 제법 과학적이고 똑똑한 남자들이 창조과학이라는 현미경으로 읽고는 창조가

하나님의 역사가 틀림없다는 결론으로 성급하게 치닫는다.


안식일도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니라에 맞추어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는데

제 7일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그런날이라고 추측하고 또

경건하게 지켜야 할 날로 짜맞추는 경건주의의 소위 남은자들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것도 모자라 예수님의 인성과 아담의 인성과의 동질성 그리고 다른점등

무슨 영생이 어떤 교리나 공식에 의해서 갈 것인것처럼 난리다.


그러나 그런 경건주의의 남은자들 속에서 마치 이방인처럼  아니 돌팔이 처럼 소속도 애매하게

붙어서 그분들의 정통성 있는 싸이트에서는 하지도 못할 사랑이라는 삼류 (?)의 이야기를

민초라는 잡종싸이트에서 하고 있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측은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푸시기를 먼저 기도한다.


사실 나는 원숭이가 사람이 되지 않는 사실을 지금도 보고 있고 그래서 진화론을 성큼 받아들일 수 없는

가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성경을 읽으면서 그보다도 더 심한 가설 하나를 창조의 이야기속에서

읽게 되었다.


상당히 고민하고 그에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썼다.

남자의 갈빗대에서 나오는 여자라고?

지금은 어떤 여자도 남자의 갈빗대에서 나오는 것을 본일도 없고 또 듣지도 못했다.

그래서 남자의 갈빗대가 하나 부족하다는 유언비어는 들었지만.


모든 여자들과 남자들이 지금은 어머니 (여자)의 자궁에서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냥 자궁을 거치지 않고 배를 갈라서 나오기도 하지만.


흙으로 남자를 빚어서 만들어 놓고는 깊은 잠 (?) 재워놓고 그 몸에서 여자가 나오게 한 것이란다.

인간 다윈의 이야기는 읽어 보지도 않고 쓰레기 통에 쳐넣어면서 거의 같은 수준의 이 전설적

이야기는 왜 천연덕스럽게 받아들이고 결혼식장에서 언제나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찌니라" 고 앵무새같이 말하게 되는가? 밑도 끝도 없이...


표상이라는 의미에서 나중에 그리스도와 교회라는 관계속에서 이 이야기를 이해해야 한다고

근접하게 닥아간 설교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교회가 그리스도의 갈빗대에서 나온것이라고

생물학적으로 읽어 버리면 나중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가슴에 들어있던 여자를 향한

인류역사의 최고의 사랑이라는 아가페적인 호르몬을 보지 못하게 된다.


아기가 출산이 가까우면 모체는 아기에게 필요한 수유의 과정을 촉진시키고 어머니의 마음에 아기를

향한 모성의 본능이 진하게 나타나도록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양면을 돕는 묘약이 나오게 되어있는데

그것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다.


첫 아이를 낳은 후에 내 아내의 입술에서 사랑의 홀몬 그리고 일명 어머니의 홀몬 옥시토신이 이런 말을 하게 했다.

"다시 아기를 낳지 말자고"

그 첫째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애가 타도록 좋았던지 이 아이 외에 다른 아이를 더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그 이유이다.


육신의 번식을 위한 창조의 배려도 이렇게 사랑이라는 관계로 디자인 하신 분이

영적인 관계를 위한 구속의 청사진에는 이런것이 없을 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로다" 고 부르짓던 그 음성과

"다시 아기를 낳지 말자" 고 하는 내 아내의 신음소리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는 단말마가 다 사랑이라는 묘약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절규이다.


이렇게 예고된 한 남자의 사랑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속에 거하시려고

뼈중의 뼈 살중의 살인 그 여자를 찾아 이땅에 오셨다. 성육신의 순수한 목적이다.

호세아의 사랑이다.

이미 다른 남자에게 유혹당하고 그 남자와 간음해서 죽은씨를 통해서 낳은 죽어있는 자녀들까지 찾아서

당신의 자녀로 입적시키려 오셨다.


이런 사랑을 지켜본 사도바울이

"누가 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 내겠느냐" 고 절규한다.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가 많을 것이라는 말이

이런 남자노릇을 하고싶은 남자들이 많겠지만 (특별히 율법의 남자들)

그 남자들에겐 이런 사랑이 없을 뿐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의 씨도 없다고 하는 말이다.


여자가 에덴에서 범죄 하기전에 있었던 현상

"서로가 서로를 향해 옷을 입지 않았던"

그 현상으로 다시 가는 길은 여자의 회심 (준비) 때문이 아니다

이미 준비된 남자의 사랑 때문이다.

"은혜의 보좌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자" 는 사도바울의 말씀처럼

우리 의심의 옷을 벗고 담대하게 나아가자

모든것을 용서하고 다시 기억도 하지 않겠다는 그 사랑 앞에서서

하나가 되자. 그래야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사이도

어느날 (밤) 그랫듯이???


구속과 영생이라는 청사진에서 신약의 시대란

오직 한 남자의 이런 사랑의 시대이고

이 남자 뿐인 시대이며

반대로 목사도 신부도 부랄을 달고 있는 어떤 나부랭이도

다 남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에

이 남자에게서도  배신당한 이야기 있으면

내 목슴 걸터이니 알려 주시오.



품성이 좀 변하면 이 남자 앞에서 어쩔껀데?

안식일 좀 지켰다고 이 남자 앞에서 무슨 말 할낀데?


모세의 오경이라고 암시하는 다섯의 전 남편과 살았던 사마리아 여자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오신 그 남자!


율법에 고발이 되어 현직 간음죄로 잡혀온 그 여자를 정죄하지 않고

그런 여자를 불러 교회를 시작하는 이 남자!


여자 때문에 우리 천국가는것이 아니라니까?

슬기로운 여자는 화장하고 분바르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 곧 이 남자을 아는 자들이고 그래서 졸고 있어도 깨어서 데려감을 당하게 되는것.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과의 대화속에서 뜨거웠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런 관계속에서 진행된 이야기다.

날마다 배신하는 죄인에게 죽어도 놓지 않겠다고 하는 의인의 이야기가

어찌 뜨겁지 아니하랴!!!!!


이런 남자를 생각하니 꼭 날 다시 데리러 올것 같은 분명한 확신

그것이 믿음 이랑께


안그라요?


이 남자가 분명 다시 올것인데 와그리 거창하게 인성이 어쩌고 저쩌고

아담의 범죄전의 어쩌고 저쩌고 떠들고 있는지.

그 남자의 마음이 여자의 범죄 전이나 후에나 하나도 변한것이 없당게로.

둘이 빨개 벗었으나 부끄러워 하지 않게 된 날이 그날이다.

죄가 많아서 발가벗은 여자에게 죄도 없는 남자가 발거벗고 십자가에

알몸으로 달려 준 날. 그 날.

나 (여자) 혼자 발가벗고 있으면 부끄럽잖아!

그러니 빨리 발가벗고 계신 그 남자에게 가서 엎어버리던가 아님 덮어버려야 한다니까!



아가페의 사랑은 숭고한 것이라고 입으로만 찬양 하지말고

시방 당장에 발가벗은 채로 냅다 달려가는 것이 그 사랑을 아는 여자이지.


아가페 사랑이란

여자에게 "뼈중의 뼈 살중의 살" 이라고 선언하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죽어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모든 죄과를 지시고

bla bla bla bla bla



지구라는 집창촌에 내려오셔서

졸고 있는 여자들 깨워서 데려가려고 환장한 이 남자를 못믿어서 왜 그리

얼굴에 화장들 하고 ㅈ ㅃ 졌는지?


믿음이란 아프로디테의 사랑보다 이 남자 (예수 그리스도) 의 사랑이  더 승하고 아름다운것을 확신하는 것.


결론

여자의 자궁에서 나온 자들은 다 죽는다

왜나고?

불안하니까.

그러나 이 남자의 갈빗대에서 나온 여자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
왜냐고?

이렇게 확실하니까 그래서 죽을 수 없다니까


여자의 자궁에서 나온 여자들은 교회에 갔다가 속이 상하면 안나간다.

교회를 지가 나가주는 입장이니까

그러나 예수의 갈빗대에서 나온 여자들은 교회에 오지 말라고 해도

온다.

기다리라고 한 말씀 기억하니까.


믿음이란 딱 맞아 떨어진다고 약장사 처럼 맹글어 놓은 도표에 뿅가는것이 아니라

이런 사랑에 확신을 갖는 것이다. 오직 예수의 사랑에...

도표로 가지 못하는 천국

이 남자의 사랑 때문에 간다고 하는것이 복음이요

진정 좋은 소식이다.


복음 사려!

공짜 복음 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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