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을 님에게 (후폭풍)

by fallbaram. posted Jun 12, 2015 Likes 0 Replie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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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이 조금씩 조금씩 익숙하여지고

님의 이름도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혹시 앞으로도 우리가 어떤 문구나 문자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견하나 올립니다.


사실 이 글을 며칠전부터 마음에 그리다가 오늘은 결국 차분히

앉아서 쓰게 되었는데 다 쓰고 난 후에도 몇시간이 지났지만

그 후폭풍이 마음을 뒤집어 놓고 있어서 할 수 없이

유투브에 들어가서 찬송을 계속 들으며 님이 말하고 있는 그런

반응을 경험하고 있읍니다.

오랫만에 눈물을 흘려 보았습니다.

두가지 의미로.

한가지는 그 사랑 때문이고

또 하나는 나의 죗됨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복음을 쓰면서 얼마나 복음에 젖어드는 성령의 경험을

했을까를 짐작하며 같은 마음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읍니다.


사실 님께서는 십자가에 반응하는 성도의 삶으로 계명에 대한

순종을 강조 하시고 제가 존경했던 장노교회의 한 목사님은

예정론에 입각하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고 했을때

그 세상은 비록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해도 당신이 점지한

무리들을 그냥 세상이라고 표현했고 그 이처럼의 사랑에 반응하는

예정된 무리로만 보는것 마음에 늘 부담이 되었읍니다.

그분과 또 님이 어쩌면 주장하는 "남은 무리" 개념같이 느껴지는 방향 사이에서

제가 초지일관 점하고 싶은 방향은 영생과 구속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 즉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의 방향입니다.


우리의 의가 칭의 (전가해 주는 의)가 아니고 성화의 의 (자신이

행하는 의) 라고 한다면 님의 방향이 더 확실해 집니다.

그러나 오직 기본적 요구가 칭의라면 저의 방향이 더

가깝게 되겠지요.


그러나 방향성에 잡혀있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본인이 잘 보는

뱡향과 잘 보지 못하는 방향이 있을 수 있읍니다.

님이 믿음의 기초적 조건을 넘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즉 계명에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사신다고 해서 영생에 지장이

있지는 않을 것이고 혹 제가 이런 기초적 요구만 주장한다고 해서 또

지장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복음도 어떤 방향성이 있었듯이 우리는 방향성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끝까지 나약한 자들과 잘 일어서지 못하는 자들과

같은 방향성에 서 있고 싶습니다.

우리 예수와 십자가를 말하는것 외에 부딪히는 일로서

우리의 사이가 멀어지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오랜만에 오셨는데 참 반갑습니다.

님의 방향성에서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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