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전성시대

by fallbaram. posted Jun 17, 2015 Likes 0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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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전성시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낳기 바로전에 할례를 받은 처음 사람이 되었으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기 바로전에 성령의 침례를 받은
처음 사람이 되셨다.

할례의 예식은 이스라엘의 뭇 남자들이 다른 "씨"를 기다리는 의미에서 정결과 구별이 섞인 언약을
통해서 남자의 전성시대를 열게되었다 하였으나
침례는 그분이 첫째 아담의 육신으로 와서 육신 (아담의 것) 흐르는 물에 장사하고 하늘 아버지의 (아들)으로 다시 태어나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 상징이요 비유요 동시에 예표이므로 이 예식은 하와로 하여금
"산자"로 오셔서 "다시 산자"로 부활하므로서 그 부활의 대상인 교회에게 "여자들의 전성시대"를 시작하게 하는
언약의 예식이 되었다.
그가 예전에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었던 선택의 길에서 선악과를 선택하면서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죽음의 열매를 맺었던 아담의 씨와는 반대로 이제는 죽어있는 나무 ( 아담의육신)
에서 영생하는 첫열매를 맺으시고 증거로 인간 역사에서 유일하게 부활을 경험하신 것이다.
 
에덴에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인 선악과와 생명과가 각각 두개의 나무로 나뉘어 있지 않고
단수로 나무였음은 성서 언어학자들은 다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나무에서 의심의 열매 죽음의
열매를 따먹고 죽음이라는 열매를 맺었고 둘째 아담은 거기 죽어있는 나무 -십자가 ( 아담의 육신) 에서 영생하는 열매를 맺는처음 열매가 되신것이다. 시기적으로는 몇천년의 사이가 벌어지지만 한번은 남자로 부터 죽음의 열매를 맺게 되었던 선악과로 존재했고 이제 한번은 다른 남자에게서 영생의 열매를 맺게 된 생명과로 바뀌었다 .
그리하여 두번째 여자인 교회가 두번째 남자인 그리스도와 합하여 영생의 열매들을 생산하는
나무   하나님이   이토록 사랑했다고 하는 세상 cosmos 것이다.
 
범죄한 하와에게 " 산자의 어미" 될것이라는 예언은 일차적으로 아기 예수를 낳았던 마리아의 이야기이지만                      
이차적으론 교회를 통해서 수많은 영생의 열매들을 맺게 되리라는 예언이기도 것이다.
 
그래서
신약에 오면 그리도 많은 여자들이 ( 전부다 과거가 있는) 예수앞에 나오고 말씀을 듣는이 들도
여자들이 대부분이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밑에 여자들이 모여있으며 구약에서 주어지지
않던이름들이 여자들에게 주어지고 상징적으로 교회는 남자만을 사모하고 남자만을 기다리는
신부로 표상이 되는 것이다. 과거는 음행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이제 남자를 기다리는 여인은
흐르는 물에 씼은  침례를 통하여 정결한 여인들이 된  것이다.
 
씨라는 개념에서 구약은 남자만을 이야기 하지만
밭이라는 개념에서 신약은 이제 여자만 이야기 하려 하는 것이다.
 
한남자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 이제 신약의 복음이다.
씨가 죽어있는 남자가 아니고 씨가 살아있는 오직 한 남자만 있으면 된다.      
요한복음 4 장에서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과 살았던 남편들 ( 다섯)
구약의 남자들 모세의 오경을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 8 장에서 발가벗은 여자를 끌고 나오는 남자들도 구약의 남자들이다.
율법의 남자들이고 재판관이 모세였다.
 
생명의 빛으로 왔다고 하는 빛속에는
은혜가 충만하여서 어둠의 노예가 여자들에게 은혜와 용서를 통하여
새로운 여자로 거듭나게 하신다.
이름하여 침례의 예식이고 성령의 침례라고 하는 것이다.
 밤중 ( 무지한 상태) 빛이신 예수에게 영생을 물어보려고   니고데모에게 가르친
 거듭남의 기별이다.
 
이제 신약에서는
미련한 남자 다섯 미련한 남자 다섯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직 교회는 이제 남자 앞에서 미련하던지 슬기롭던지 여자로
서야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다섯을 특별하게 취급하고 있다.
4 장에서 다섯이라는 남편을 가진 여자를 등장시키고
5 장에서 다섯행각 아래 38 년간 누워있는 꼼짝도 없는 불구자의 이야기를 등장시키고
다시
6 장에서 다섯개의 떡덩이를 등장시켜서
옛날의 다섯은 영생의 열매를 맺을 없는 모형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모형에 원형이 합쳐질 드디어 여자는 영생의 아기를 낳을 있게 되고
다섯 행각 아래에서 38 ( 사십년 광야 생활을 의미) 살아도 일어 없던 불구에서
원형이 하시는 말씀 하나로 박차고 일어나게 되고
모세가 광야에서 주었던 만나를 상징하는 다섯개도 오천명을 먹일 없었으나
원형이 떡을 떼는 순간에 오천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새로운 남편을 소개함이요
십자가는 앉은뱅이를 송아지처럼 뛰어 오르게 하는 능력이요
십자가는 먹고 마시면 영생하는 떡과 포도주라는 기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하므로   이제 원형으로 오신 남자 말고 다른 남자가 있어서 우리의 신앙을 어디로
끌고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할 일이다.
남자가 소개하는 한분의 하나님 성령하나님 말고 다른 무슨 하나님이 있어서 우리의 신앙을
영생으로 끌어 가게 것인가?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심각하게 생각해야 것이다.
 
비록 현대의 병원에서 태어나면서 버젓이 할례 (포경수술) 받았던 우리 남자들도 이제 영적으로는
교회가 되어 슬기롭던지 미련하던지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가 되는것이다.       
신랑의 씨가 신부의 마음밭에 떨어져 신부의 육신에 흐르는 죄의 생각들을 죽이고
그 육신의 생각들이 썩게 되면 몸에서 예수의 정신 사랑의 정신이 태어나서 자라나게 된다는
이야기가 뿌리는자의 비유이다.
"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이야기다.
 
아프리카의 사자들의 생리속에는 기존의 사자동네를 침입한 새로운 강자인 숫사자가
원래의 숫사자를 몰아내고 무리를 인수하게 되면 반드시 어린 사자새끼들과 자라고 있는
숫사자들을 깡그리 죽이는데
이유는그전에 있던 숫사자의 씨를 받은 사자들을 없애는 행위이고 자신의 새로운 유전자를
받을 있는 성숙한 암사자만 살려 둔다.
 
누가 우리가 경배하고 찬양하고 함께 예배하는 교회의 남자가 되고 있는가?
사단인가
예수인가
그것만이 우리 신앙의 관건이 아니고 무엇인가.
 
참고로 아프리카의 암사자들은 어떤 숫사자든지 덤벼들어 죽이고 없앨 있는 능력이 없다.
우리중에 사단을 잡기 위하여 온갖 머리를 짜내고 666 싸면서 거품물고
씩씩거리는 가짜 남자들이 있는가.
 
어린양만이 그일을 있다는 것이 다니엘서의 핵심이고
계시록의 핵심이 아니던가
 
 
그래서
어린양의 바지 ( 두루마기) 붙잡고  따라오라고 하지 않으시는가
 
그것만이 여자의 전성시대   은혜가 충만한 그리스도의 시대를 여는 비밀 그리고 비결이 아닌가?
 
우리가 여자인데
전에는 아니었으나 은혜가 충만한 신랑 때문에 정결한 여자가 되었는데
 
이런 교회의 비밀도 모르고 " 여자목사의 안수불가" 외치고 있는
불쌍한 종자들을 어찌하면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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