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불선(不善)이다
2015.06.19 00:25
“악(惡)은 악이라는 낱말의 뜻만큼이나 모호하다. 악이라는 것은
나쁜 것인데 단순히 좋은 것이 선(善)이 아니듯 단순히 나쁜 것을
악이라 할 수도 없다. 악을 죄로 규정한 것은 (신을 절대 선으로 믿는) 종교다.
신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상태를 악으로 규정할 때 악은 사탄과 타락한
천사들로 인해 유입된 ‘이물질’에 불과하다.“
어느 조직 신학자의 말이다.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악은 신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들의 고유한 완전함과
자연적 질서가 결여된 상태, ‘심히 좋았더라’ 라는 말의 반대 개념이다“
니체는 “인간은 도덕적인 관점에서 잘못을 악이라 규정한다. 그러나 도덕은
시대의 흐름과 요구에 따라 가변적이므로 악을 규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한스 크뢰버, 독일의 법 정신 의학자는 “악은 세상에 나오기 위해 질병, 부당함,
혹은 어두운 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만 필요로 할 뿐이다”
“善人者,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鏡) 貴其師愛其資”
(선한 사람은 선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며 선하지 못한 사람은 선한 사람의 거울이다
그러므로 그 스승을 귀하게 여기고 거울을 아껴야 한다)
성선론자인 공자도 선의 반대를 악이 아닌 '不善'이라 한 것은
선과 악의 개념을 스승과 반면교사로 상호보완적 관계로 묘사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 “선이 없으면 악도 없다”
절대 선이 없듯이 절대 악도 없다는 전제로, 신학적이거나 도덕적인
관점 보다는 악을 불선의 측면에서 고찰 해 보고자 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년도에 출판된 이 책은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참관한 한나 아렌트( Hanna Arendt)가 저자다.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 유대인 대학살)의 전범으로 나치의 친위 장교였다.
1933년 나치 정보부의 유대인 업무 책임자로 1942년 게슈타포 유대인 과장으로
유대인들을 유럽 각지에서 폴란드 수용소로 강제 이동해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독가스 실로 보내어 목숨을 앗은 주범으로
전후 미군에 체포되었다가 탈출해 개명을 하고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15년 잠적해 있다가, 1960년 5월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체포되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압송되어 재판을 받고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재판을 참관하면서 끔찍한 한 범죄인의 심리상태를 묘사한 한나 아렌트는
독일계 유태인으로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심리학자였다.
2천 년대 이르기 까지 그 책이 히브리어로 번역이 되지 않은 이유는
전 세계 유대인의 공적인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작가는 그를 ‘지극히 평범한
정상적인 사람‘ 이라는데 유대인들의 공분을 사게 된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되자 유대인 사회는 유대인으로 아이히만을 옹호한 그녀를
반역자로 지목하고 규탄을 했다.
재판과정을 지켜본 그녀는 이렇게 진술했다.
“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인간의 가치와 권리로 억압하는 사회, 정치적 구조 악에 대한 저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는 나치에 충성을 다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 했다는 것)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스스로 악에 대한 비판하는 생각을 포기 했을 뿐이다.
파시즘의 광기로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다.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 유죄라고 했다.
악이란 사탄의 모양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재판현장에서 그녀는 목격한 것이다.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 나는 신 앞에서는 유죄지만 법 앞에서는 무죄이다”
“ 악은 꼭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평범한 얼굴로, 평범한 한 관료의
행동이 파멸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건 비판적 사유 부재이다.“
“인간을 악마로 이끄는 것은 절대 악이 아니라
우리 안에 양심의 선택을 저버렸을 때이며, 결국 악은 평범한데 있는 것이며
자신이 도덕과 양심을 외면하는 그 순간에 악이 잉태된다“ 고 했다.
“악은 선의 결핍이다“
‘사랑(선)은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감정의 사치’ 라고 생각한다면
위선(僞善)이야말로 위악(僞惡)보다 도덕적으로 더 나쁠 수도 있다.
악을 악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비판의 사유가 없이 행동하는 것은 악의
불감증보다 악의 평범성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악을 정죄하고 비판에 앞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악인에 대한
공범의식으로 접근이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당대에 최고의 지성인으로 정치가로 무엇보다 종교에
열심한 나머지 악을 악으로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을
핍박한 자칭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을 했다.
그 당시 독일은 유럽 최대의 문명과 문화를 자랑하던 나라였지만 극악을 저질렀다.
그래서 선과 악은 인간의 수양과 도덕만으로 다스려지지 않는
한계를 안고 있는 인류 공동의 과제다.
한자로 악(惡)을 해자하면 ‘등이 굽은 사람의 마음’이다.
외모의 콤플렉스 때문에 자신을 미워(싫어)한다는 뜻이다.
선(善)은 착하다는 의미가 있지만 해자하면, '바르게 펴다'
'온화하게 말하다’,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선은 굽은(왜곡) 것을 바르게 펴는 것이며
비판이나 정죄보다 온화한 말과 태도여야 한다는 의미다.
모든 사람은 악의 성향으로 기울어지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불가항력의 구조(構造) 악으로부터 이루지 못한 선(未善)일수도 있고,
비판적 사유의 부재로 왜곡된 선을 가진 불선(不善)일수도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등이 굽은(왜곡 된) 우리는 악한 자들이라기보다는
불선자로, 본래의 선으로 돌아가야 할 귀선(歸善)자들이다.
악이 죽음에 이르는 절망이라면, 불선은 구도에 이르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댓글 13
고송자
2015.06.19 00:59
李寧熙
2015.06.19 04:53
선과 악 이원론적 사상이 지배한 권선징악은
선과악의 경계인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동시대의 생각과 고민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고집사님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김진희
2015.06.19 02:31
얼마전 어느 분이 말씀하신 "There is no evil without good" 이 생각납니다
그렇군요
악은 악의 표징으로 까만 옷을 입고 나타난다거나, 사탄 마스크등을 쓰고 나타나는것이 아니라! 평범한 모습으로 존재하며 일상적인 생활속에서 찾아질수있는것이군요 완전 공감합니다
정의롭지 못한 것을 아니라고 떨처내지 못하고, 어쩌면 알고도 악을 행하는 것!
선과악은 인간의 수양과 도덕만으로 해결될수없기에 예수님이 이땅에 오시지않았을까요?
李寧熙
2015.06.19 05:03
선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그 자체가 자칫 불선(악)이 될수 있기에
노자의 상선약수/ 최고의 선을 물에 비유한 것은 매우 적절합니다
낮은데로 흐르는 겸손함 ( 居善地 )
연못처럼 고요한 마음 (心善淵)
말은 믿을 수 있어야 하는 (言善信 )
다스림은 바르게 함으로 (正善治 )
일은 능숙해야 하는 (事善能)
행동은 때를 분별하는 (動善時)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은 순리의 (流水不爭先
요약하면
善行的最高如水 水惠及一切而無虚妄
(The highest good is like water which favors all without caring about vanity.)
김진희
2015.06.19 02:42
아 그리고 또!
악의 존재를 위해 질병, 부당함, 어두운 세력등이 필요한것이 아니라, 인간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참 많은것을 시사해주네요
잘 읽었습니다
JungsoonKim
2015.06.19 03:22
장노님
바쁘신 줄 아는데
깊은 의미에 글
감사합니다
내것입니다.
李寧熙
2015.06.19 05:07
김 집사님,
별로 아는 것이 없는, 빈깡통같은 소리에 화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로마린다를 방문하면 밥 한 끼 얻어먹고 싶은 인심넉넉한 아지매 같은 분 같아요 ^^
윤은숙
2015.06.19 05:27
근래에 드물게 대하는,
머리에 쥐나게 어려운 과제를
'생각 좀 하고 살아'
따듯한 마음으로 호령하시는 군요.
그렇지요.
우리는 다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은 주변의 동향에 쉽게 굴복하고
'본 회퍼'의 증언처럼
이기심때문에 '침묵'하는 가련한 존재,
안식일을 예비하는 이 아침에
가장 적절한 '예비'를 촉구하는 글, 감사합니다.
李寧熙
2015.06.19 05:52
윤 선배님,
" Hermits have no peer pressure "
인간은 누구나 독거성에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을 겁니다
오염되지 않은 무공해 청정지역 같은 곳이 아니라
더불어 살면서 청정제 역할을 하는 것이 지선이라는
깨우침을 받고 있습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큰 은둔자는 시중에 숨는다" 는 말에 하산을 할 때가
된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오종재
2015.06.19 06:05
목사님,
그동안 쓰신 글들을 죽 읽어 오면서 댓글로
인사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는 있었는데
오늘 글을 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몇자 올립니다.
스피치만 똑 뿌러지는줄 알았는데 글 솜씨도 예사롭지가 않네요.
나환자 얘기가 나오니 옛날 대학때 제가 가르치던 교회 학생들과
현악4중주를 만들어 통영 애조원과 하동 영신원에 가서 연주회를
해 준 기억이 나네요. 그때는 물론 전염성이 없는 분들이 모인 우리 교회지만
겁도 없이 문들어진 손과 악수도 하고 차려준 계란과 음식도 잘 먹고….
아무래도 청년때는 용감한가 봅니다.
목사님 뵌지도 참 오래된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 대구중앙교회 시무하실 때 주영이를 초청해서 연주회를 한 기억이 납니다.
그때가 초등학교 5학년때이니 벌써 22년전인가 싶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글을 계속 쓰고 계시니 목사님은 아직도 정정 하실거라 생각이 됩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늘 보람찬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
李寧熙
2015.06.19 10:59
위의 오장로님의 글은 이상락목사의 글 #7440 에 답글이
중복으로 이곳에 올라와 있네요 ..
김찬현
2015.06.19 18:01
이 영희 선배님 ! 가끔 형님께서 올리시는 주옥 같은 글들을 잘 보고 있읍니다. 늘 주위에 밝음과
긍정적인 무지개를 비추시는 글들을 보면서 감동 받읍니다 늘 행복 하시고 건강 하십시요 !
李寧熙
2015.06.19 19:09
닥터 김, 오랫동안 뵙지못해 근황이 궁금하였는데
뵈온듯 반갑숩니다
언제 동부로 오시는 기회되면 들려 주세요
흔적을 남겨 주셔서 옛날 소싯적 생각이 불현듯 납니다
니체는 “인간은 도덕적인 관점에서 잘못을 악이라 규정한다. 그러나 도덕은
시대의 흐름과 요구에 따라 가변적이므로 악을 규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참 공감하는 말입니다.
본문에서도 언급이 하셨지만 저는 주변에서 생각없는 사람이 대하기 가장
어렵더군요.
나쁜 행동인지, 좋은 행동인지, 구분 못하는 사람
지금 세상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언급해 주신 말씀처럼 어쩌면 우리 모두 불선자로
선으로 돌아가야 할 귀선자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보는 가치 기준이
달라 질려나?
어려웠지만 생각할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