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다에서 읽은 이영희 선생의 괜찮은 글. "악은 불선(不善)이다"

by 상선약수 posted Jun 19, 2015 Likes 0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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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불선(不善)이다

2015.06.19 00:25

李寧熙조회 수:147



“악(惡)은 악이라는 낱말의 뜻만큼이나 모호하다. 악이라는 것은 

나쁜 것인데 단순히 좋은 것이 선(善)이 아니듯 단순히 나쁜 것을

악이라 할 수도 없다. 악을 죄로 규정한 것은 (신을 절대 선으로 믿는) 종교다.

신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상태를 악으로 규정할 때 악은 사탄과 타락한

천사들로 인해 유입된 ‘이물질’에 불과하다.“

어느 조직 신학자의 말이다.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악은 신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들의 고유한 완전함과

자연적 질서가 결여된 상태, ‘심히 좋았더라’ 라는 말의 반대 개념이다“


니체는 “인간은 도덕적인 관점에서 잘못을 악이라 규정한다. 그러나 도덕은

시대의 흐름과 요구에 따라 가변적이므로 악을 규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한스 크뢰버, 독일의 법 정신 의학자는 “악은 세상에 나오기 위해 질병, 부당함,

혹은 어두운 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만 필요로 할 뿐이다”


“善人者,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鏡) 貴其師愛其資”

(선한 사람은 선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며 선하지 못한 사람은 선한 사람의 거울이다

그러므로 그 스승을 귀하게 여기고 거울을 아껴야 한다)

성선론자인 공자도 선의 반대를 악이 아닌 '不善'이라 한 것은 

선과 악의 개념을 스승과 반면교사로 상호보완적 관계로 묘사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 “선이 없으면 악도 없다”

절대 선이 없듯이 절대 악도 없다는 전제로, 신학적이거나 도덕적인

관점 보다는 악을 불선의 측면에서 고찰 해 보고자 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년도에 출판된 이 책은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참관한 한나 아렌트( Hanna Arendt)가 저자다.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 유대인 대학살)의 전범으로 나치의 친위 장교였다.

1933년 나치 정보부의 유대인 업무 책임자로 1942년 게슈타포 유대인 과장으로

유대인들을 유럽 각지에서 폴란드 수용소로 강제 이동해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독가스 실로 보내어 목숨을 앗은 주범으로

전후 미군에 체포되었다가 탈출해 개명을 하고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15년 잠적해 있다가, 1960년 5월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체포되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압송되어 재판을 받고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재판을 참관하면서 끔찍한 한 범죄인의 심리상태를 묘사한 한나 아렌트는 

독일계 유태인으로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심리학자였다.

2천 년대 이르기 까지 그 책이 히브리어로 번역이 되지 않은 이유는

전 세계 유대인의 공적인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작가는 그를 ‘지극히 평범한

정상적인 사람‘ 이라는데 유대인들의 공분을 사게 된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되자 유대인 사회는 유대인으로 아이히만을 옹호한 그녀를

반역자로 지목하고 규탄을 했다.


재판과정을 지켜본 그녀는 이렇게 진술했다.

“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인간의 가치와 권리로 억압하는 사회, 정치적 구조 악에 대한 저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는 나치에 충성을 다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 했다는 것)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스스로 악에 대한 비판하는 생각을 포기 했을 뿐이다.

파시즘의 광기로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다.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 유죄라고 했다.


악이란 사탄의 모양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재판현장에서 그녀는 목격한 것이다.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 나는 신 앞에서는 유죄지만 법 앞에서는 무죄이다”

“ 악은 꼭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평범한 얼굴로, 평범한 한 관료의

행동이 파멸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건 비판적 사유 부재이다.“

“인간을 악마로 이끄는 것은 절대 악이 아니라

우리 안에 양심의 선택을 저버렸을 때이며, 결국 악은 평범한데 있는 것이며

자신이 도덕과 양심을 외면하는 그 순간에 악이 잉태된다“ 고 했다.


“악은 선의 결핍이다“

‘사랑(선)은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감정의 사치’ 라고 생각한다면

위선(僞善)이야말로 위악(僞惡)보다 도덕적으로 더 나쁠 수도 있다.

악을 악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비판의 사유가 없이 행동하는 것은 악의

불감증보다 악의 평범성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악을 정죄하고 비판에 앞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악인에 대한

공범의식으로 접근이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당대에 최고의 지성인으로 정치가로 무엇보다 종교에

열심한 나머지 악을 악으로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을

핍박한 자칭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을 했다.

그 당시 독일은 유럽 최대의 문명과 문화를 자랑하던 나라였지만 극악을 저질렀다.

그래서 선과 악은 인간의 수양과 도덕만으로 다스려지지 않는

한계를 안고 있는 인류 공동의 과제다.


한자로 악(惡)을 해자하면 ‘등이 굽은 사람의 마음’이다.

외모의 콤플렉스 때문에 자신을 미워(싫어)한다는 뜻이다.

선(善)은 착하다는 의미가 있지만 해자하면, '바르게 펴다' 

'온화하게 말하다’,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선은 굽은(왜곡) 것을 바르게 펴는 것이며 

비판이나 정죄보다 온화한 말과 태도여야 한다는 의미다.


모든 사람은 악의 성향으로 기울어지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불가항력의 구조(構造) 악으로부터 이루지 못한 선(未善)일수도 있고,

비판적 사유의 부재로 왜곡된 선을 가진 불선(不善)일수도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등이 굽은(왜곡 된) 우리는 악한 자들이라기보다는 

불선자로, 본래의 선으로 돌아가야 할 귀선(歸善)자들이다.

악이 죽음에 이르는 절망이라면, 불선은 구도에 이르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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