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해도 답은 그대로여야 하는가?
“언급한 바와 같이 부정한 음식- 특히 돼지고기-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다만 점차적으로 취해졌다. 거의 20년이 지난 1860년대가 되기까지는 우리 선조들은
이 점에 있어서 일치되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개개인이 실천할 문제로 여겨지고
구원하는 믿음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운명 제8장)
“예로 건강기별을 들어보자. 1844-1854년까지 10년은 형성기이다. 1848년에 White부인은
담배, 차, 커피의 해로운 영향에 관심을 기울였다(CDF 495, 496 보라).
그러나 차, 커피, 담배의 해로움을 일반적으로 인식함은 점진적이었다.
돼지고기 사용은 아직도 어떤 이들은 계속했다. 1850년에 James White이
그런 일을 신속히 해결하라고 주의했다(현대 진리, 1850, 1850. 11월).”
엘 이 푸름의 책 “운명을 결정하는 대 운동”이다
대부분의 재림교인들은 돼지고기는 레위기11장을 들먹이면서
먹지 못할 고기로 지정하지 않았다
화잇도 차와 커피와 쿠키와 설탕 이것들과 같은 범주로 돼지고기를 이야기했다
그러던 것이 레위기11장이 교단 내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자
건강이 아닌 법적 지위로서 돼지고기가 등장한다
먹으면 무슨 병에 걸리고 하던 것이 오늘 우리에게는 가증의 대명사로 자리매김을 한다
자 질문을 드린다
1. “돼지의 세포 조직은 기생충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그런가?
2. “돼지고기를 먹으면 연주창, 문둥병, 암을 일으키는 체액을 만들어낸다.” 그런가?
3.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여전히 인류에게 가장 극심한 고통을 일으키고 있다.” 언제부터?
4. “돼지고기를 먹음으로 손상을 받는 것은...정신이 영향을 받으며 이 좋지 않은 식품을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예민한 감수성이 무디게 된다. “ 의학적 견해는 어떤가?
5. “오물이 그 동물들의 본질적인 요소”인가?
6. “사람이 돼지고기를 먹으면 그들의 피와 살은 돼지를 통하여 그들에게 전달된
불결한 것들로 말미암아 부패될 것이다.” 그런가?
7. “돼지고기는 신체를 연주창으로 가득 채”우는가?
8, “따뜻한 기후에서는 문둥병과 여러 가지 종류의 질병을 일으”키는가?
나는 레위기11장은 십자가로 폐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법적으로는 먹는데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화잇의 언급에 따라 건강상 문제가 있는 식품이라면
먹는데 재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위의 8가지 질문에 하나라도 해당이 된다면 나는 먹을 생각조차도 안할 거다
아무리 레위기 11장이 폐했다 할지라도 화잇시대처럼 이렇게 몸에 나쁘다는데
먹을 이유가 없지 않겠나
차라리 복어를 잘 요리해서 먹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여러분의 고견을 바란다
고기도 못 먹으라는 교단에서 무슨 돼지고기 이야기냐 하시려면 답 안하시는 게 낫다
사도바울이 말한것을 생각해 봅니다. "모든것이 가하나 모든것이 유익한것이 아니요" 라고 말씀 하셨죠.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한다면 우리의 생애에는 완전한 자유가 있게 될것입니다.
"스스로 속된것이 없으되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된것이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속되다"라는 표현은 베드로가 비몽사몽간에 보자기에 내려온 각종 부정한 동물들 즉 "부정한"이란 의미와 같은 단어 입니다.
예수님은 음식물은 입으로 들어가서 뒤로 나가버리는것이므로 우리를 더럽게 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은 마음의 생각이라고 하셨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중간에 막힌 담을 헐어 버리셨습니다.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는데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고넬료가 이방인으로서 각종 가증한 동물들의 고기를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고 그에게 성령을 주셔서 인치셨습니다. 행위에서 난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라 재판관의 자리에 앉아 있으며 또한 성도들도 자신들의 교회 지도자들을 재판관으로 착각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0~12은 매우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 합니다.
우린 타인의 눈치를 보며 무엇을 먹을까 말까 망설이지 말아야 하며, 또 음식으로 타인의 신앙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것이 아니라 의와 사랑과 평강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자를 위해서라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했죠.
우리의 행위의 모든 동기가 다른 영혼들에 대한 배려와 구원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욕구를 채우는것이 일차적 목적이 아니라 도리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영혼 구원이 일차적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