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평안을 느끼는 장소와 시간이 다른 것 같다
또 어떤 사람을 만나면 느낌만으로 편안하거나 불편하다.
사람들간의 파장이나 장소와 시간의 파장의 흐름이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가...
얼마전까지도 안식일이 불편했었고 사람들과의 파장이 맞지 않아
예배 후 돌아오는길은 한결같지 않았다.
특히 보혈없는 설교나 어지러운 예배질서에 지친 안식일은
부부갈등으로 연결되는 때도 있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남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욕의 효험을 그다지 체험하며 살아오지 못한 그에게는
그것이 신앙, 아니 교단에 대한 신념과 충성으로 평생에 자리잡은 사상이었다.
어느 날, 물어 보았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구원과 관계 있냐"고.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절대로... 단지 건강을 생각해서"라고.
"그러면 불가피하다면 먹을 수도 있겠네"라고 함정을 파면 구약으로 도망간다.
나는 그의 신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와 그러나 "돼지고기는 안된다"의 상호관계를...
그러다가 우리는 서로에게 물들어 버렸다.
나는 돼지고기를 눈치보며 안 먹게 되었고 고춧가루도 안 먹던 완전 채식주의자였던 그는
소고기를 눈치보며 맛있게 먹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부부의 중앙에 "오직 믿음"을 두고 서로에게 물들어간다.
그런 갈등이 거듭되고 거듭되어 가면서
우리에게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던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
우리의 대화속에서 혹은 기도 가운데 예수님이 좌정하시니
부딪혔던 파장은 역으로 서로를 감싸게 되었고
그 파장으로 신앙토론시엔 부부애보다 더 끈끈한 그리스도인의 형제애로 화합한다.
교회에서도 사람들과 관계속에서도
십자가사상으로 열심과 사랑의 불 태우니 율법은 연기가 되어 하늘, 제자리를 찾아가 버린다.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도
돼지고기를 보면 질겁하는 사람도
서로간에 예수의 보혈의 파장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불편한 장소도 관계도 더 이상 없을 수 있다.
행복한 안식일을 기원하면서..
멸망 지옥이요
바울이 그랬시오
양심에 거리낌을 주는 거 먹지말라
누가 이것 먹으면 우상의 제물이라하거든
그를 위해 먹지말라
아마 바울도 시장에 파는 거 사 먹은 일이 있었나봅니다
그런데 우상의 제물이 돼지였다는 거 모두 알고계시조?
그 시대부터 1900년 초까지 기독교인들 잘 먹던 겁니다
절에 있는 분들 개고기 먹으면 앙대요
불전에도 없답니다
안식일 아침 돼지고기 논쟁으로 신경쓰다가 잠을 설치고
멍한 머리로 일어났어요
오늘 교회에서 할일이 억수로 많은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해피사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