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엔 기독교재단이 흔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도 대학도 기독교재단에서 수학했더랬습니다.
전공따라 간 학교였지만 제 삶이 기독교 우물안, 그렇게 좁은 세계안에서 성장하다보니
사고의 폭이 거기서 거기밖에 안되는 것 같습니다.
아침예배 후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난 뒤
시원한 냉커피를 한잔 들고 컴퓨터 앞으로 왔습니다.
같은 "브라보"라시지만 같은 느낌이 안든 댓글 칭찬을 읽으며 아이스를 빠직빠직 씹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참 좋습니다.
고등학교때의 저는
대쪽 같은 성격의 소녀였습니다.
조상 몇대로 기독교집안이었고 친척도 친구도 선생님도
하물며 학교 앞 문방구 할머니도 교회 권사님이셨습니다.
예수 잘 믿는 학생이라는 이미지가
저의 영적 프라이드를 힘있게 떠 받치며
학교와 교회를 휘저으며 소위 잘 나가던 학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땐 저를 건드릴 사람이 학교에서나 교회에서 아무도 없었지요.
왜냐하면 최고로 믿음 좋은 학생이라는 편견이 저를 보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업하다가 갑자기 기도원엘 가고 싶으면 그냥 갔습니다.
친구들이 나를 찾으려면 교회에 오면 되었습니다.
햇볕이 따사로운 사월의 어느 날
점심시간이 되어 따뜻한 햇볕을 쬐기 위해
교장실 근처의 벤취로 친구들과 몰려 갔습니다.
조금 열려진 교장실 창문 사이로 담배연기가 포올폴 새어 나왔습니다.
순간 생각할 틈도 없이 저의 손은 교장실 창문을 노크했습니다.
담배를 뒤로 감추시고 창문을 여신 교장선생님께
교칙훈시를 시작 했습니다.
"우리 학교는 기독교 학교이며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셔야 하실 교장 선생님께서 학교안에서 이렇게 담배를 피우시면 학생들이 어떻게, 무엇을 보고 신앙생활을 하겠습니깟!!. 그러므로 학교안에서 이렇게 세속적인 행동을 하시면 하나님께서 우리 학교를 축복하시지 않으십니닷!!"....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킥킥거리는 친구들 앞에서 교장선생님의 불그스레하게 변하는 얼굴빛이...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전공따라 대학을 졸업하면서 시간이 흘렀습니다.
대쪽같았던 성품은 나이와 환경의 변화로 조금은 주위의 편견이 깍여져 가면서
교회의 중고등부 아이들과 나름 뜨거운 신앙생활을 하며 기도시간을 고정적으로 가졌던 28세쯤 되었을 때.
교회 특성상, 은사와 성령체험에 낯설었던 이유인지,
아니면 노처녀 하나가 교회 아이들의 사랑을 너무 독차지해서인지.
갈등이 시작되었고 교회 분위기가 기도하는 아이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토요일 오후, 학생 아이 하나가 엉엉 울면서 전화 했습니다.
교회 전도사님과 교사들이 기도 못하게 교회문을 안 열어 준다며
아이들이 교회 문 밖에서 쫒겨나 문 열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며 도움을 구하는 전화였습니다.
그 당시 개인적으로 저의 진로에 대해 깊은 금식을 했던 시간이었던지라
힘이 없었고 몰골도 수척했었지만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구쳤는지
전화를 끊자마자 벌떡 일어나 옷을 챙겨 입으니
제 성격을 아시는 어머니께서 못가게 말리셨으나
뿌리치며 철대문을 밀치고 나오면서 제 입에서 교칙이 터져 나왔습니다.
"다 죽여버리겠다"고...
아이들이 은혜를 받아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이 좋아서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교회에 와서 지들끼리 찬양하고 기도하며 전도하니
학생부가 30명에서 80명으로 숫자가 불어나고 신났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교회에서 청소하시는 사찰 집사님이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그 아이들을 지도하는 제가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그러나 어릴적부터 힘있게 받혀준 프라이드로 인해 제게 향할 불만이
힘없는 아이들에게 표현하며 핍박을 서슴치 않았더랬습니다.
저 또한 이제는 참지 않겠다며 택시를 타고 빨리 가보니
핍박자들이 제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 도망가고 없다면서
아이들이 저를 예수님 만났듯이 껴안더군요. 흐믓했었습니다.
그러고 얼마가 지나 긴 금식끝에 결국 꿈에서 그리던 주님을 만났습니다.
풍채가 위엄 있으신 주님은 흰 옷을 입고 무릎꿇은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무엇인가를 계속 나눠주시고 계셨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 제가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께서는 자꾸만 저에게 등을 돌리시고 돌리셨습니다.
저는 섭섭한 마음에 울부짖었습니다.
"예수님 저 여기 있어요. 저 여기 있어요. 제게도 주세요 주세요..."
왜 저를 밀어내시며 외면하시는지 고개를 돌리시며 바라보신 눈빛은 충격이었습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좌절감이 들게하는 예수님의 그 차가운 눈빛, 오 주님 ..
그러고 한번 바라 보시면서 "너는 사람을 죽였다"...고 하시며
등을 돌려 버리셨습니다.
그 날 아침 오래도록 이불안에서 울며 울었습니다.
이 살인자를 용서해달라고, 그리고 저를 향한 사랑을 거두지 마시라고
슬프고 슬퍼 회개 했습니다. 지금도 슬픔이 밀려옵니다.
금식은 실패했고 그 때까지 저의 믿음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을 고백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주님을 잃어버린다는 계명을 가슴에 뿌리 박아버렸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왜 이다지도 미운 사람들이 많아 지는것일까요.
억울한 일을 당하면 같이 싸우고 싶은데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까
침 한번 삼키고 참아야하는 일이 끊임없이 생깁니다만.
안식교의 여기 이 우물에서도
내용은 같은데도 생각의 차이가 서로 불쾌하게 하고
사랑하는 한 분 예수님에 대해서 다른 표현이 못마땅하고
이름을 숨기고 살인하며 이름을 걸고 정죄하는 교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 없는 것은 다 주님으로부터 외면 당할 것입니다.
나의 교칙으로 다른이의 얼굴이 붉어 진다면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을 잃어 버리고 무엇을 얻어야 만족되겠습니까.
나의 생각에 대한 동조가, 나의 행위에 대한 인정이 사랑이라고
누가 정의를 내렸습니까.
예수님이 안 계신다면 저는 이 곳을 찾을 이유가 없습니다.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솔찍담백하고 진솔한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