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사만사천인과 헤일 수 없는 무리들이 같은 무리들인가?
연구할 주제들
헤일 수 없는 무리와 십사만사천인은 같은 무리인지 아니면 다른 무리인지,
상징적인 수효인지 실제적인 수효인지,
재림 시에 생존해있는 성도들만의 수효인지, 죽은 자도 포함되는지,
십사만사천인의 견해에는 의문점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분명 정답은 하나일 것인데 … ???
십사만사천인의 진리가 우리의 구원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데 믿음준비만 하면 되지 …
그러므로 십사만사천인의 진리를 골치 아픈 주제로 생각하고 뒤로 밀쳐버린다.
그러나 성경 마지막 책인 계시록 7장과 14장에서 십사만사천인을 언급하고 있다.
창세기는 시작이요 계시록은 마침이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침은 더 중요하지 않는가?
계시록의 중요성에 대하여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중에 7장과 14장이 없다고 생각해보라.
요한 계시록은 마치 뭐 없는 찜 빵과 같지 않겠는가?
또 요한 계시록 7장과 14장에서 십사만사천인의 진리를 제외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입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십사만사천인은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첫 열매이기 때문이다.
열매의 중요성을 모르는 농부가 있겠는가?
농부는 열매를 얻기 위하여 땀 흘려 일한다.
하늘농부이신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죄악의 땅에서 의의 열매를 얻기 위하여 의의 나무를 심고,
당신의 아들의 피를 뿌리며 당신의 눈동자처럼 돌보셨다.
그 첫 열매가 십사만사천인이란 말이다.
썩을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자들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악인들은 산과 바위에 묻히기를 원하며 죽어갈 때,
십사만사천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경험은 특수한 경험이 될 것이며
첫째부활에 일어나는 헤일 수 없는 무리와는 다른 경험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십사만사천인들이 부를 새 노래는 그 누구도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새 노래는 십사만사천인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헤일 수 없는 무리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것은 경험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 되시도다.”(계 15:2-3)
일요일 법령으로 인해 십사만사천인만이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라는 경험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844년 전에 구원받은 헤일 수 없는 무리들은,
짐승과 그 우상을 상대로 싸운 적이 없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헤일 수 없는 무리와 십사만사천인들은
동일한 무리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계시록7장 에서
계시록 7장을 연구한다면 확실한 분별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성경을 펴고 확인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시록 7장 1-3절 서두에는, 바람을 잡고 있는 네 천사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붙들어 달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올라온 천사의 외침이 나온다.
4절에서는 하늘로서 인 맞는 자들의 수효를 알려주는 음성을 요한은 듣는다.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사천이니“
이처럼 십사만사천인에 관련된 자세한 내용을 요한에게 들려주신 이후
9절에는 아무도 셀 수 없는 흰 옷 입은 무리를 들려주신 것이 아니라 보여주신다.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나온 십사만사천인과는 달리,
각 나라 족속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무리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이미 여기에서 십사만사천인과 헤일 수 없는 무리와는 동일한 무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별할 수 있다.
십사만 사천인은 이스라엘백성에서 나왔으며,
헤일 수 없는 무리는 각 나라, 족속, 백성과 방언에서 나왔다.
두 무리의 출신지가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고대 이스라엘백성들은 결코 이방인들을 이스라엘에 계수시키지 않았다.
10절로12절에는 이들이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송을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 다음 13절에 요한은 장로 중 한 분으로부터,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라는 질문을 받았다.
요한은 조금 전 흰옷 입은 헤일 수 없이 많은 무리들을 보았고,
그들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 중에서 온 것을 알았다.(9절 참조)
그러나 장로가 질문하는 ‘이 흰옷 입은 자들은’(13절) 어디서 왔는지를 몰랐다.
그러므로 요한 자신은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장로는 그 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말해 주었다(14-17절).
그러나 직접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스무고개처럼 답변의 힌트를 제시하신다.
첫째 힌트 : 이들은 큰 환란에서 나온 자들인데 (14절)
둘째 힌트 :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성전에서 밤낮 섬기는 자들이며(15절)
셋째 힌트 :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 아니하며,
태양의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않는 자들이며(16절)
독자들은 세 번의 힌트를 듣고 이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요한은 헤일 수 없는 무리와는 다른 흰옷 입은 무리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큰 환란, 주림과 목마름, 태양의 기운에 상함 등은 흰옷 입은 헤일 수 없는 무리들이
당하는 경험이 아니라,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당할 경험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힌트를 보면 분명 칠 재앙과 일요일 법령으로 부터 오는
십사만사천인들이 당할 경험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큰 환란 = 야곱의 환란
주림과 목마름 = 일요일법령으로 매매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활 방도가 끊어짐
태양의 기운에 상함 = 칠 재앙 중 네 번째 재앙을 상기시킴
일반적으로 구원받는 모든 성도들도 환란과 시련을 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계시록7장에서만은 일반적인 성도들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힌트 :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이 부분은 바로 옛날 레위직분을 상기하게 된다.
대제사장에게 속하여 성소에서 봉사하였던 레위인 들의 사명을 상기시킨다.
“드디어 우리가 거룩한 성전에 들어가려고 할 때에 예수께서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십사만 사천명만이 이 곳으로 들어 간다”라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모두 “할렐루야” 라고 함성을 올렸다.”(초기, 19)
마치 레위인 외 일반 백성들은 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일을 금지 하셨던 것처럼,
십사만사천인만이 하늘성전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의 의미는,
레위인과 십사만사천인의 사명을 동일시하신 것을 보게 된다.
다음과 같이 대비할 수 있다.
십사만사천인 = 레위인
헤일 수 없는 무리 = 일반 이스라엘 백성
결론적으로,
안식일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요,
셋째 천사의 인치는 사업이 1844년부터 시작된 것이 확실하다면,
아담 이후 구원받은 셀 수 없는 큰 무리들과,
144,000무리들은 동일 한 무리가 될 수 없는 것이 확실하며,
계시록7장에서 확신 할 수 있다.
두 무리의 비교 도표
| 헤일 수 없는 무리 | 십사만사천인 |
출신지 | 각 나라, 백성, 방언 | 이스라엘, (12지파) |
시기 | 아담이후 | 1844년 이후 |
인 | 성령의 인 |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 |
특징 | 능히 셀 수 없는 많은 무리.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도 포함될 수 있음. 흰 옷을 입음. | 정확한 수효 . 반드시 셋째천사의 기별, 안식일을 지키는 백성들로만 구성됨. 흰 옷을 입음 |
부활 | 첫째부활 | 특별부활 |
부활의 음성 | 아들의 음성 | 아버지의 음성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144,000인 가운데 들도록 힘써 노력하자” -리뷰 앤드 헤랄드, 1905. 3. 9.
밑에 쓰신 글에 보면 중보자 없이 지내는 기간 즉 야곱의 환란의 기간 (은혜의 시기가 끝난 이후) 에 대해서
설명하실때에
" 성령이 거두어지고 중보자 없이 야곱의 환란을 통과 할 자들인 것이다."(비느하스님의 글 인용)
여기에서 "성령이 거두어진다"는 의미는 예수님의 중보 사업이 마쳐지면 그 결과 이르러 오는 현상인가요?
이 부분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근거자료가 있으면 더 좋구요, 자세히 살명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