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0: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계 10: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계 10: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계 10:11)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이 기록을 우린 1844년 대 실망하는 재림교인들의 쓰디쓴 경험이라고 합니다.
작은 책은 다니엘서라고 해석합니다.
다니엘서라고 해석할만한 아무런 근거도 없는데
억지를 부립니다.
누가 그 두루마리 즉 작은 책을 받고 누가 먹게 되는 지 확인하세요.
요한이 받고 요한이 먹고 입에 단데
배에는 쓰디쓴 느낌을 받습니다.
이 쓰디쓴 내용이 어디에 기록이 됩니까.
왜?????
일곱 우뢰는 듣고도 기록하지 못 하게하고 인봉했을까요??
대신에 작은 책을 줄까요???
그리고 쓰디쓴 아픔은 1844년의 아픔일까요??
요한이 1800년 후에 백성의 아픔을 위해 아파할까요?
일곱 우뢰를 대신해서 내려준 책 작은 책은 바로 계시록입니다.
전반부1~11장까지는 그야말로 우릴 그토록 괴롭히는 적들을 완전히 괴멸시켜버릴
그리스도군의 대단한 위용을 보여 줍니다.
황홀하고 엄위하며 감동스럽고 신원하심에 억눌린 가슴이 활짝 핀 것 같은 입에는 그야말로 꿀처럼 단 전반붑니다.
그런데 계시록이 이렇게 끝이 났으면 좋으련만 12~22장이 주어집니다.
해설서입니다.
그 해설을 보는 순간 성도들이 얼마나 인내를 해야 할지를 보니
끔찍합니다.
1844년의 대 실망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끔찍한 고난과 핍박이 3년 반 동안 자행되는데
누구라도 믿음을 버릴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주어집니다.
한명도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주어지는 데 144000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각처에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거기에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을 하는 이방의 믿음의 성도들이 구름처럼 몰려옵니다.
1260일 3년 반이 1260년이 된다면 아마 요한은 쓰디쓴 경험이 아니라
아마 혼절 및 죽었을 겁니다.
절대 작은 책의 작은 두루마리는 12~22장의 성도들이 겪을 어려움을 생각하니 아파할 수밖에 없는 지도자 요한의 먹은 것이 후회되는 쓴 경험 함께 겪을 쓴 경험입니다.
그래서
(계 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일곱 우뢰 대신 준 작은 책은 다니엘서가 아닙니다.
이미 존재한 책을 일곱 우뢰대신 줄 이유가 없습니다.
우레 천둥은 큰 소립니다.
경각심입니다.
놀람입니다.
심판입니다.
그걸 12~22으로 대신 주며 새롭게 예언해야함을 이야기합니다.
성도들에겐 1~11장까지만 있었으면 정말 좋을 책이 계시록입니다.
하지만 쓰고 아프고 괴로운 12~22장의 경험이 42달 동안 주어질 것임을 예언합니다.
계시록은 원래 맨처음에 주어질때부터 봉함된 책이 아니었습니다.
"이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움이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록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다니엘서가 봉함되어 있었기 때문 입니다.
계시록은 다니엘서의 부록 입니다.
다니엘서는 최소한 4군데가 봉함되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하면 주께서 그 인봉을 떼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