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민 온 날이 이 교단 대모 엘렌 아줌마의 기일(忌日)이었다. 나는 비행기 타고 왔는데 그대는 어떻게 오셨는지?--시신(屍身)들의 예언. (조회수 19 이후 수정)

by 김원일 posted Jul 16, 2015 Likes 0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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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님의 글을 보고 오늘이 엘렌의 기일이라는 걸 알았다.
오늘은 내가 이민 온 날이기도 하다.

45년 전, 엘렌이 죽은 지 55년 후.
하와이에서 갈아탄 비행기는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보잉 747.
엘에이 공항에 한밤중 1시쯤 내렸다.

그런데 바로 그 오늘
그 기일, 그 이민 "기념일"에 본 
뉴스 한 토막.

텍사스 Brook 카운티에서 발견된 엽기적 이야기.

남미에서 온 서류 미비 이주 노동자들의 시신을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공동묘지 한구석에 여러 해 동안 "덤핑"하듯 묻어버렸다는 기함할 이야기.
수백 명에 달하는 그 시신들을
하다못해 DNA조차 채취하지 않고 흔적 없이 묻어버렸고,
분명히 불법인 이 작태에 대해 
주 정부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


혹시 부활할까, 또는 떠나보낼 수 없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묻지 못하고, 묻지 않고 모셔두었던 그녀의 시신.
꽃다발 옆 관 속에 누워 있는 그녀의 시신을 사진으로 처음 본 오늘
나는 뉴스에 나온 또 다른 시신, 아니, 유골들의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기억 한 편린.

몇 년 전
수술받는 아내와 두 어린 딸 곁에 있으려고 몰래 국경을 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막에서 길을 잃고 사망한 서류 미비 노동자 장례식에서 
기도한 적이 있었다.

Aurelio Salazar.
악명 높은 아씨마켓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노조 결성에 앞장섰던, 
내가 감히 동지라고 부르고 싶은 서류 미비 노동자.


나는 45년 전
엘렌의 기일에
최신형 여객기 타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화 한 편 보며 높은 하늘을 날아 국경을 넘었다.
서류 완비 이민자의 자격으로.

미국에 사는 그대는 무얼 타고 오셨는가.


혹시 부활할까, 또는 떠나보낼 수 없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묻지 못하고, 묻지 않고 모셔두었던 "예언자"의 시신.
꽃다발 옆 관 속에 누워 있는 그녀의 시신을 사진으로 처음 본 오늘
나는 뉴스에 나온 또 다른 시신, 아니, 유골들의 사진을 보았다.

죽은 후 
친지 중 아무도 그 안부조차 알 수 없는
아무도 그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지금쯤
눈물마저 메마른 그 친지들 기억 속에서조차 사라져 가고 있을
저 시신, 아니, 저 유골들의 사진을 보았다.


"예언자"의 시신도 할 말이 있는가.
그들은 죽어서도 "예언"하는가.

이민 온 45주년 "기념일"에,
엘렌의 기일에
나는 묻는다.

엘렌의 시신과 저 이름 없는 시신 중
누가 더 강렬하고 애절한 목소리로,
누가 더 내 영혼을 흔들고 뒤집는 
"예언의 신, 또는 영 (Spirit of Prophecy)"이 되어,
내칠 수 없는 
건너뛸 수 없는 사진으로, 모습으로 
다가오는가.

아무리 기도하고 명상하며 물어도
엘렌은 아니다.


나는 45년 전 그녀의 기일에
최신형 여객기 타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화 한 편 보며 높은 하늘을 날아 국경을 넘었다.
서류 완비 이민자의 자격으로.

미국에 사는 그대는 무얼 타고 오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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