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ate kid

by fallbaram posted Aug 04, 2015 Likes 0 Replie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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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아이들을 길러본 분들은 이 영화를 적어도 한번쯤은 아이들과 함께

보았을 것이다.

카라테를 배우러 온 백인아이에게 일본인 카라테 선생은 카라테의 기본자세를

가르칠 생각은 하지 않고 선생 자신의 차를 닦는 일과 집의 잔심부름만 시키는

장면이 거기 나온다. 페인트도 칠하고 세차도 하면서 이 과정을 거치면 카라테를

정식으로 가르쳐 주겠지 하면서 날마다 인내 했지만 선생은 끝내 그런 카라테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카라테 시합에 제자를 데리고 나간다.

이럴땐 이렇게 하고 저럴땐 저렇게 하라고 하면서 세차할때 하던 동작과 페인트를 칠할때

하던 동작을 반복해서 지시할 뿐.

영화의 특성상 그 제자가 마침내 승자가 되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영화에서 가르치는

교훈은 평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움직이는 동작에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동작과

근육이 형성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어찌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정말로 신중하게 닥아온 한 청년에게

그냥 "날 따라 오너라" 고 하시는 하나님의 카라테


죄인의 옥중에서

과부의 가난속에서

배고픈자의 뱃구리 속에서

마주친 얼굴들을 불러서 오른쪽에 세우고 영원한 나라를 약속하는 그런 카라테


카라테를 배우려고 카라테를 연습하면 승자가 될 수 없는 그 영화처럼

영생을 얻기 위하여 거룩과 완전에 빠지게 되면 영생이 없어 보이는 하나님의 카라테


언제나 직통으로  하나님께로만 가려고 애쓰는 우리들의 고집스런 신학과

언제나 당신의 백성과 이웃에게로 가기 (선교)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고집스런 구원의 경륜이

부딪히는 바다에는 풍랑이 일고 있다.


거기 깊은 잠 주무시는 예수님 (십자가) 깨우면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의 건너편임을 알게된다.


민초의 게시판에는 노파심에 잠못이루는 완전주의자들이 오직 말씀 오직 예언으로만

도배질을 하지만 세천사의 카라테는 그런것이 아니다.

신학을 하므로 하나님을 아는것이 아니다.

영생달라고 해서 영생 주지 않는것 처럼.

그렇게 서둘러 달려간 곳이 선악과 였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는가?


사람이 되어 오셔서 사람의 삶을 살아주신 그분처럼

사람에게로 가자

거기서 하나님 만나고 "심봤다" 소리치지 않겠는가?


달란트의 비유나 므나의 비유는 사람을 섬기는 것 (지극히 작은것에 충성된자)을

잘 한자들에게 내리는 천국의 상급을 말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섬김의 발자국을 옮기시다가 마침내 나무위에서

우주를 섬기는 하나의 동작으로 생을 마치신 분의 기별은 사뭇 이곳의

완전들 하고는 질과 방향이 다르다.



기독교 역사가들은 신학이 발달할 수록 교인은 줄고

지역 봉사가 발달할 수록 교회는 성장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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