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맘대로 못하게 막는 법
과거 크게 흥행한 드라마 여주인공의 이 대사는 지금 또 꾸준히 회자된다. 멀리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히 법률적 범죄로 한정했을 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죄를 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라는 헌법 79조 1항에 따라 사면권은 대통령만의 고유한 권한이 됐다.
사면권은 별다른 견제수단이 없는 아주 특수하고 특별한 권력이다. 군사독재 시기부터 사면권을 이용해 사법권을 무력화 시키는 각종 부당한 사례들이 있었다. 특히 이는 정치권과 재벌 대기업의 '검은 거래'로 이어졌다. 부정과 부패, 횡령, 배임, 비자금 조성 등의 반사회적, 반경제적 범죄를 저지른 기업인들은 벌을 받지 않았고, 똑같은 범죄를 또 다시 저질렀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자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커졌다. 국민들은 더 이상 대통령이 마음대로 재벌 총수들을 풀어주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 지배주주, 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한 사면권 행사를 제한하겠다"라며 특별사면에 엄격한 제한을 공약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나 상황은 또 다시 달라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회동에서 광복절 특별 사면을 언급했고, 김 대표는 경제인 사면을 요청했다. 이후에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박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식사를 했고, 그 자리에서 경제인들의 사면 요청을 받았다. '국민대통합'과 '경제활성화'를 명분으로 한 비리 재벌 총수들의 특별사면이 기정사실화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을 일부 제한하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노웅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7월 1일 대표발의한 '사면법 일부 개정안'이다. 대통령의 사면권한을 구체화 한 '사면법'을 일부 개정해 비리, 횡령, 배임 등 반사회적 범죄의 경우 사면이 불가능하게 하고,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사면심사위원회를 통해 사면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사면권 제한 없는 현행법 고친다
▲ 최태원 SK회장 '법정구속' SK 그룹 계열사 자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지난 2013년 1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선고공판에서 최 회장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 | |
ⓒ 유성호 |
현행 사면법에는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가 전혀 명시돼 있지 않다. 어떤 범죄행위라도 대통령이 마음을 먹으면 사면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임명하는 법무부장관 소속이고, 위원장도 법무장관이 맡는다. 또 위원 9명 가운데 5명을 공무원으로 임명할 수 있다. 사실상 대통령 마음대로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노 의원이 발의한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뇌물, 횡령, 배임 범죄 등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특별사면을 할 수 없도록 제한된다. 또 사면심사위원회를 대통령 소속으로 두고 위원장을 포함한 총 10명의 위원 가운데 6명을 국회(3명)와 대법원장(3명)이 임명한다. 여기서 사면 대상을 사면심사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결정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할 수 있게 된다.
이 법안이 당장 개정돼 이번 광복절 사면부터 적용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재벌 총수 등 경제범 특별사면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54%로 과반을 넘었던 점을 감안하면 법안 개정이 탄력을 받을 수는 있다. 이 조사에서 사면 찬성은 35%였고, 11%는 의견을 보류했다. 최근 롯데 그룹의 경영권 다툼으로 재벌 총수 사면에 여론은 더욱 부정적이 되고 있다.
노웅래 의원은 "대통령의 자의적 사면권 행사는 사법권을 무력화 시키고 법치주의에 불신을 일으켰다"라며 "부패와 비리 등 범죄를 일으킨 사람의 특별사면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리 경제인들 사면은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라며 "총수가 없다고 해서 그 회사가 문을 닫거나 엄청난 위기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꼬집었다.
한편, 법무부가 최근 마련한 사면 대상자 초안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은 2013년 1월 회삿돈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2년 7개월째 수감 중이고, 김 회장은 지난해 2월 배임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형이 확정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설을 맞아 서민·생계형 사범 5925명을 특별사면한 바 있다.
"재벌 총수 사면, 국민들은 박탈감 느껴" [인터뷰] '사면법 일부 개정안' 대표발의한 새정치민주연합 노웅래 의원 | ||||||
오마이 뉴스 다음은 노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