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 가델씨는 동사를 먼저 말하는 습관이 있다. 이런식이다. “가델 말해요. 허리 아파요. 병원 가요. 사장님 사모님 말해요. 병원 안 가. 나라 가.” 나라는 가델씨 본국인 방글라데시를 지칭한다. 그는 지난 해 한국에 왔다. 화성 철제공장에서 쇠뭉치를 들어 공중에 매단 다음 페인트를 칠하는 일을 했다. “혼자 60킬로 들어요. 허리 아파요.”

그렇게 일하고 가델씨는 130만원 정도를 받았다. 한국인 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식사가 이주노동자에게는 없었다. 식비는 월급에서 고스란히 빠져나갔다. “쌤쌤인 일하는 한국 사람 4명은 450만원, 350만뭔, 250만원, 202만원 받아요. 외국인 사람들은 식사없어.” 가델씨는 혼자 병원에 갔다. “의사 말해요. 나 허리 4번, 5번 안 좋아. 이렇게 일 안돼.” 허리가 아파서 일할 수 없었던 그는 해고됐다.

아무 것도 없이 쫓겨났다. 찾아갈 친구집도 없었다. “이슬람 사원 갔어요. 화성시 남영사거리.” 방글라데시 고향에는 한국에서 일하다 돌아온 친한 형이 있다. 형은 가델씨에게 말했다. “이주노조를 찾아가.” 그게 두달 전 일이다. 가델씨는 이주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접수했다. 지노위 가델씨 손을 들어주었다. 원래 일했던 곳으로 돌아갈지 다른 사업장으로 갈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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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델씨가 운반했던 쇠뭉치. 사진=이하늬 기자
 

“사장님 나빠요”는 답이 아니다

가델씨 사례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소개하는 언론 보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전형적인 사례에 가깝다. 강한 노동강도로 장시간 일하지만 최저임금에 가까운 임금, 방치되다시피 하는 열악한 주거환경, 직장 선택 자유는 없는 반면 사장의 한 마디에 해고될 정도의 고용불안, 그리고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미등록노동자가 된 다음 추방.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국내 15세 이상인 이주노동자는 85만 2000명이다. 이 중 고용허가제 적용을 받는 노동자는 24만명 이상이다. 여기에 미등록노동자 20만 8000여명(2014년 12월 기준)을 더하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주노동자의 규모는 대략 45만 정도로 추산된다. 총 이주노동자 규모(100만)의 절반 가량이다. 45만명이 당하는 일을 단순히 “사장님 나빠요”로 설명할 수 있는걸까. 

우다야라이 이주노조 위원장(44)은 “사장님 나빠요”가 답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장님이 왜 나쁜지 알아요? 사장한테 모든 권한을 주기 때문이에요. 그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사장님 나쁘다고 말해도 바뀌지 않아요.” 그러면서 우다야 위원장이 이주노동자 지원센터가 아닌 노동조합 활동을 강조했다.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센터나 교회가 많아요. 그런 곳은 우리를 불쌍하게 봐요. 도와준다고 해요. 노동자가 찾아가면 ‘사장님 나쁘네. 우리가 말해줄테니 걱정마라’ 이렇게 말해요. 노동자는 뒤에 있으라고 해요. 이건 이주노동자를 위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직접 나서서 말해야 합니다.” 그를 비롯한 이주노조 조합원들이 노조설립 싸움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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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다야 이주노조 위원장이 지난달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대법원 판결까지 났는데 또 딴지

이주노조 설립 싸움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서울노동청은 이주노조 설립신고를 반려했다. 조합원에 미등록노동자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였다. 이주노조는 법원에 서울노동청의 반려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졌지만 2심에서는 이겼다. 대법원은 올해 6월에서야 이주노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 판결 내용은 이렇다. “타인과의 사용종속관계 하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노동조합법상의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한, 그러한 근로자가 외국인인지 여부나 취업자격의 유무에 따라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볼 수는 없다.” 10년 싸움이 이렇게 승리로 끝나나 했다. 

하지만 서울노동청은 또 딴지를 걸었다. 노조 규약에 있는 단속추방 반대, 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 고용허가제 반대 등이 ‘노조 활동이 아니라 정치적인 활동’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주노조는 고용허가제 반대는 노동허가제 쟁취로 바꾸고, 이주노동자 합법화는 명시한 수정안을 서울노동청에 제출했다. 이주노조 조합원들은 서울노동청 앞에서 “이주노조를 인정하라”며 노숙농성을 진행중이다. 

현재까지 이주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은 1100명 수준이지만 많은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추방당해 실제 조합원 수는 그보다 훨씬 적다. 우다야 위원장은 “그동안 이주노조가 합법이 아니어서 이주노동자 조직화가 안 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라면서도 “서울노동청이 이번에도 설립 신고를 반려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규약을 더 이상 고칠 수는 없어요. 또 10년이 걸린다고 해도 법정 싸움을 해야 한다면 해야지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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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은 대법원이 이주노조를 인정했음에도 노조필증을 교부하지 않은 노동부를 규탄하며 27일부터 서울 중구 고용노동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가운데가 우다야 위원장. 사진=민중의소리
 

우리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에요 

이주노조가 이처럼 강하게 나서는 건 고용허가제와 미등록 노동자가 ‘불법 체류자’로 취급받는 한 나쁜 사장은 계속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는 인력부족을 겪는 3D업종이나 제조업 부문의 사업장에 ‘값싼’ 해외 노동력을 공급하려는 취지에서 지난 2004년 도입됐다. 한국 노동시장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인 셈이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서와 취업비자를 받게 된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기본 3년 동안 일할 수 있으며 3번의 직장변경이 가능하다. 문제는 직장 변경시 사업주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파서 일을 못하겠다고 해도 사장이 동의를 안 해주고 계속 일을 시켜요. 그렇게 일하다가는 죽을 거 같으면 노동자들은 사장 몰래 도망쳐요. 어떤 노동자는 도망치다가 저수지에 빠져 죽었어요. 밤에 깜깜해서 앞이 안 보이니까.“ ‘탈출’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때부터는 미등록노동자가 된다. 

미등록노동자가 되는 경우는 또 있다. 3년 이상 머문 이주노동자는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데 이때도 사업주 동의가 필요하다. 사장에게 밉보여 계약갱신을 하지 못하면 미등록노동자 신세가 된다. 당연히 미등록노동자가 되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가령 임금체불을 당해도 사업주는 당당하다. 노동자가 임금체불을 신고해도 해결은커녕 본국으로 추방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이주노조는 이런 정책을 바꾸는 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다. 

“한국 정부는 정말 웃겨요. 한국 사람들이 안 하는 더럽고 힘든 밑바닥 일, 해달라고 한국정부가 부른거에요. 노동자로 와달라고. 그래놓고 노동자 권리는 보장 안해요.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자기들 일자리를 빼앗아갔다고 엉터리 비난을 하거나 불쌍하게만 봐요. 우리 불쌍한 사람 아니에요. 불쌍한 사람들 한국 길거리에 많아요. 이주노동자에게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권리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