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과 오징어

by 백근철 posted Aug 12, 2015 Likes 0 Replies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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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저녁 우리 교회는 예언의 신을 함께 읽는다.

예언의 신 한 챕터 읽고 나름의 해석이나 한 주간의 경험들을 나누는데

보통 10시가 되어야 마치고, 어떤 경우에는 11시가 넘어서 마친 적도 있다.

교우들은 자모반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자유롭게 신앙이야기를 하는 그 시간이

안식일 담임목사의 설교보다 훨씬 낫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그 시간이 나에게도 나쁘지 않은 이유는 교우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할 수 있어서다.

앉아서 교우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것들을 듣다보면 참 재미난 특징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뭐냐하면

분명히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가도 신기하게 먹는 문제로 귀결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너나할 것없이

오징어, 게장, 바지락....뭐 이렇게 진솔한 간증(?) 순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렇게 이야기가 맥락을 생략한 채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가끔씩 믿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고 고민을 해보게 된다.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인간에게는 5단계의 욕구가 있다고 했다.

생리->안전->소속->자아존중->자아실현

이런 식으로 하위단계의 욕구가 충족되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상위단계의 욕구를 추구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나 자신과 교우들을 조금 관찰해보면 매슬로우가 주장한 단계와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재림교우들은  4가지 욕구의 범주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을 본다. 


먹는 것(생리적인 욕구)이 품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거나 심지어 구원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부류.

별 것 아닌 것임에도 마치 구원(안전의 욕구)과 관련된 문제인 것처럼 심각하게 의미부여를 하는 부류.

어느 곳에도 소속되기 힘들거나 외로워 교회를 커뮤니티 활동의 주 활동 무대로 삼는 부류(소속의 욕구).

집사에서 장로로, 장로에서 수석장로로 올라가는(?) 것이 마치 성공한 신앙의 표본처럼 생각하거나, 목사의 경우에는 작은 교회에서 큰 교회로, 큰교회에서 합회 혹은 연합회로 올라가는(?) 것이 성공한 목회자로 인식하는 것을 가끔 목격하게 된다(자아존중의 욕구).


자아가 어느정도 배제된(맞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순수한 의도를 가진 삶의 소명, 혹은 부르심(억지일 수도 있지만 매슬로우가 말한 자아실현이라 할 수 있겠다)을 추구하는 것을 보기란 참 드문 일인 것 같다.


먹는 문제가지고 다람쥐 쳇바퀴돌듯 돌고도는 이런 기현상은 어쩌면 빈곤한 우리 신학의 문제, 혹은 종교적 상상력을 차단하는 해석의 편협함이 낳은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까?


칼 폴라니는 서양의 문화적 위기에 대해 이렇게 진단한 적이 있다.


전통적으로 서양은 여러 사상가와 작가들을 낳아 이들을 매개로 스스로를 전파하는 하나의 문화적 단위였으나, 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귀를 기울이는 이가 없다. 우리는 그 원인이 세계인들이 서양에 대해 갖는 적대감에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오늘날의 상황에 대해 서양이 내놓을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진정한 원인이다. 칼 폴라니, <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47쪽

 

우리 집단이 가진 위기도 어쩌면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진짜 위기가 아닐까?

신앙적 담론의 수준이 그 집단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쩌면 우리집단의  '파국적 종말'은 목전에 임했는지도 모른다.


'다윈의 플롯'이란 책에서 저자 질리언 비어가 한 말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던 다윈은 자기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을 기록한 부분이 있고,

또한 그는 자신의 주장자체도 진화할 수 있도록 열린 언어로 저술했다라는 것.

흥미로운 지적이었다.


'재림교회 기본 신조 11'에 맥락은 좀 다르지만 비슷한 구절이 있다.

"예수 안에 있는 이 새로운 자유 안에서 우리는...성장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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