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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2 18:15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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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그윽한 쑥향이 가득 담긴 쑥국 한 사발을 마시는 소박한 저녁밥상은 행복이다.

산뜻한 옷차림의 TV속 기상캐스터는 강원도 영동지방에 때늦은 폭설이 내렸다하고, 남도 땅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는 소식을 전한다.

크지 않은 나라 땅이지만 지방에 따라 봄을 맞는 시차가 어찌 없겠는가.

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봄을 전해주는 전령사엔 어떤 것들이 있고, 봄의 내음이란 어떤 것일까?

제주도의 유채꽃, 산야의 잔설을 뚫고 피어나는 노란 복수초꽃, 쌀쌀한 해풍을 맞으며 붉게 피는 남도바닷가의 동백꽃, 눈 녹은 물이 흐르는 계곡의 통통한 버들강아지,  매화, 산수유, 등등, 지방의 특색에 따라 각자의 취향에 따라 느끼는 봄도 다양하겠으나 나에겐 ‘봄’ 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쑥’이다.

발음부터가 결코 고상치 않은 이름의 이 식물과는 유독 사연이 많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자라온 농촌엔 논두렁 밭두렁은 물론이요 오솔길 주변과 들판의 지천에 널려있는 것이 쑥이다.

독성이 없고 약리적 성분이 좋은 쑥은 여러 가지로 활용되는 좋은 식물이다.

여름날 냇가에서 멱을 감을 때는 마른 쑥닢을 비벼 솜처럼 만들어서 귀마개로 사용했고, 꼴을 베거나 나무를 하다가 낫에 손가락을 베었을 땐 생쑥을 돌에 찧어 끈적끈적하게 만들어서 손가락에 동여매면 지혈도 되고 상처가 쉽게 아물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한 사연들이 있으니, 쑥을 볼 때면 불현 듯 생각은 어머니에게로 이어지는 것이다.

가끔 쑥과 어머니에 얽힌 옛이야기를 하면 아내는 또 그 궁상떠는 추억병이 도졌다고 핀잔이고 아이들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며 따분해 한다.

 

 

그 시절은 참으로  먹을 것이 귀한 가난한 시절이었다. 쑥은 바로 배고픈 사람들에겐 구황식품이었다.

6-25 한국전쟁 그리고 빨치산 남부군의 거점이 되었던 지리산과 덕유산! 그 산기슭에 살았다는 죄 아닌 죄로 피아를 가릴 것 없이 양쪽 모두에게 시달려야만 했던 심심산골 동네! 전쟁의 참화를 용케 견뎌냈지만 깊은 상처와 어려운 살림살이는 쉽게 헤어나지 못했던 때였다.

그렇다곤 하지만 우리집은 이웃들에 비해서도 특히 가난했다.

4형제 중 둘째인 아버지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할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젊은 시절을 타관으로 타국으로 객지생활로 보내면서 할아버지에게 밉보인 탓인지 제금마저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그러면서도 우리 형제자매는 자그마치 일곱이나 되었다.

지서 경찰과 면사무소 직원이었던 숙부님들과는 달리 안정된 직업도 없이 방랑을 즐기던 아버지를 만난 탓에 겪어야만 했던 고생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일곱 형제들을 모두 건강하게 잘 키워주신 어머니!

구비구비 눈물과 한으로 살아오신 그 위대한 어머니의 일생을 내 무슨 재주로 다 이야기하리오.

 

일본인들의 학정이 극에 달했던 망국식민시대. 학문으로는 조선조 퇴계학의 정맥을 이었으며,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사상을 실천한 대선비요, 임진란 당시에는 의병활동으로 용맹을 떨치며 나라를 구했던 우복(愚伏) 정경세선생(鄭經世·1563(명종 18년)~1633(인조 11년)의 직계손인 외할아버지께서는 왜인들과의 악연으로 대대손손 살아오던 경북 상주 외서면의 진양정씨(晉陽鄭氏) 집성촌을 떠날 수밖에 없었으니, 왜인들의 눈을 피해 일시 안착했던 곳이 바로 우리 동네 윗마을 신기촌이었다.

낯선 타지생활 중에 맏딸인 우리 어머니와 장남인 큰 외삼촌을 중산리 은진임씨네와 혼사를 맺었으며, 둘째아들은 질매재의 김해김씨가에 장가를 들였는데, 해방이 되고 여러 여건이 호전되니 아들 삼형제네에 딸린 모든 식솔들을 데리고 상주 본향으로 되돌아 가셨다.

아래로 남동생만 셋으로, 맏딸이었던 어머니는 그렇게 아버지와 인연이 되었는데, 상주로 가버린 친정과는 당시의 교통사정상 자연히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고, 평생 손가락에 꼽을 만큼 친정왕래가 힘들었다.

자신들의 처갓집에 들렀다가 누나의 집을 찾아오는 외삼촌들을 가끔 보긴 했어도, 외갓집이란 곳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는 친구들의 외갓집 이야기를 들을때면 매우 부럽곤했다.

 

우리아버지는 결혼 직후 부터 무심하고 야속한 남편이었다. 임신한 어머니를 큰댁 시집살이에 홀로 맡겨두고 훌쩍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였다. 부부사이 금슬이 좋고, 큰아들로서 맏며느리로서 시부모에게 사랑을 받는 큰아버지 큰어머니네와는 달리, 남편도 없이 구박만 받으며 엄혹한 시집살이에 시달리던 둘째 며느리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남편을 찾아가기로 했다. 장자 위주의 고루한 생각과 적서의 구별 처럼 심한 차별에 시달리는 불쌍한 둘째 형수님을 위해, 바로 아래 시동생인 우리 큰숙부께서 어머니의 편이 되어 부산항에 데려다 주었다.  글도 모르는 어린 새댁이 젖먹이를 업고서 만리타국 일본 땅의 남편을 찾아 현해탄을 건너는 뱃길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당시 일본식 유도를 익힌 아버지는 광산 노동자로서 십장일을 보고 있었다. 요행히도 아버지를 쉽게 찾은 일본에서의 신혼생활은 그나마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둘째와 셋째를 얻으며 단란한 일가를 이루던 중에 해방을 맞았으니, 패전한 일인들의 보복과 횡포를 피해 천신만고 귀국선을 타야 했다. 가까스로 세 아이를 데리고 몸만은 일본을 탈출했지만, 일가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 중산리엔 바로 들어오질 못했다. 월천면(1957년에 거창읍으로 편입) 봉우당골 문중 선산의 재지기로 살 수 밖에 없었는데, 이어 동족상잔의 전쟁이 터지고 깊은 산속 외딴집에서 겪어야 했던 혹독한 전쟁의 참화는 차마 필설로 표현키도 어려운 이야기다.

외딴집에서 전쟁통을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빨치산에 부역했다는 혐의를 쓰게 되고, 거창경찰서에 끌려가서 보름간이나 고문과 매타작을 당하고 풀려나니, 물먹은 솜처럼 풀어진 초주검의 아버지를 들쳐 업고,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한 채 무서움에 떨기만 했던 어머니였다. 이제는 도저히 외딴집에선 더 살수가 없었다. 죽어도 고향동네에서 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중산리로 들어왔건만, 그러나 네 자식을 건사할 집이 없지 않은가.

다행히 친정이 같은 친척인 ‘상주할머니’네께서 방 한 칸을 내어주어 접방살이를 하는데, 친할아버지 할머니의 천대와 괄시에 큰댁으로부터 받았던 눈치코치, 서럽고 서러운 삶은 고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머슴을 부리는 큰댁의 장손은 글만 읽으면 되었지만, 그 보다 한 살 아래 우리집 장남은 밥벌이를 위해 남의 집 일도 불사했던 불쌍한 아이였다.

없는 설움이란 가까운데서 받는 것이 더욱 크고 서러운 법. 이후 동네 제일 뒤 꼭대기 동산아래 첫 집에서 살게 되었고, 그 초가에서 첫 번째로 내가 태어나니 나에겐 생가이다.

 

소작으로 나마 채웠던 작은 뒤주는 겨우내 파먹고 나니 텅텅 비어버리고, 아득히 높은 보릿고개가 시작되는 이맘 때 쯤 이면 어머니는 온 들판의 쑥을 뜯어 날라서 허기진 자식들의 배를 채워주어야 했다.

언 땅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동면을 견뎌낸 쑥이 파릇파릇 여린 싹을 틔우면 어머니의 쑥 캐기가 시작되는데, 제대로 된 보따리도 없어서 홑이불에 가득 싸서 이고 날랐다.

찰기 없는 밀기울에 보릿겨나 쌀겨를 섞어서 삶은 쑥과 함께 버무려낸 쑥버무리는 우리 형제들의 점심이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해마다 봄이 오고 막 농사철이 시작 되려는 돐새만 되면 며칠씩 앓아 누우셔야했던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체통을 중히 여기시는 분이었으니, 집안일보다는 남의 집 경조사나 외부행사 등 바깥일이 더 우선이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의관을 갖추어드리며 가장의 권위와 체면치레를 위해서는 설사 빚낸 돈이 사용되어도 원망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가족을 위한 초인적인 어머니의 희생을 먹으면서 자란 우리는 야생초 같은 강인함이 절로 몸에 배었던 것이다.

 

 88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던 그해에 어머니는 서울에 머물고 계셨다.

맑고 화창한 어느 봄날, 아이들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청계산으로 소풍을 갔다.

그때만 해도 양재동에서 옛골로 가는 길이 비포장 흙길 이었고 등산객과 행락객이 많지 않아서 여섯 살, 세 살, 짜리 두 딸애들과 냇가에서 버들피리를 불며 호젓한 시간을 즐기며 놀고 있었다.

“아이고야 이거 보거라. 쑥이 이리 잘 자라있구나. 이거 좀 뜯어 가자.” 마침 주변의 묵은 밭에는 일부러 심은 듯이 쑥이 자라 있었다.

어머니의 쑥 뜯는 솜씨가 발휘되어 상당한 양의 쑥을 뜯으니 그리도 좋아하실 수 없다.

방앗간에 맡겨서 만든 쑥떡은 옛날 절구에 찧은 것보다 더 곱고 부드럽고 찰진 맛이었지만 아이들은 별로 맛있어 하지 않았다.

햄버거와 피자 맛에 길들여진 아이들 입맛이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낄 뿐이다. 내가 저 아이들만 할 때와  비교하면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가.

당시에 나에게 시간과 여유가 좀 있어서 어머니를 모시고 상주의 세 분 외숙부님댁을 두루 돌며 여행을 했었는데 무척이나 좋아 하셨다. 

 

고향 큰형님께서 모시고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납덩어리처럼 마음만 무거울 뿐 별 뾰족한 수나 도리가 없다.

어머니께서 이상하시다는 말씀에 처음 찾아뵈었을 때부터, 설마 괜찮아지시겠지 하고서 손 한번 써보지 않았던 것이 너무나 한스러웠다.

금원산 휴양림 통나무집에서 가족들 모임을 가졌던 어느 새해 첫날의 새벽에, 집을 찾아간다며 혼자 사라지신 어머니를 찾아서 온 식구들이 산속을 헤매기도 했다.

상태는 급속히 더 나빠지셨다.

“어무이 저 종범이예요. 알아보시겠어요?”

“누구라꼬요? 우리 아들 종범이는 나를 서울로 데려가준다켔는데.....”

“어무이, 어무이, 죄송합니더. 제발 정신 좀 차리시고 밥도 잘 잡숫고 하소마.”

“이보시오. 내 부탁좀 들어 줄라요. 우리 스님아들 좀 보게 해 주소. 우리 아들이 스님이 되었는데 내가 스님 아들을 한번이라도 보고 싶응깨.”

아들을 앞에 두고도 어쩌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아들이 있으면 그 아들만을 애타게 찾으시는 어머니였다.

당시에 큰형님네의 형편도 말이 아니었다.

비가 새고 쓰러져가는 집을 보수도 못한 채, 아래채가 있던 자리에 샌드위치 판넬로 임시로 지은 건물에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여름이면 지붕이 달아올라 한증막같이 더웠고 겨울이면 어머니 혼자 계신 공간은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급기야 어머니의 치매 증세는 사람을 아무도 못 알아보시는 정도를 넘어 최악이었다.

불효막심하게도 그런 어머니를 종종이나마 찾아뵙지를 못했다.

IMF로 온 나라가 혼란에 처해있다지만, 난 IMF와는 무관하게 망해있었다.

빚을 내어 산 중고 트럭을 몰면서 남들이 쓰다버린 냉장고나 텔레비전을 주워 고쳐서 되파는 힘들고 고된 경험의 3년 간 중이었다. 어찌어찌 주변의 도움과 빚으로 작은 커피가게를 새로 시작해서 아내와 함께 생업을 삼고 있었지만 세 아이를 키우기가 빠듯한 형편이었다.

 

시골 큰형수님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추운 겨울날의 오전에 삼박골 개울의 얼음판에 미끄러져 쓰러져 계신 것을 용케 발견해서 급히 병원으로 모셨다는 것이다.

이 엄동 철에 무슨 나물을 뜯겠다고 광주리까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삼박골! 아, 그곳은 우리가 오랫동안 소작을 부치던 잿들 논으로 통하는 곳. 어머니께서 그 시절을 더듬어 가셨을까?

읍내 적십자병원에 계신 어머니의 모습은 차마 보기가 민망한 참혹한 모습이었다.

뼈만 남은채 앙상한 어머니는 깨진 머리를 붕대로 감고 한쪽 눈은 뜰 수도 없도록 부어올라 있었다.

더 이상의 입원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으로 중산리 집으로 모셔오면서 속으로 얼마나 울음을 삼켰던가. 결국 그날의 모습이 내가 본 마지막의 어머니였다.

 

이천이 년 음력 섣달 열이레 날! 새봄의 새로 피는 쑥을 보지 못하시고 어머니는 이승을 하직하셨다.

서리서리 한 많은 일생,  왜정치하 식민의시대를,  전쟁의 시대를, 가난의 시대를, 온몸으로 헤쳐내며 쑥처럼 민초처럼 낮게만 낮게만 사신 한 여인의 삶이 그렇게 끝났다.

바랑골 양지바른 자락 아버지 곁에 나란히 모셨다.

남서쪽으로 금원산 봉우리가 보이고 마을입구 갯들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좋은 자리다.

 

든 장례식이 끝나고, 형제 모두가 다시 산소를 찾아서 삼우제까지 지내고 귀가하여 상복을 벗는데, 큰형수님께서 마루 밑의 작은 손칼 하나를 꺼내었다. 반쯤이나 칼날이 마모되고  나무로 된 손잡이가 손때가 묻어 반질거리는 어머니의 나물 캐던 칼이다. 종이에 곱게 싸서 자동차의 선반에 넣어두었다.

어머니의 유일한 유품으로........

 

 

평생을 허리한번 맘껏 못 펴보시고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으셨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서야 호강을 하셨다.

서울 숭인교회의 수석장로님인 둘째아들로 인해 숭인교회 담임목사님 일행분들이 버스를 두대나 가득 타고 먼 시골집까지 문상을오셨다.

수십년 전, 아들을 어떻게 가르쳤길래 예수쟁이로 만들었느냐고 주변 사람들로 부터 손가락질을 당하셨던 어머니는 마지막 가시는 길을 천국으로 인도해달라는 숭인교회 신자님들의 기도와 찬송을 받으셨다.

 

어린 나이에 집을 나가 불가에 입문했던 셋째아들 효림스님은 당시 보광사의 회주스님이었는데 주변은 물론 심지어 상좌스님들께도 비밀로 하고 속가 어머님의 장례를 치렀다.  

그러나 어머니를 위한 마지막 효도로 사십구재 천도재 만큼은 짖접 지내드리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방랑벽을 닮은 우리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집을 뛰쳐나가길 잘해서 어머니의 속을 무던히도 썩혀드렸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고 어느 자식이 효 불효를 따질 수 있겠는가마는, 솔직히 그 중에서도 허락도 없이 월남의 전쟁터까지 자원했던 큰형님이 심했고, 문중 대종손으로 입적했다가 스스로 파양의 길을 택한 셋째 아들이 그 방면으로는 특히 유명했다. 어려서부터 밥 먹 듯 가출을 하더니 결국은 영원한 가출이 출가사문의 길을 걷고 있음에야................

그 길을 또 평범하게 가지 않았다.

일찍이 민주화운동이다 불교개혁운동이다를 하면서 시골집까지, 요즘 다시 말썽이 일고 있는 그 사찰담당 사복형사와 수사관들이 들락거리며 자식이 있는 곳을 말하라는 으름장을 당하기도 했으니, 시골 할머니로서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어머니의 사십구재!   그것은 불효와 회한과 속죄를 덜고 싶은 자식들의 간절한 바램이 포함된 것이었다.

 

 

 

경기도 파주의 천년고찰 고령산 보광사!

조선조 21대 임금 영조와 그 어머니 숙빈 최씨의 애닮은 사연이 깃들어 있는 절. 어느 임금보다 낮은 신분의 생모를 두었던 영조는 성리학을 앞세운 대신들과 마찰을 감수하면서까지 어머니의 묘소 소령원과 이웃한 이곳 보광사에 어실각을 지어 어머니의 위패를 모셨고, 임금 된 자식으로의 효도를 하고자 했던 효심 가득 깃들어 있는 절이다.

 

마침 당시에 효림스님은 큰절 뒤를 한참 올라있는 수구암에서 홀로 기거하면서 [49재란 무엇인가]란 저서를 내어 세간에 보급 하면서 천도재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있었다. 돌아가신 분이나 이승의 유족을 위하고, 삶과 죽음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 주는 사십구재는, 종교를 초월한 의미 깊은 의식이요 깨달음이요 가르침이란 것이다.

 큰스님 모친의 사십구재라고 더 특별했을까. 주지스님이신 일문스님께서 주관해 주시고 보광사의 여러 스님들과, 목산스님 등 이웃 절의 도반스님들까지 참석하셔서 함께 축원해주시고 보광사의 대중들께서도 함께 장엄해 주시니 그 고마움을 어찌 다 하리오.

특히 버스를 내어 고향에서 먼 길을 올라오셔서 함께 축원해 주신 일가친척과 마을 이웃어르신들의 고마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효림스님은 주지스님으로 재임중에 보광사에 많은 불사를 일으켰다. 

어머니의 49재를 집전하고 있는 이곳 지장전도 그 때 낙성된 곳이다.

인자한 부처님의 모습에 어머니의 모습이 함께 겹쳐졌다.

남들과  언성 높여 싸운 일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바로 보살님같은 어머니는 틀림없이 부처님 세상에 드셨을 것이다.

언젠가 아랫사람들이 무시하는 태도에도 항시 웃고넘기시는 어머니에게 화를 냈었던 적이 있었다.

“어무이, 어무이는 바보요? 와 참고만 있는기요? 그런 때는 따끔하게 혼도 좀 내고 뭐라고 큰소리도 좀 치세요.”

“야야, 항상 내가  참고, 쪼매 손해 보고, 양보하고 그래 살거라. 남하고 싸우고 이기고 그래 싸봤자 좋을끼 뭐 있노.”

남과 다투지 말고 바르고 착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살아가라는 생활철학은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글을 배우지 못했던 어머니지만 옛날이야기를 즐겨 해 주셨는데, 나에게 조금이라도 문학성이 있다면 아마도 어머니의 영향이리란 생각이다.

어린 날에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슬픈 동화 한편이 떠올른다.

“새끼들을 품에 안고 키우는 엄마고디(우렁이)는 마지막 살까지 자식들에게 모두 멕여주고 껍데기만 남아각꼬 물에 둥둥 떠내려간단다. 고기 바로 에미의 팔자제. 새끼들이 울면서 '엄마 오데가노?' 하고 물으마 '맛있는 것 사러 장에 간다'카민서.”

 

“어무이 보살님, 인자 고마 무거운 짐 내려놓코 편히 쉬십시오.”

보광사 일주문을 내려오는 오솔길 양지쪽에는 때 이른 쑥이 파랗게 돋아나고 있었다.


                    

             펌글.       다음 블로그- 임공이산님 자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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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35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긴 이유>는 <예수님을 왕으로 만들려는 의도>도 있었음 예언 2015.08.14 136
12834 요 아래 "혁"님의 글을 읽으며 5 fallbaram 2015.08.14 2710
12833 아는 만큼 보인다, 하주민 2015.08.13 135
12832 뉴스타파 - 해방 70년 특별기획 '친일과 망각' : 1부 친일 후손 1177(2015.8.6) 기억 2015.08.13 146
12831 비밀을 감추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 김운혁 2015.08.13 103
12830 재림교회여! ‘독립군 많이 배출한다’고 10만명 학살당한 종교 아시나요? 5 대종교 2015.08.12 332
12829 픽션이거나 논픽션이거나 2 습작 2015.08.12 154
» 어머니 인생 2015.08.12 343
12827 삼겹살과 오징어 11 백근철 2015.08.12 435
12826 "신천지는 반사회적 반인륜적 집단" 폭이 2015.08.12 234
12825 이렇게 가는 것이지 fallbaram. 2015.08.12 144
12824 김균 장로님께 드립니다. 8 말복에 2015.08.12 317
12823 <십일금>을 안낸 결과로, 저주를 받아 수입이 감소한 교인 11 예언 2015.08.12 344
12822 심판의 때에, 부모를 비난하는 자녀 예언 2015.08.12 93
12821 김균 장노님이 읽고 싶어 하는 책입니다. 7 file 헤셸 2015.08.11 407
12820 교인들의 피 같은 돈을 빠라먹는 미주 목사들과 협의회! 3 truesda8 2015.08.11 387
12819 이제야 영화 <국제시장>을 봤다. 내 느낌을 잘 묘사해 준 글이어서 옮긴다. 2 김원일 2015.08.11 350
12818 낸시랭의 신학펀치 - 제13회 '결국 없어질 이 세상, 지키고 가꿀 필요 있나요?' 사과나무 2015.08.11 205
12817 존중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 7 백근철 2015.08.11 261
12816 뉴스타파 - 세월호 참사 1주기 특집 '참혹한 세월, 국가의 거짓말'(2015.4.16) 2 뉴스타파 2015.08.11 160
12815 사탕발림해 놓은 마귀신학 20 가르침 2015.08.11 381
12814 귀신 들린자가 침례를 받을때에 나타나는 현상(침례받기를 거절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글) 1 김운혁 2015.08.11 179
12813 의문 님 "믿음과 선한행위는 일란성 쌍둥이 입니다." 3 계명을 2015.08.11 233
12812 연합회장님께(8월 10일 이메일 발신 내용) 김운혁 2015.08.11 179
12811 제 18회 미주 재림 연수회(동부) file 새벽별 2015.08.10 142
12810 한만선 장노님 8 fallbaram. 2015.08.10 441
12809 구급차 블랙박스서 '사라진 28분'..끊이지 않는 의혹 1 시사인 2015.08.10 210
12808 <교인의 자녀>일지라도 친하게 지내면 안되는 사람 1 예언 2015.08.09 179
12807 교회에 나오면 안되는 교인 1 예언 2015.08.09 193
12806 <재림신문 860호> 목사님, 좀 더 계시면 안 되나요? 1 갈매기 2015.08.09 203
12805 돌발영상 김무성, 노대통령 인정할 수 없다 별나라 2015.08.09 156
12804 도와준다고요? ‘사장님 나빠요’로 안 돼요” 1 맘 대로 2015.08.09 189
12803 "너의 죄를 사하노라." 맘 대로 2015.08.09 187
12802 전용근과 함께 걷는 음악산책 ' 한국사람 ' -김현식 <하모니카> 전용근 2015.08.09 218
12801 전용근과 함께 걷는 음악산책 ' 광화문 연가 ' 이문세 전용근 2015.08.09 166
12800 선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아래 내용에만 부합하면 선지자 된다 김균 2015.08.09 222
12799 <잘못한 교인을 동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멸망을 돕는 것입니다 5 예언 2015.08.08 141
12798 픽션이거나 논픽션이거나 1 2 습작 2015.08.08 224
12797 뉴스타트로 살아나는 사람만 있다더냐? 15 김균 2015.08.08 600
12796 fallbaram 님, 이 분 참 헷갈리게 하네! 계명을 2015.08.07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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