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모 선생과 함석헌 선생을 공부하다가 그 분들에 대한 논문에 실린 글 중에서 인용합니다.(박재순 박사의 글 중)
십자가 속죄신앙도 나의 삶과 유리된 것이라면 객관적, 주술적인 미신이 되고 만다. 나는 가만있고 예수의 피흘림을 믿으면 된다는 것은 미신이라는 것이다. 다석과 함석헌이 속죄교리를 부정했다고 해서 정통신앙인과 무교회교인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다석이나 함석헌이 십자가에서 예수가 의로운 피를 흘린 것이 지닌 의미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을 개별적 자아로 본 서구자유주의신학자들처럼 오늘의 '나'와 2천년 전의 '예수' 사이에 만남이 없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다석은 '나'가 개별적 자아를 넘어서 하나님, 이웃, 우주전체의 생명과 하나되고 상통한다고 보았다. 영원한 나, 신적인 나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일치된 나이고 우주전체의 생명과 하나된 나이다.
그러므로 다석은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의 피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의인의 피가 속죄의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의인의 피는 다 꽃의 피요, 그리스도의 피다. 아무리 악한 세상도 이 피로 씻으면 정결케 된다."(1, 827)
다석의 십자가 신앙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속죄교리가 아니라 개방적이고 참여적인 속죄교리를 가지고 있다. 개방적이라는 것은 2천년 전에 흘린 예수의 피만이 아니라 모든 의인의 피가 그리스도의 피와 함께 또는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속죄와 속량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참여적이라는 것은 제삼자로서 객관적으로 바깥에 있는 예수를 피를 믿으면 구원받는 게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 피흘림에 예수의 존재와 삶에 참여함으로써 속죄의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믿는 사람이 실존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예수의 피는 믿는 사람에게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