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를 본받자.' '예수이 답이다.'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란 질문. 지금껏 계속해서 주변에서 들어왔지만,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내겐, 참 어려운 말들이다. 그러면서도 한마디 하고 싶긴했다. "예수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알아..."
전쟁이 벌어졌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취직이 안 된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이혼을 앞두고 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모름지기 신앙인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삶의 향상을 고민하는 건 바람직한 자세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예수가 모든 것의 답이 될 수 있을까?
예수는 뒤떨어진 시대에 살았다. 그 시대의 아들로서 말했고, 행동했다. 그 가운데 사회통념을 뛰어넘는 여러 논의를 이끌어냈다. 안식일 논쟁 역시 그 가운데 하나다. 사람을 옭아매는 밧줄이 아닌, 사람의 숨통을 틔이게 하는, 사람을 위한 안식일로 그 의미를 전환시켰다. 이는 분명 그 시대보다 한발자국 더 나아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 시대의 아들이었다. 지금 이시대와 2000년전 중동의 간극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 문화/정치/사회가 가지고 있는 콘텍스트(맥락)이 크게 다르다. 2000년전까지 갈 것도 없다. 당장 여성으로서 조선 후기로 간다고만 가정해도 우리가 직면해야 될 사회 부조리는 엄청날 것이다. 왜? 우리는 지금 알게 모르게, 근대화 과정을 거쳐 법치민주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법망 정비를 통해 우리는 개화됐고, 이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눈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미국 대권후보로 언급되는, 미 의회의 유일한 사회주의 버니 샌더스. 그는 지난 25년간 무소속의 길을 홀로 걸어온 사람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정치적 지향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지금' 그가 떠오르고 있는가? 한 기자가 한마디로 표현했다. "시대가 그를 따라잡았다."
이를 조금 달리 말해보고 싶다. "시대가 예수를 따라잡았다."
예수가 진리인가? 그렇다 진리다. 하지만 예수만이 답이란 말에는 부정한다. '과거'의 예수는 우리가 빌 딛고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는 버팀목으로 삼아야한다. '사복음서'의 예수는 우리의 궁극적 '지향점'이 아니다. '21세기' 예수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 난 알고 싶다. 시대의 한계를 벗은 '21세기 예수'는 어떻게 했을까. 그걸 난 오늘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