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중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사진을 찢어버린 여인

by 야생화 posted Sep 05, 2015 Likes 0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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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라, 내 상념이여
금빛날개를 타고 날아가라
가거라,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 불고
향기에 찬 우리의 조국의 비탈과
언덕으로 날아가 쉬어라

요단의 큰 강둑과
시온의 무너진 탑들에 참배를 하라
오, 너무나 사랑하는 빼앗긴 조국이여!
오, 절망에 찬 소중한 추억이여!

예언자의 금빛 하프여
그대는 왜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우리 가슴속의 기억에 다시 불을 붙이고
지나간 시절을 이야기해다오

예루살렘의 잔인한 운명처럼
쓰라린 비탄의 시를 노래 부르자
참을 힘을 주는 노래로
주님이 너에게 용기를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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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ead O'Connor
'아일랜드의 영혼' 으로 불리는 대머리 여가수 Sinead O'Connor! 

그녀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빡빡깎은 머리와 직설적인 말투와 행동을 떠올릴 것이다. 87년 데뷔앨범 [The Lion And The Cobra]부터 2002년 [Sean-Nos Nua]에 이르는 내내 삭발한 헤어스타일, 그리고 언제나 약자의 편에선 적극적인 사회활동 등 뛰어난 아티스트임과

동시에 사회적 '투사'로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Sinead O'Connor .........

 

시디 한장이라도 더 팔기위해 반라의 몸으로 자신을 상품화하는

여타의 가수들보다 얼마나 아름다운 여자인지...

팝 역사를 통틀어 Sinead O'Connor처럼 논란과 이슈를 불러모았던 뮤지션도 드물것이다.

여려보이는 얼굴에 머리 한 톨 남기지 않고 박박 밀어버린 것도 범상치가 않지만,

서정적인 음색으로 포효하듯 노래하는 것하며, 기묘한 패션..

하지만 이런 것들 때문에 그녀가 이슈가 되는것은 아니다. 그녀가 최초로 이슈가 되었던 것은

1990년 미국투어 본공연에 앞서 행해지는 의례적인 미국국가 연주를 거부한데서 시작되었다.

이는 미국 일방의 패권주의에 대한 반기였다. 이듬해에는 걸프전에 대한 비난의 표시로 그래미상 4개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시상식 참여를 거부하여 또 한번 논란의 표적이 된다. 절정은 1992년에 있었다.

미국 티비 생방송 토크쇼 'Saturday Night Live Show'에 출연한 그녀는 무반주로 밥 말리의 War를 부른 뒤

 ‘Fight The Real Enemy!'라고 외치면서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사진을 찢어버린 것이다.

아이리쉬출신인 그녀의 조국 아일랜드의 분리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교황에 대한 반감의 표시였다.

이 퍼포먼스는 티브이를 지켜보던 미국 국민들 뿐만아니라,  전세계 카톨릭신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녀는 삽시간에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논란의 와중에 시네이드 오코너는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밥딜런 30주년 기념 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하게 되는데,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소개멘트가 끝나자마자 관중은 거센함성으로 야유를 보낸다.

이에 시네이드 오코너는 키보드주자의 연주를 제재하며 야유가 잠잠해지길 기다려보

지만 , 그럼에도 좀처럼 관중들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자, 이에 굴하지 않고,  

밥딜런의 노래 대신 밥 말리의 'WAR'를 무반주로 포효하듯 거침없이 쏟아낸다.

 

전사같은 이미지로..그녀의 노래들이 모두 거친 락들 뿐일거라 지레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감수성을 자극하는 노래도 아주 잘한다.  시네이드 오코너의 노래가 훨씬 근사하다


 

구약 다니엘서가 배경인  Nabucco에 나오는 이 노래는,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잡혔던 히브리인들이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이 노래를 부르며 시온을 그리며 미래에 마음을 달래는  내용으로

 

 

한때 음악가가 되려는 희망을 포기하려고까지 했던 베르디가 음악가로서 명성을 떨친 것은 오페라 <나부코>부터였다. 베르디는 첫 오페라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로 호평을 받고, 다음 작품 <왕국의 하루>를 작곡할 무렵 부인과

아들의 연이은 죽음을 겪었다. 낙담한 베르디는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라 스칼라 극장의 주인 메렐리는 재능 있는 작곡가의 좌절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작곡의 의욕이
솟을 만한 대본을 구했다.  메렐리는 <나부코>의 대본을 마련하여 베르디의 책상 위에 슬그머니 두고 왔다.어느 날 베르디는 낯선 대본을 펼쳐 보다가 눈에 번쩍 띄는 구절을 발견했다. 전체 내용은 구약성경 열왕기 하편에

나오는 것으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잡혀간 유대 인들이 박해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그 속에서 조국을 그리며 자유를 구가하는 가사에 빠져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멜로디를 붙여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 비탈과 언덕에서 날개를 접어라
그곳은 부드럽고 온화한 공기, 조국의 공기가 향긋한 곳 맞이하라
요르단 강둑과 무너진 탑,  오, 내 조국, 빼앗긴 내 조국…”


1842년 3월 9일, 밀라노의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된 <나부코>는 때마침 오스트리아의 압정 하에 있었던
밀라노 사람들에게 강렬한 자극을 주었다. 포로 유대인들과 자신들을 같은 처지로 여기고  ‘노예들의 합창’을 국가처럼
불렀던 것이다. 그 노래는 절망과 우수에 빠져 있던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희망의 날개를 달아 주었다. 독립과 통일을 바란 국민들은 베르디를 애국적인 우상으로 삼고, 작품이 나올 때마다 열광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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