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은 가벼운 옷을 입고 소설을 읽고 싶으시다던 스님,
두런두런 소리내어 읽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하시던 스님.
밭에 나가 흙을 만지고 흙 냄새를 맡아 보라고 스님은 자주 말씀하셨지요 .
하나같이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닮은 스님의 수필처럼
불교의 스님이면서도 어찌나 가톨릭적인 용어로 씌어 있는지
수년 전 저와 함께 가르멜수녀원에 가서 강의를 하셨을 때도
왠지 제 자신에 대한 실망이 깊어져서 우울해 있는 요즘의 제게
스님의 이 글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고, 잔잔한 깨우침과 기쁨을 줍니다.
노란 달맞이꽃이 바람 속에 솨아 솨아 소리를 내며 피어나는 모습을
스님과 함께 지켜 보던 불일암의 그 고요한 뜰을 그리워하며
늘처럼 못마땅해 하시고 나무라실까 지레 걱정도 되어서 아예 접어 두고 지냈지요.
'맑고 향기롭게'의 청정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사람의, 더구나 수도자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만 한다면
그 힘든 일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그럴수록 더욱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기도드리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은 사람을 보다 알차게 형성시켜주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런 뜻을 귓등으로 듣고 말아
오늘 우리들이 겪는 일은 조그만 모래알에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옛 성인들은 오늘 우리들에게 큰 위로요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침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던 일을 무엇보다 뜻깊게 생각합니다.
그 동네의 질서와 고요가 내 속뜰에까지 울려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