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의 추억 한 토막

by 추석 posted Sep 24, 2015 Likes 0 Replies 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언제부터 추석이 공휴일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분명히 추석날 학교에 나갔었다.

차례를 지내고 오라는 뜻에서 오전 10시까지 등교했던 기억이다.

(우리 학교만 그랬는지 아니면 전국의 모든 학교가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초등학교 2학년 추석날, 제사가 없었던 우리집은 같은 동네에 사시는 외할아버지 집에서 차례를 모셨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요즈음 아이들에게는 이 말이 별로 실감나지 않겠지만, 먹을 것이 귀했던 그 당시 차례상에 올려진 풍성한 음식은 우리 조무래기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날도 차례를 지낸 후 맛있는 음식을 배터지게 먹고 나서, 또 내 인생에서 본 고구마 중 가장 큰 삶은 고구마 한 개를 먹으면서 학교로 갔다.

큰 고구마를 삶으면 가운데가 덜 익는 경우가 있는데 그날 그 고구마가 그랬다. 고구마 가운데에는 반쯤만 익어 있어서, 씹을 때마다 잇발자욱이 선명하게 나 있었던 기억이다.

 

교실문을 여니 이미 선생님은 수업을 진행하고 계셨고, 내가 거의 마지막이었다.

고구마를 먹으면서 교실로 들어오는 나를 보신 담임선생님은 화를 내셨다. 지각한 주제에 여유 있게 고구마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교실에 들어오는 모습에 화가 나셨을 것이다. 결국 나는 고구마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칠판 옆에 꿇어 앉아야만 했다.

 

잇발자욱이 선명한 덜 익은 고구마를 받쳐 들고 교실 앞에 꿇어앉아 있으려니, 안 그래도 장난이 심한 친구들이 선생님의 눈을 피해서 장난을 걸어왔다.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맞장난을 치다가 선생님에게 걸려서 알밤도 한 방 맞았다.

(얼마나 아팠던지!!)

(장난을 걸어온 녀석들은 안 맞고, 나만 맞았다. 얼마나 억울하던지!)

 

커다란 고구마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칠판 옆에 꿇어앉아서 장난을 치다가, 선생님에게 알밤을 한 방 얻어맞고 아파서 인상을 쓰던 8살 소년의 모습.

학교에 가는 나를 불러서 솥에서 가장 큰 고구마를 골라 손에 쥐어 주시던 그리운 외할머니의 모습.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정겨운 추억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궁금하긴 하다.

왜 그때 추석이 공휴일이 아니었을까?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