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by 김균 posted Sep 27, 2015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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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바빠

 

12년간 독재를 하기 위해

조봉암 같은 선진사상가

상해 임정에 있던 수많은 독립 운동가를

북한으로 좇은 독재자

그리고 친일 앞잡이 노덕술에 의해서 마음이 상해 독립운동가들이 죽도록 한

이 승만을 독립운동가로 변신시키는데

요즘 언론들이 혈안이 되어 있다

바쁘다 바빠

 

김구 이승만

이름 좋아 다홍치마다

거기다가 한 수 더 떠서는

김구는 살인자 이승만은 독립운동가로 변신한다

안 중근도 살인자 이봉창도 살인자

그럼 우리의 역사 가운데 누가 남아 있을까?

유관순도 칼질하는 뉴라이트를 보면서

이놈의 세상 언제 사람 사는 세상 될까 걱정이 앞선다

이런 세상을 우리 후손들에게 넘겨 주면서 아비는 할 일 다했다 할 수 있을 런지,,,,

 

역사는 편견이다

기록하는 자의 장난감이다

그래서 다시 기록하려 노리고 있다

새마을운동을 전파한단다

수십년이 지난 시대적 산물로 새마을운동을 다시 시작한단다

그것도 이름을 바꿔서 창조경제라든가?

바쁘다 바빠

그럼 해야지

그런데 그대들 새마을운동이 뭔지나 잘 아는 분들 몇이나 될까?

 

 

새마을 운동은 농촌근대화운동이자 박정희정부의 종합적 지배 전략이었다.

1960년대 경제개발이 도시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도시와 농촌 간 소득 격차가 현격하게 벌어졌다.

박정희정부는 그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이 점화되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불평등을 적은 수준이나마 해소해야 했다.

1960년대 경제개발이 도시 중심의 근대화전략이었다면,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은 낙후되어 있던 농촌 중심의 근대화전략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새마을 운동을 추진한 배경에는 정치적 의도가 작용하고 있었다.

1971년 박정희는 제7대 선거에서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김대중 후보와 대결해

가까스로 당선되었다. 또한 1971년 선거에서 공화당 의석 비율은 14%나 떨어졌다.

지지율 하락은 도시에서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공화당 지지기반이던 농촌에서도 강원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공화당 득표율은 일제히 하락하였다. 농민들의 소득을 높이고 생활환경을 개선하려는

일련의 사업들은 집권 여당의 표밭인 농촌 지역에서

박정희정부 지지율을 높이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다.

 

또한 새마을 운동은 유신체제 기반 강화와 연동되어 있었다.

새마을 운동은 유신헌법 선포직전에 시작되어

유신체제의 강화와 함께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새마을운동에는 공화당 당조직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는데,

새마을지도자들은 공화당의 세포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로 활용되었고,

농민 뿐 아니라 수많은 지방공무원도 동원되었다.

박정희정부는 농촌에서 새마을운동을 통해 농민층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함으로써

도시 지역 유신반대 여론을 상쇄시키고 이를 통해 집권을 연장할 수 있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1971년 정부는 전국 33,267개 행정 리·동에 시멘트 335부대씩을 지원하여

전 리·동에서 일제히 새마을가꾸기운동을 추진하게 했다.

그리고 초가지붕을 요즘은 암의 원인제공이라는 스레트지붕개량 사업을 벌렸다

새마을사업은 획일화를 요구하는 관변사업이었다

 

요즘 유엔총회에서는 우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전파가 한창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엔본부에서 열린 '개발정상회의 상호대화' 세션을 주재했다.

개발정상회의 상호대화는

1.빈곤·기아 종식

2.불평등 해소, 여성·소녀 역량강화 및 포용

3.지속가능한 경제성장 촉진·변혁, 지속가능한 소비·생산 증진

4.환경보호 및 기후변화 대응

4.지속가능개발 달성을 위한 효과적이고 책임있는 포용적 제도 구축

5.글로벌 파트너십 부흥 등을 주제로 6개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우리 대통령은 '지속가능개발 달성을 위한 효과적이고 책임있는 포용적 제도 구축' 세션을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과 공동주재했다.

 

박 대통령은

"한국은 한 세대 만에 절대빈곤에서 벗어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경험이 우리가 개발목표를 추진하는데 유용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개발분야 제도구축의 모범사례로 경제기획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새마을 운동을 들었다.

 

그러면 농촌이 도시처럼 살기 좋은 곳으로 바꿨나

이건 생각하는 사람들마다 차이가 나는 문제제기이다

 

17년간 한국을 철권통치하다가 극기야 친한 친구 부르투스에게서 총을 맞고 쓰러진

비운(?)의 대통령

권불십년을 비웃듯이 나라를 입맛대로 요리하면서 정적은 과감히 제거하던 대통령

김구를 제거하던 이승만처럼 그는 장준하도 제거했다

고비마다 그것을 피하려고 수많은 가짜 빨갱이를 만들면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사람들은 공을 90으로 여기면 과를 10으로 본다

그건 하늘의 원칙이 아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구경꾼은 필요하지만

그 이룸으로 인해서 억울하게 죽은 영혼은 하나님의 신원하심을 얻을 것이다

그렇다면 억울하게 만든 그 영혼의 결말은 어디일까?

만약 이 시대에 화잇이 살아있고 그가 한국인이라면 1000년기가 지난 후에

하늘 예루살렘을 향해 전열을 가다듬은 장군의 이름이

나폴레옹에서 박정희로 바꿔지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나는 이 두 사람의 독재정치 하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아무리 육체적으로 잘 살게 해 줬다 해도 그 과를 잊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승만이 우리에게 해 준 것 중에 잘 한 것이 뭘까?

그런데 박정희가 나에게 해 준 게 뭘까?

나는 한 사람에게서 아버지를 잃었고

나는 또 한 사람에게서 무언가 얻은 것 없이 내 힘으로 살았다

아 하나 있구나 호남을 여행하면 골목마다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자동차가 잘 상하지 않더구나

이런 것들이 새마을 운동이라면

새마을운동에 얻어먹은 사람은 공화당을 위시한 저들 친구들뿐이지 않는가?

막대한 차관 가지고 와서 저들끼리 나눠 먹은 중국 공산당과 다른 것이 뭘까?

 

이승만이 애국자였다고?

그럼 이 땅에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 애국자적 기질 없이 산 사람 있는지 손들어 보라고 해라

박정희가 경제부흥했다고?

그 경제부흥으로 목숨 잃은 사람들 얼마나 많은지 세어본 적이 있는가?

경제부흥이라는 것이 저들끼리 재벌 되고 사돈되고 한 것 이외에 특별한 것 있는가?

이후락이 말처럼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어 본 사람 있는가?

그래서 저들을 위대하다고 칭찬하는가?

 

영혼을 사랑하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분들이

이런 독재자를 칭송하는 것 보면 정말 구역질나려고 한다

우린 정신줄 잘 간직하고서 예수를 믿기나 하는가?

교황만 욕하면 다 해결되는 게 예언이라고 믿는가?

이런 멍청이 같은 교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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