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식 표현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세력을 비꼬는 ‘련세대학교’ 학생의 대자보가 화제다. 미디어오늘이 대자보를 쓴 연세대학생 A씨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왜 북한 성명서를 패러디한 대자보를 붙였는지 물었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앞과 지하캠퍼스 백양로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벽 등에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관련한 대자보가 붙어 있다. 

대자보의 주인공은 ‘박정희 각하 탄신 98년(서기 2015년) 각하를 존경해 마지않는 련세대학교 학생’이고, 대자보의 제목은 ‘국정교과서에 찬성하는 우리의 립장’이다. ‘련세대’와 ‘립장’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글은 북한의 성명서를 패러디한 글이다.

이 글은 “민족의 위대한 령도자이시며 존엄높이 받들어 모실 경애하는 박근혜 최고지도자 동지께서 얼마 전 력사교과서 국정화를 선포하시었다” “단언하건대, 앞으로 우리 조국에서 쓰여질 교과서는 북조선, 로씨아, 베트남의 국정교과서만큼 영광스럽고 긍지 높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등의 표현을 써가며 국정화 추진세력을 국정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는 북한에 빗대 패러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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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 붙은 대자보. 사진=조윤호 기자
 

이 대자보는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이 대자보를 페이스북에 공유한 한 대학생의 글은 920여 차례 가까이 공유됐다. 누리꾼들은 “오늘만 사는 학생” “경천동지할 불벼락 맞기 싫으니 찌그러져 있어야 겠다” “약 빨았냐, 약 냄새가 여기까지 난다” “약대생인 듯” “아, 올해가 ‘류신(유신)’ 몇 년이었지?” 등의 반응을 보였다. 

대자보를 작성한 A씨는 “지금 국정화에 반대하는 여러 움직임이 있지만 큰 호응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대자보를 썼다”고 밝혔다. A씨는 “어떤 포인트를 잡고 글을 써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층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호응할지 고민하다가 국정화를 추진하는 세력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북한 싫어한다면서 왜 북한 따라하냐’는 비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A씨는 또한 “이런 내용을 그냥 ‘저는 국정화에 반대합니다. 왜냐면 북한을 따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식으로 쓰면 별 감흥이 없을 것 같았다”며 “북한 대변인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하는 국정화가 북한이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알아챌 것이라 봤다. 북한을 싫어하면서 왜 북한을 왜 따라하느냐가 포인트다”고 밝혔다.

A씨의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연세대 학교 곳곳에는 국정화에 반대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지만, 독특한 형식 탓에 이 ‘립장’ 글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앙도서관와 백양로를 지나던 학생들은 하나같이 발 걸음을 멈추고 북한 글씨체로 쓰인 대자보를 읽어 내려갔다. 

A씨는 대자보를 붙이는 과정에 있었던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대자보를 붙이는 걸 싫어하던 경비아저씨가 대자보를 보더니 반색을 하며 ‘학생은 찬성하는 거야?’라고 묻더니 ‘사실 지하에도 붙일 수 있다’고 알려줬다는 것”

보수단체 소속 대학생들은 국정화에 찬성하는 대자보를 붙이기도 한다. A씨는 “그 분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다만 그 분들이 북한식 교과서에도 찬성하는지 묻고 싶다”며 “왜 북한을 욕하면서 북한식 교과서를 따라하자고 주장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A씨는 나아가 “집안 자체가 보수적인 집안이라 나도 고등학생 2학년 때까지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당시에 보수적인 내가 봐도 교과서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며 “그래서 지금 교과서가 좌편향 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국정화 추진에는 학생들을 무시하는 논리도 깔려있다. 교육부는 지난 16일 외신기자를 상대로 한 브리핑 자리에서 “교과서는 지적 수준이 조금은 덜 성숙된 학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학생의 눈으로 이것이 어떻게 인식될 것인가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며 “북한에서 나온 선전문구가 그대로 게재가 되어서 제시되지만, 그 밑에 설명을 붙였을 경우에(도) 학생들은 설명보다 선전문구에 더 많이 동요되게 된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지적 수준이 덜 성숙돼 있어’ 교과서를 국정화해야한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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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학생들이 중앙도서관을 지나며 도서관 앞에 붙은 대자보를 읽고 있는 모습. 사진=조윤호 기자
 

A씨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정부가 학생들을 너무 어린애 취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A씨는 “4,19 때도 그렇고 5.18 때도 어린 학생들이 앞장섰다. 그 때보다 시대가 더 발전했는데도 학생들을 무시하는 건 시대에 역행하는 사고방식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A씨는 대자보를 붙이며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메신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제작년에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퍼졌을 때를 보면 보수세력이 메시지를 못 까니 메신저를 깠다. 대자보를 붙인 학생이 노동당 당원이니 뭐니 하며 결국 본질이 흐려졌다. 그런 식의 전개를 원하지 않아 익명으로 했다”고 밝혔다.

A씨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메신저가 아니라 메시지를 봐달라는 것이다. 나아가 제 또래의 청년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메시지를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며 “때가 되면 왜 이런 대자보를 썼는지 의도와 이름을 밝힐 생각이다. 그 전까지는 메시지에 집중해달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A씨가 쓴 ‘국정교과서에 찬성하는 우리의 립장’ 글 전문.

민족의 위대한 령도자이시며 존엄높이 받들어모실 경애하는 박근혜 최고지도자 동지께서 얼마전 력사교과서 국정화를 선포하시었다.

이는 력사에 길이남을 3.15 부정선거를 만들어내신 위대한 리승만 대통령 각하와 유신체제를 세워 대통령선거 제도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신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가장 숭고한 기쁨과 영광으로 받들어 모시려는 박근혜 최고지도자 동지의 무한한 혜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만불손한 좌파세력은 그 무슨 ‘친일독재 미화’니 ‘유신부활’이니 하는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지껄이며 존엄높이 추앙해 마지않을 민족의 태양 리승만,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깍아내리는 망발을 일삼고 있다.

또한 철천지 원쑤보다 못한 좌파세력은 국정교과서에 대해 “역사교육을 획일화하려는 독재적 발상”이라며 감히 우리 조국의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경천동지할 만행을 저질렀다.

단언하건대, 앞으로 우리 조국에서 쓰여질 교과서는 북조선, 로씨아, 베트남의 국정교과서만큼 영광스럽고 긍지 높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만일 좌파세력들이 지금처럼 국정교과서를 비판하며 우리의 최고존엄을 모독하는 처사를 계속한다면 치솟는 분노와 경천동지할 불벼락으로 본때를 보여줄 것이다.

박정희 각하 탄신 98년(서기 2015년) 각하를 존경해 마지않는 련세대학교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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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지하캠퍼스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 벽에 붙어있는 대자보. 사진=조윤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