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두 눈을 뚫어라

by 제자 posted Nov 19, 2015 Likes 0 Replies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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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두 눈을 뚫어라


예수는 어디로 갔는가?

뚫린 곳은 위뿐이 없다. 그가 갈 곳은 위뿐이 없는 것이다.


고금을 망라하여 한 인간의 영향력에 있어 예수에 견줄 자는  누구도 없을 것이다.

반면 그에 대한 식상함도 그의 인지도만큼이나 편만해있다.


사람들은 진정한 예수에 대해 모르고 있다.


사람들은 십자가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들은 십자가를 추억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어린 양의 죽음’이라고 예언적인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예수가 달렸던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는 현대 교회당으로 이동되어있다.

치솟은 십자가 구조물은 현대종파의 세력화를 이루며 종교문화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사제들과 신자들의 가슴에 치렁거리는 십자가도 아련한 과거를 현재로 이동시켜주고 있다.

고릿적 흐리한 역사를 현장감, 사실감 있게 비춰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십자가는 의미 희박한 타성적 설치물이 되어버렸다.

사람의 주목을 이끌려하지만 X-MAS만큼이나 무덤덤한 상징이 되어 버렸다.


무수한 사람들은 십자가까지는 인식의 공유를 같이 하고 있다.

명망 있는 설교자들도 십자가까지는 달변일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그 이후로는 추상에 빠지고 그 일련의 시선을 놓치고 만다.

현대의 기독교는 여기까지이다.


인간의 이성이 미치는 영역까지만 용납하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까지는 논리정연함도 있고 나름의 통찰도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이성의 영역 밖이 되어 버린다.

그 이후는 실증에서 벗어나 교리라는 막연한 오리무중 속으로 빠져버린다.


십자가 이후의 포착은 순수하고 단순한 아이들만이 누리는 특권적인 시야이거나

갈급한 자들의 집요한 보상 영역인 것이다.


실상 예수의 이야기는 십자가 그 다음부터가 본편이 된다.

사람들은 십자가 다음으로 좀체로 눈을 돌리지 못한다.


제자들이 사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은 십자가 이후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오늘 날 3일후 부활, 감람산 승천, 예수의 현존은 미약하게도 들려오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의 틀에 제약받는 인간의 사고력에 갇혀 인식의 망으로

넘어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이정표일 뿐이다.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현대 에수종파는 여기서부터 전열을 갖추고 가나안을 넘봐야 함에도

형식과 타성에 젖어 끝없이 사막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까지는 따라왔지만 그 이후는 미신적 사관에 치우쳐 있다.

아무리 재림의 소망을 목 놓아 불러도 허구적 가상에 기초한 외침일 뿐이다.


그대의 눈에 예수와 그의 나라가 보이지 않는가?

눈 먼 자들이여! 그대의 잘못된 신앙을 고민하고 명료하고 리얼한 믿음을 가져라.


성경은 역사서나 교양서가 아니다.

성경의 모든 진술은 “지금의 예수”를 나타내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팔과 발을 자르지 말고 그대의 두 눈을 뚫어라.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그리고 믿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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