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검사님, 사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by 울림 posted Dec 03, 2015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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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의 발견]
송경화 기자
송경화 기자
<한겨레신문> 송경화 기자가 ‘검찰의 임은정 검사 적격심사’ 기사(▶바로가기: [단독] ‘우수 검사’ 뽑힌 임은정 검사 내쫓으려는 검찰, 왜?)를 보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옛 추억(?)을 올렸습니다.

지금 정치부에 출입하는 송 기자는 몇년 전 사회부 법조팀 소속으로 법원을 출입했습니다. 과거사 재심 관련 기사를 많이 썼는데요. 그때 송 기자가 의아했던 점은, 나라가 잘못해 배상금을 지불하고 판사들도 사과를 하는데, 이상하게 이들을 기소했던 검찰은 사과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송 기자는 임 검사의 ‘무죄 구형’이 “ 쓸데 없는 정의감에 불타 내부 지침을 어긴” 돌발행동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검사가 직접 나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분들에게 사과하고 ‘우리가 잘못했다’며 토닥거려주는 행동이었다는 겁니다.

송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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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시간 · 수정됨 · 

또 옛날 얘기, 그러나 지금의 얘기라 또 한다.
법원 출입할 때 오늘 내린 눈처럼 펑펑 울었던 적이 두번 있었다.

 

한번은 선배와의 마찰로 짜증나서(슬퍼서가 아니다) 텅 빈 법정 앞 복도에서 꺼이꺼이 울다 위에 씨씨티비가 있는 걸 발견하곤 뚝 그친 적이 있다. 다른 한번은 간첩으로 몰린 억울한 노인 이야기를 듣고서다. 


그 시절엔 가능했던 고문 조작 사건 피해자다.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얘기들이 울먹이는 노인의 입에서 나왔다. 느닷없이 끌려간 지하 조사실에서 통닭구이 모양으로 매달리고, 성기와 손가락에 전기 고문도 받고, 피투성이가 된 뒤에는 '내가 맞소 간첩이요, 북에 가서 김일성도 만났소' 진술하곤 법정에 세워졌다. 


검찰은 수십년의 징역을 구형했고, 15년이 선고됐고, 9년을 살다 나오니 1991년이었다. 내가 출입하던 2010년 즈음엔 '진실화해위' 성과로 과거사 재심이 물밀듯 쏟아졌는데, 나중엔 '재심 무죄'가 너무 흔한 판결이 돼서 기사로도 다 못 썼다. 얼마 있다간, 대법원 판례 변경으로 국가가 이들에게 지급할 피해배상금이 대폭 깎였다. 


납북어부들이 특히 많았는데, 재심 무죄 판결이 나고 나서야 명절 때 고향에 갈 수 있게 됐다며 우는 노인도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선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고향사람들에게 그는 여전히 빨갱이, 간첩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재심 법정은 거의 이들의 한풀이 장소였다. 30여년만에 다시 앉은 피고인석에서 어떤 기억들이 떠올랐을까? 덜덜 떠는 이도 있었고 애써 덤덤한 듯 책상만 보던 이도 있었는데 대부분 '무죄'라는 그 단어에서는 눈물을 흘렸다. 정치인, 연예인 사건에 비해 기자들도 별로 없고 관심밖인 경우가 많았지만, 그들에게 재심 재판은 평생의 억울함을 풀 마지막 과업이자 선물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과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랏돈으로 배상금이 나가는데, 과거 잘못한 사람들에게 구상권이 청구되는 사례도 없었다. 간혹 판사들 중에선 선배 법관의 잘못된 판결로 고통받게 해드려 죄송하다며 선고 전에 일어나 고개를 숙이는 이도 있었지만 검사 중엔 없었다. 그래, 검사는 사법체계상 기소하는 입장이니 어쩔 수 없지 싶었는데, 심지어 구형을 했다. 그래, 검사가 구형권 행사를 포기하는 것도 안맞겠지 하는데, 항소도 했다. 이게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처럼 쌍방 이견을 다투는 재심도 아니고 별 심리, 다툼없이 재판 한두번에 선고되는 경우가 다수였는데도 꾸역꾸역 고법에 보내고 대법에 보냈다. 


그것도 처음에는 안그러다 엠비 정부 중반부 뒤부턴 뭔가 내부 지침이 생겼는지 그러기 시작했다. 사과는 커녕 여전히 (아무리 형식적이어도) 처벌해달라 건너편에 앉아 구형을 하고, 무죄에 이의있다고 항소하는 검사들을 백발 노인들은 말없이 지켜봤다. 과거 자신을 고문한 경찰과 수사관, 중형을 선고해달라 한 검사 얼굴을 잊었다는 노인은 보지 못했지만, 그래 후배 검사들이 무슨 죄겠냐 하며 넘기는 듯 했다.


먼 길 돌아왔는데 그러니까 말입니다, 임은정 검사가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한 건 말입니다, 처음으로 고문과 기소의 가해자 범주에 있던 사람이 정말 처음으로 '당신은 죄가 없습니다'라고 얘기한 그런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단순히 웬 똘기있는 검사가 쓸데 없는 정의감에 불타 검찰 내부 지침을 어기고 사법 체계를 흔들어 징계 대상이 되냐 마냐 차원의 일이 아니고요, 국가에서는 도무지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던 분들께, 기소권, 구형권을 가진 검사가 처음으로 '그래요, 인정해요, 당신들은 죄 없어요, 


그 시절이 참 그랬죠, 우리가 잘못했어요, 지난 시절 이렇게라도 푸세요'하고 토닥거려주는, 그래서 처벌하지 말라고 비로소 재판부에 얘기하는 그런 일이었단 말입니다. 이제 와서 박정희가 사과를 하겠어요, 전두환이 사과를 할까요. 세상이 바뀌어 잘못한 게 없음이 인정됐지만, 거꾸로 잘못한 사람은 없다는 이 '2000년대에 들어선지 한참이 지난' 때에, 노인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내민 건 임 검사가 처음이었습니다. 


모든 검사가 '판사가 알아서 선고해달라'며 책임회피성 구형을 앵무새처럼 할 때, 이에 익숙해진 나는 왜 '무죄'라는 단어가 검사 입에서 나오는 걸 상상해보지 못했을까요. 부끄러워집니다. 많은 노인들이 그 기사를 보고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검찰은 임 검사를 어떻게 징계할까만 골몰하지 말고, 공소시효가 완성됐겠지만 어떻게라도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늉이라도 해보고, '고문' 시절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휘두른 칼에 억울한 사람은 없을지 돌아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페이스북 글 전문)
또 옛날 얘기, 그러나 지금의 얘기라 또 한다.

법원 출입할 때 오늘 내린 눈처럼 펑펑 울었던 적이 두번 있었다. 한번은 선배와의 마찰로 짜증나서(슬퍼서가 아니다) 텅 빈 법정 앞 복도에서 꺼이꺼이 울다 위에 씨씨티비가 있는 걸 발견하곤 뚝 그친 적이 있다. 다른 한번은 간첩으로 몰린 억울한 노인 이야기를 듣고서다. 그 시절엔 가능했던 고문 조작 사건 피해자다.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얘기들이 울먹이는 노인의 입에서 나왔다. 느닷없이 끌려간 지하 조사실에서 통닭구이 모양으로 매달리고, 성기와 손가락에 전기 고문도 받고, 피투성이가 된 뒤에는 '내가 맞소 간첩이요, 북에 가서 김일성도 만났소' 진술하곤 법정에 세워졌다. 검찰은 수십년의 징역을 구형했고, 15년이 선고됐고, 9년을 살다 나오니 1991년이었다. 내가 출입하던 2010년 즈음엔 '진실화해위' 성과로 과거사 재심이 물밀듯 쏟아졌는데, 나중엔 '재심 무죄'가 너무 흔한 판결이 돼서 기사로도 다 못 썼다. 얼마 있다간, 대법원 판례 변경으로 국가가 이들에게 지급할 피해배상금이 대폭 깎였다. 납북어부들이 특히 많았는데, 재심 무죄 판결이 나고 나서야 명절 때 고향에 갈 수 있게 됐다며 우는 노인도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선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고향사람들에게 그는 여전히 빨갱이, 간첩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재심 법정은 거의 이들의 한풀이 장소였다. 30여년만에 다시 앉은 피고인석에서 어떤 기억들이 떠올랐을까? 덜덜 떠는 이도 있었고 애써 덤덤한 듯 책상만 보던 이도 있었는데 대부분 '무죄'라는 그 단어에서는 눈물을 흘렸다. 정치인, 연예인 사건에 비해 기자들도 별로 없고 관심밖인 경우가 많았지만, 그들에게 재심 재판은 평생의 억울함을 풀 마지막 과업이자 선물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과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랏돈으로 배상금이 나가는데, 과거 잘못한 사람들에게 구상권이 청구되는 사례도 없었다. 간혹 판사들 중에선 선배 법관의 잘못된 판결로 고통받게 해드려 죄송하다며 선고 전에 일어나 고개를 숙이는 이도 있었지만 검사 중엔 없었다. 그래, 검사는 사법체계상 기소하는 입장이니 어쩔 수 없지 싶었는데, 심지어 구형을 했다. 그래, 검사가 구형권 행사를 포기하는 것도 안맞겠지 하는데, 항소도 했다. 이게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처럼 쌍방 이견을 다투는 재심도 아니고 별 심리, 다툼없이 재판 한두번에 선고되는 경우가 다수였는데도 꾸역꾸역 고법에 보내고 대법에 보냈다. 그것도 처음에는 안그러다 엠비 정부 중반부 뒤부턴 뭔가 내부 지침이 생겼는지 그러기 시작했다. 사과는 커녕 여전히 (아무리 형식적이어도) 처벌해달라 건너편에 앉아 구형을 하고, 무죄에 이의있다고 항소하는 검사들을 백발 노인들은 말없이 지켜봤다. 과거 자신을 고문한 경찰과 수사관, 중형을 선고해달라 한 검사 얼굴을 잊었다는 노인은 보지 못했지만, 그래 후배 검사들이 무슨 죄겠냐 하며 넘기는 듯 했다.

먼 길 돌아왔는데 그러니까 말입니다, 임은정 검사가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한 건 말입니다, 처음으로 고문과 기소의 가해자 범주에 있던 사람이 정말 처음으로 '당신은 죄가 없습니다'라고 얘기한 그런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단순히 웬 똘기있는 검사가 쓸데 없는 정의감에 불타 검찰 내부 지침을 어기고 사법 체계를 흔들어 징계 대상이 되냐 마냐 차원의 일이 아니고요, 국가에서는 도무지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던 분들께, 기소권, 구형권을 가진 검사가 처음으로 '그래요, 인정해요, 당신들은 죄 없어요, 그 시절이 참 그랬죠, 우리가 잘못했어요, 지난 시절 이렇게라도 푸세요'하고 토닥거려주는, 그래서 처벌하지 말라고 비로소 재판부에 얘기하는 그런 일이었단 말입니다. 이제 와서 박정희가 사과를 하겠어요, 전두환이 사과를 할까요. 세상이 바뀌어 잘못한 게 없음이 인정됐지만, 거꾸로 잘못한 사람은 없다는 이 '2000년대에 들어선지 한참이 지난' 때에, 노인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내민 건 임 검사가 처음이었습니다. 모든 검사가 '판사가 알아서 선고해달라'며 책임회피성 구형을 앵무새처럼 할 때, 이에 익숙해진 나는 왜 '무죄'라는 단어가 검사 입에서 나오는 걸 상상해보지 못했을까요. 부끄러워집니다. 많은 노인들이 그 기사를 보고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검찰은 임 검사를 어떻게 징계할까만 골몰하지 말고, 공소시효가 완성됐겠지만 어떻게라도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늉이라도 해보고, '고문' 시절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휘두른 칼에 억울한 사람은 없을지 돌아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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