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캐롤마저 사치처럼 느껴지는 세밑. 우리를 떠나간, 우리가 떠나보낸 이들을 떠올려본다. 오늘 하루도 3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년이면 만오천명에 가깝다. 이 나라에서 자살은 까마득한 난치병이자 소리없이 거대한 저항이다. 저항의 양식을 잃어버린, 찾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택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정부나 지자체가 자살예방센터를 설치하고, ‘혼자라는 생각말기’ 캠페인 같은 것을 개최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교육부가 주최한 자살예방 UCC 공모전엔 장관이 주는 상금까지 걸려있다. 사람들이 죽음을 택하기 까지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이 섞여있을 게다. 그러나 오늘날 개인들을 스트레스와 절망, 우울로 몰아넣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빈곤과 실업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이다. 이 문제를 간과한 채 이뤄지는 조치들은 모두 기만이다. 죽은 이들은 올 한해 내내 각종 캠페인에 기만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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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노오력’해도 삶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다며 ‘헬조선’을 떠나는 이들도 늘었다. 증가하는 이민자수가 이를 방증한다. 어느 여론조사에선 ‘이민을 구체적으로나 그저 막연하게 생각해봤다’고 답한 이들이 1천명 중 76.4퍼센트에 달했다고 한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엔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근거로 우리를 몰아붙이는 한국 사회에 대한 묘사가 떠나기로 결심한 주인공 계나의 자조적이고 경멸 섞인 고백으로 펼쳐진다. 그가 말하는 가족, 직장, 학교의 풍경은 2015년의 우리에겐 이미 보편적인 풍경이었다.

물론 권력자들은 청년들의 자기 비하와 조국에 대한 조소가 ‘애국심이 부족한 탓’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보다 잦게 걸린 국기, 무궁화나무 심기운동 등 애국심 고양을 위한 온갖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경제위기에 따른 사회의 균열과 붕괴에 따른 냉소에 대한 해결책을 애국심에서 찾는 모습이 참으로 기괴하다.

그러나 ‘헬조선은 모조리 새누리당 때문’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IMF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파고는 김대중‧노무현 집권 10년 간이야말로 매우 거셌다. 김대중 정부는 정리해고제를 도입했고, 노무현 정부는 파견법을 도입했다. 소득불평등와 빈부 격차는 여느 때보다 극심해졌다. 대중들은 이를 몸으로 느꼈고, 진보와 개혁세력에게 ‘복수’했다. 가난하고 학력이 낮은 사람일수록 이명박과 박근혜에게 투표했다.

이런 기성세대의 무능과 기만에 냉소한 이들은 폭력적인 냉소와 자기 비하의 문화를 일베를 통해 체득하고 있다. 나는 또래의 일베 유저들 역시 우리가 잠시 떠나보낸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폭발물 테러, 세월호 유족에 대한 폭력적인 조롱, 사회운동적 견해를 피력하는 연예인, 소설가 등 공인들에 대한 공공연한 사이버 테러에 이르기까지. 상기하고 싶지 않은 야만을 둘러싼 갈등은 여느 해보다 우리를 괴롭혔다.

물론 현실이 절망적이라 해서 냉소하고 떠나버리는 것이 답은 아니다. ‘지옥불반도’에서도 희망을 축조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고 대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이 늘어나야 현실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일터를 지키고, 우리를 대변해줄 정치적인 대안에도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녹록한 일은 아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벼랑 끝으로 내모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맞서 투쟁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등 많은 노동자들은 지금 감옥에 있다. 우리가 더 광범위하게 일어나지 못해 이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감옥에 갇힌 흙수저, 냉소와 환멸에 자신을 내맡긴 흙수저, 이민이나 죽음을 택한 흙수저. 지난 한 해 우리는 함께 현실을 바꾸고 대안을 만들어야 할 많은 이들을 영원히 혹은 잠시 떠나보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 왜 우리는 고작 1년 사이 이리도 많은 이들을 떠나보내야 했을까? 대통령을 성토하는 말을 몇 년째 반복하는 우리에게 질린다. 이제 진짜 중요한 건 우리 자신이 아닐까? 우리가 잠시 떠나보낸 이들, 그들의 빈 자리를 떠올리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본다.

 더 이상 기만 당하고 또 기만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꼭 변해야 한다. 누구도 대신 헬조선의 야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줄 순 없다.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  미디어오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