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기독교회 들 처럼
안식일 교회 도 하나님의 본질과 존재성 을
설명 할때는 혹은 그 역활과 형태 를 정의 할때는
하나님 을 정확히 셋 으로 나누어 구별 하고 있습니다
그러매도 불구 하고 혹 다르게 주장하면
그것은 아마 안식일 교회 조직으로 부터 도태감 에 불과 할겁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안식일 교회 대부분
평신도 들은 헷갈립니다
평신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신학출신 들도
이 하나님 숫자 를 놓고
본질인 유일성 과 다원화 된 개체 에 있어
즉
나눔 과 일체본질 을 놓고
얼마 만큼 시대를 넘어서도
변질없이 이해 하며 스스로 이 교단의
지도자 자격검증 에 합당한 답을 가지고 있는지 에 관하여 는
나도 잘 모르겠습디다.
대부분 평신도 들이
이렇게 생각 하게 된것은
아마도 신학 출신들 의 그 다양한 3위 교육에 따라
천사도 하나님 불도 하나님 바람도 하나님 비도 하나님 이라
불러삿다가 헷갈리고
찾다가 헷 갈리고
그 하나님의 본질로 부터 미아가 되고 말았던지
아니면
어줍잖은 정치계급 사회 처럼 그런 제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계급화 시켜
신앙인 들을 계급속에 굴종 시켜려 했던
그런 이유가 한몫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의 본질인 이런 버거운 신학적 난제 를
풀어놓고 교사 스스로도 혼동 하면서
그 혼동스른 주제를
도리어 무지한 우리 평신도 들의 신앙 자세자격 으로
평가 검증 한다 는것이 얼마나 민망스러운 일입니까.
저는
예수 그리스도 의 본질 을 유일한 하나님 께 귀속 시키는
신앙 을 가진 사람입니다
또 그 그리스도 와 함께 성령 역시
유일 본질에 둠니다
그것은 구약시대 에도 성령이 이땅에 역사 했다 는 뜻이고
그리스도 역시 구약시대 에도 하나님 이시다 는 신앙 고백 입니다
이 말은
3위론 적. 즉 어떤 터툴리언 의 일체적 개념을 넘어서
혹은 칼빈의 3위론 더 나아가 현시대 바빙크 의 그런 신학을 넘어
1체던 3위던 간에 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를
더 절실하게 필요 하다 는것이고 그것이
우리 평신도 들의 생각이고 신앙적 요구라는 것입니다
좀 발칙하고 엇질스런 질문 을 해 볼까 합니다
상당히 모함적인 질문이 될수도 있습니다
왜 기독교회 는 또는 그 신학 조직들은
하나님을 다원적으로 나누어 놓고 그런 분담적
역활 을 맡겨 놓은 이유 에 대하여 설명 하지 못하는가 요 ?
만일 유일한 한분의 하나님 으로는
겷고 십자가 를 감당 할수도 없고
절대 사람을 변화 시킬수도 없고 스스로 인간의 죄 를 용서 할수도 없는
능력의 한계 를 뜻 하는 것인가요 ?
아니라면
그런 분담을 통해 책임저야 할 "창조의 한탄" 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이 필요 했을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이런 풀지못할 신학적 위기를 덮을 하나의 변명 논리 인가요 ?
그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가 어떻게 신의 본질까지 헤집고 좌우지 할
그런 자격 이나 능력이 있습니까
힘써 하나님 을 알아야 할 그 하나님의 본질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안식일 교회 신학 은
거룩한 하나님을 조직의 신학으로 3위 로 일체 시키기도 하고
당위적 분담까지 나누어 역활 시키기도 하면서
진작
더불어 함께 살아야할, 더불어 한 지체가 되어야 할
평신도 신앙인 들 과는 일체도 지체도 될수 없는
이렇게 낯설고 등 돌린 조직 방향 만 만들어 갈까요 ?
우리는 왜 하나님 의 숫자 를 our 이라 말해야 합니까
왜 유일한 하나님 께서 스스로 유일 을 해체 하면서 까지
우리곁에 오셨습니까 ?
나는
하나님 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 한 구절 을 생각 합니다
" 아버지 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느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
한 신앙 속에 하나가 될길. 을 안식일 교회 지도자 들이
제시 하지 못한다 면
겷국 3위 일체 논리 는 여전히 우리를 혼동만 시킬
신학으로만 남겨질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뜬 구름 잡는 조직 속에
신앙 방황 을 하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