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관 장로님를 보내 드리면서 <추모사>

by 전용근 posted Feb 21, 2016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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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년 2월 21일 박신관 장로 추모사 

지난 1월 14일 이틀 전에 사모님을 호스피스로 옮겼다고 말씀 하셔서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다. 

‘ 오늘 새벽에 우리 집사람 갔어. 다행히도 어제 저녁에 온 식구들이 모여 

목사님과 마지막 고별예배를 드렸어 , 

감사한 일이야, 런던에서 손자까지 시간 맞춰 왔으니… 평안히 잠들었어.. 

어찌 위로의 말씀을 드릴 수 없어 잠시 머믓머믓 말을 있지 못했다. 


1월 19,20일 사모이신 김명숙 집사님의 추모 하관 의식을 맞추고 

가족들과 한 주일 지내시고 

1월 28일 장례 지낸 며칠 후에 안부전화를 드렸다. 

‘ 애들이 장례 준비를 얼마나 잘들 하는지 놀랐어 , 

이제 나보고 그 동안 고생하였으니 

옷도 잘입고 나들이도 마음대로 하라고들 하잖아, 허허….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하니 ‘ 우리 아들이 같이 있잖아 , 

그 애가 얼마나 사라드를 맛있게 요리 하는 지 날 그렇게 맛있는 것 처음이야…. 


1월 31일 친구인 정영옥 장로 부부와 우리가 선생님을 모시고 

디즈니 콘서트 홀에서 엘에이 마스터 코랄의 연주인 베르디의 

‘레퀴엠’ 공연을 위하여 만났다. 

장엄하고 숙연한 연주를 몰두하며 혼자서 감상하시는 모습이 

죄송 하고 안 스러웠다. 

한 시간 반의 연주를 마치고 나오시면서 

‘ 오늘 너무 좋았어 날 위한 최고의 연주야’ 하시며 

열흘 전에 먼저 보낸 아내가 

강 건너 있는 모습을 측은히 바라 보는 듯 눈가의 그림자가 서려 있었다. 

밤늦게 홀로서 기다려 주는 이 없는 집으로 향하는 불편한 

발 걸음을 볼 수가 없었다. 


2월 1일 나는 선생님하고 일거리를 하나 만들고자 하여 전화를 드렸드니 

‘ 난 말야, 한국에 조문양 교수하고 연락하여 찬미가 편곡을 해 볼려해, 

전장로도 같이 해보지, 

난 참으로 잘 되였다고 답을 드리고 공부 스케쥴을 잡자고 의논 드렸다.


2월 7일 전화를 아침에 하셨다 ‘ 전장로 , 나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놀랐어, 

아니 내가 이젠 홀아비 잖아’ 

은근히 걱정 하였는데 이제야 자신의 처지를 토로 하시는 것 같아 

어쩔줄을 몰랐다. 

혹시 남자이니까 하며 약간의 의심이 스치기는 하였지만 기우 이였다. 

님을 벌써 돌아 올 수 없는 강가에 발을 내 디디신 것을 늦게야 깨달았다. 

진달래 꽃이 피는 따스한 봄날 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강 건너 가 버린 님을 그리워 

그는 벌써그 강을 건너고 계셨다. 


2월 7일 ‘ 어제 로마린다 교회 같다 오면서 얼마나 피곤한지 죽을 뻔 했어, 

다시는 장거리 드라이브 못하겠어, 그런데 김성래목사를 문병 하였는데 , 

얼마나 좋아 하시는지… 

오 최옥련 집사의 장례식에는 가야 할 것 같아’ 하시면서 


2월 14일 ‘ 전 장로 , 잘 있어 ‘ 네 ,제가 월요일에 나가는데 만나시죠. 

맛 있는 것 같이 드시죠. 

작곡과 편곡에 관하여 여쭈어 배울 것도 있고요’ 

사양 하실 것 같아서 만날 이유를 대면서 약속 하였다. 

2월 16일 바쁘게 시간을 보내면서 오늘 저녁을 같이 하기로 하였다. 

점심을 먹고 회사에 돌아오니 임세봉 목사의 콜을 3번이나 미스하였다. 

급히 전화하니 ‘박신관 장로님이 돌아 사셨어, 나 병원에 가는 길이야’

‘ what you talking about ? 박장노님? ‘ 

어안이 벙벙하여 여러 차례 확인하니 

‘운전중이니 빨리 헌팅톤 메모리얼 병원으로 오라구’ 

허급하게 달려 가서 view room 을 찾아 들어섰다. 

딸들이 울음소리에도 조용히 눈감고 누워 게셨다. 

발가락에 아무게 John Do 란 Tag이 매달려 있고. 

선생님은 아무도 모르게, 매정하게, 

야속하게 밤새 것 돌아 오지 못하는 검은 강을 건넜다. 

요단강을…… 

그렇게 님은 갔고, 

이렇게 우리는 남았다.

………………………………………………….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오 주여 그에게 영원한 평안을 주소서 

Et lux perpetua luceat eis                       영구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Te decet hymnus Deus in Sion,             시온의 하나님이시여 찬송으로 입혀 주소서 

Et tibi redetur votum in Jerusalem          예루살렘의 약속을 이루소서 

Exaudi oretionem mean,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Ad te omnis caro veniet                          모든 육체가 주 앞에 이르리니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Et lux perpetua luceat eis,                      영구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Kyrie eleison,                                        주여 자비를 

Christe eleison,                                     그리스도의 자비를 

Kyrie eleison,                                       주여 자비를 


Agnus Dei                                            하나님의 어린양이시여 

Qui tollis peccata mundi                       세상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Dona eis requiem,                                그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Agnus Dei ,                                          하나님의 어린양이시여 

Qui tollis peccata mundi,                      세상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dona eis requiem                                 그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Agnus Dei                                          하나님의 어린양이시여 

Qui tollis peccata mundi                     세상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Dona eis requiem sempiternam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from Verdi's Requiem>

............................................................................................


‘전 장로 , 잘있어?’ 도도미 레쏠쏠 C major 4/4 박자 ,

느리게 Andante 이다. 


3년전 년초 일게다. 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 전 장로 카스다에 교회 얘기 그만하고 , 다른 것 하면 어때 ? 

‘무엇인데요?’ ‘ 교회음악에 관하여 써 보면 어떨까?’ ‘

전 음악 전공도 아니고 , 아니 선생님이 하셔야 죠’ 

‘ 난 글을 잘 못 써 , 하여튼 해봐 ,내가 도와 줄 터이니’ 

다음 날 글렌데일에서 저녁을 같이 들고 나가면서 

책 한 박스를 안겨 주셨다. 

‘교회가 찬송하나 제대로 못하니 걱정이야 , 

새 찬미가도 나온다 하니 공부해 보라구’ 

이렇게 떠 밀리여 공부하면서 작년에 8회에 걸쳐 

‘ 늘 찬송하면서’를 교회지남에 기고 하게 되였다. 

미숙한 졸필이 나 자신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 

‘더 공부 하여야겠다’ 하는 더 큰 숙제를 남겼다. 

그 해에 평생 만들어 보급하신 CD를 한 박스 내 놓으시고 팔아 

한국에 조문양교수를 초청하여 합창세미나를 마련하여 주셨다. 


2014년 가을쯤에 전화를 하셨다. 

‘ 카스다에 강위덕이란 화가의 그림이 굉장히 좋아 . 

자네가 한번 만나서 한인사회에 우리 교회에 이러한 인재가 있다고 

소개하면 좋을 것 같아’ 

이리하여 작년에 ‘ 안승윤 강위덕’ 작품 전시회를 

6월 3주간 중앙일보 전시실에서 하게 되였다.

은퇴한 나로선 전시자금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 이여서 

동분서주하면서 준비를 하드라도 

상당한 자금이 모자랐다. 

여유 있는 분에게는 큰 돈은 아니지만 빠듯한 나에게는 힘겨웠다. 

전시 한달 전에 같이 식사를 하면서 식사래야 

Food Court 에서 10불 미만 짜리 이지만, 

‘ 돈이 딸려서 큰일 예요, 친구들 한테 빌릴 수 도 없고 , 

전시가 잘되면 수지 타산에 적자는 면 할 것 같은데’ 

자연스레 하소연을 하였다. 

선생님과는 사소한 사생활이라도 부담 없이 나누고 

조언을 듣는 사이였다. 

너무나 검소하여 허례를 모르시고 병상에 계신 

사모님을 돌 보시느라 바쁘셨다. 

식사를 마치고 내려 오면서 나의 어깨를 치시면서’

‘전 장로 , 내가 그 돈 빌려 줄게, 아무도 모르는 비상금이야, 

남에게 비밀이야’ 

너무도 뜻밖에 도움을 주셨다. 

황금 몇 천냥보다 값진 선물 이였다. 

일전 일전을 아끼시는 가난하고 검약한 신사 이셨다. 

교회의 음악과 예술 문화를 사랑하심은 남 다르셨다.


 

오늘 우리는 똑 같은 설문을 듣게 될 것이다.

‘ 다 잠에 들었고 부활에 아침에 만날 것 이라고, 

재림에 소망에 위로를 받고 믿음 준비 하자고 ‘ 

죄가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 이라고’ 매번 듣는 얘기이다.

‘믿는 자에게 위로가 된다’는 체 바퀴 도는 설교를 

오늘 왜 또 들어야 하는가. 

왜 우리는 ‘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인성이 되신 예수님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함이 웬 일인가.

나사로의 죽음에서와 같이

….. 

오늘, 

님의 육신이 말씀이 되는 증언을 우리는 듣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어떻게 울어야 하나 

우리는 어떻게 울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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