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는 오늘도 내 손을 잡고 마을 뒤편 둑으로 갔다. 여전히 복흥네는 보이지 않았다.
휴~
짧은 한 숨을 쉰 누나는 온 마을이 한 눈에 보이는 둑 위에 올라앉았다. 나도 누나와 나란히 마을 쪽을 바라보며 앉았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마을의 가장 위쪽에 대궐처럼 버티고 서 있는 우리 집 기와지붕이다. 그 밑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초가지붕들이 공룡 알처럼 이곳저곳에 둥글게 운집해 있고 그 사이사이로 지렁이 기어가듯 작은 골목들이 실핏줄처럼 여기저기로 흘러가고 있다. 가장 멀리 있지만 우리 동네를 감싸 안듯 제일 크게 버티고 서 있는 당산나무로 시선을 옮겼다. 복흥네가 저 당산나무 아래에서 이 둑으로 쫓겨 난 건 두 달 전쯤 일이었다.
“저 년을 처 죽이지 않으먼 내가 농약을 마셔버릴팅게 알아서들 허시쇼잉. 에라이 화냥년아. 퉤퉤”
마을 회관에서 어른 여러 명이 가을비를 맞아 축축해진 멍석을 들고 와 바닥에 팽개치듯 넓게 깔았다. 그러자 무장댁이 천하에 재수 없는 꼴을 본 듯 복흥네의 몸에 침을 연신 뱉어 가며 욕을 해댔다. 복흥네는 그런 무장댁과 다른 아주머니들의 욕을 들으며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비틀거리며 서 있는 복흥네는 모든 걸 체념한 듯도 보였다. 사람들 틈에 섞여 있다가 어른들의 호통에 후다닥 도망친 우리들은 조금 멀리 떨어진 작은 논둑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뚝 뒤로 몸을 숨기고 고개를 삐죽이 내민 채 세상에 없는 재미난 구경을 놓칠세라 당산 나무 밑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온 마을 주민들이 죄다 모인 듯 했다. 잠시 후 복흥네는 그 멍석에 쌓여 졌다. 그런 다음 사람들은 멍석을 이리저리 굴려대며 몽둥이며 발길질을 해 댔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내 옆의 아이들과 올 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한 살 위인 누나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작은 환호성이다. 하지만 난 점점 온 몸에 한기가 드는 듯 떨려왔다. 복흥네는 멍석에 쌓여 오랫동안 동네 사람들의 발길질과 몽둥이와 돌멩이로 두들겨 맞았다. 그날 저녁 안방에서 들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안채에는 원래 큰 방이 하나였는데 가운데쯤 양 옆으로 열 수 있는 문을 만들어 경계를 만들었다. 순전히 나를 위해 만들어진 또 하나의 방이다. 누나는 아버지가 집안에 계실 땐 안채 쪽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지가 죽을라믄 뭔 짓을 못허겄냐고.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든지 헐 것이지.”
엄마는 혀를 끌끌 찼다.
“의원은 댕겨 갔는가?”
아버지는 오늘 낮 그 소란 통에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었다.
“댕겨 갔구먼요. 저녁에 죽을 쑤어서 갖다 주긴 혔는디 일어나지 못허고 끙끙 앓기만 헙디다. 어이구. 복이라곤 지지리도 없는 년이 저런 꼴을 당허고도 죽어도 마을에서 못 나가겠다는디 어찌를 헌단 말이요.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애초에 마을에 들이지 말자고 안 혔어요?”
“끙~”
“얼굴까지 반반헌디다 혼자 사는 년이라 누구 손을 타도 탈것이라고 혔자나요. 그런디 해필이먼 당신 친구 무장양반이라니......”
아버지의 긴 한숨으로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난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문 쪽에 머리를 바짝 대고 누워 귀를 귀울였다.
“이 사람아 짐승도 자기 새끼 보고 싶어 천리를 달려간다는디 같은 여자 입장에서 복흥네 마음도 좀 생각해 줘야 허지 않겄는가?”
“그거사 알지만 일이 이 지경으로 되니께 괜한 짓을 했다 싶은 거지라우.”
우린 복흥네가 언제 우리 마을에 들어왔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전쟁이 끝나고 오갈 데 없는 그녀가 혼자 이곳에 정착했다는 얘기도 있고 시집을 이곳에 온 뒤 남편이 전쟁 통에 죽었다는 설도 있었다. 전라남도 복흥에서 왔다 해서 복흥네라 이름 지어졌다고 했다. 그녀가 우리 마을에 들어올 때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을 설득해서 작은 초가집을 하나 지어 주었다는 얘기는 이웃 동네까지 죄 알고 있었다. 누나는 우리 동네 사람들 중 절반은 아버지 땅을 빌어 지어먹을 거라고 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복흥네에게 초가집을 지어 줄 때도 마을의 큰 반대가 없었다고 했다. 어쩌면 그런 아버지를 마을 사람들은 존경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복흥네는 우리들에게 있어 천사나 다름없었다. 늘 정자나무 밑에 앉아 있다가 누나가 내 손을 잡고 그 앞을 지나칠 때면 항상 손짓으로 우릴 불렀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큼지막한 복숭아를 턱 꺼내 주기도 하고 때론 주먹밥을 건네주기도 했다. 우리에게 주는 먹을거리들은 어디서 어떻게 구해 오는지 정말로 다양했다. 하지만 복흥네는 절대로 동네 다른 아이들에게는 주지 않았다. 오직 누나와 나에게만 주는 혜택인 것이다. 이유야 알 수는 없지만 난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른 아이들에게 충분히 목에 힘을 줄 수 있었다. 만약 엄마가 혼내지 않았더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누나를 졸라서라도 정자나무 앞을 갔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하루에 딱 한번 허락할 뿐이었다. 늘 그게 아쉬웠다. 항상 말이 별로 없는 복흥네는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 법도 없었으며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하는지 조차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멍석말이를 당한 뒤로 오랫동안 복흥네는 당산나무 밑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과 조금 멀리 떨어진 복흥네 집을 누나와 함께 기웃거려도 보았지만 집안에서는 기척도 없는 것 같았다. 복흥네는 한 달이 다 지나서야 동네 뒤편 둑 위에 앉아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한텐 이유야 어찌 되었건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는 창고를 다시 찾은 셈이었다. 누나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우린 여지없이 복흥네가 앉아 있는 둑으로 달려갔다. 우리가 달려가면 복흥네는 마치 오랜 가족을 만난 듯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반겼다. 그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복흥네의 옷이 하얀 소복 차림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얼굴은 창백했으며 병약한 모습이 완연해 보였다. 하지만 복흥네는 우리와 함께 있다가도 어쩌다 동네 사람이 뚝 옆으로 지나갈라치면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무섭게 표정이 변했다.
“금둥아. 이제 여기 오면 안 돼.”
어느날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가고 있는 복흥네가 잘 익은 사과 두 개를 건네주며 말했다. 누나와 난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왜? 복흥네 이사가?”
“아니. 이제 너희들에게 줄 게 없어서 그려. 그리고......아니다. 암튼지 이제 여기 오면 안 된다. 알았지?”
그 뒤로 복흥네는 한 동안 이 둑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에게 물어봐도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별 소득이 없었다. 누나와 난 복흥네에 대한 정이 많이 들었는지 하루에 꼭 한번 씩은 이 둑에 앉아 복흥네를 기다리곤 했다.
“누나야. 복흥네 진짜 이사 갔는 갑다. 집에도 조용하고 여기도 안 오고.”
“긍게 말이여. 인자 우리 기다리지 말까?”
나는 복흥네에 대한 마음이 허전해 밤이면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누나가 소리를 지르며 나를 불렀다. 복흥네가 왔다는 것이다. 나와 누나는 집을 뛰쳐나와 마을 뒤로 달렸다. 역시 누나 말대로 복흥네는 하얀 소복을 입은 채 항상 앉아 있던 둑 그곳에 있었다.
“복흥네. 진짜로 왔네? 어디 갔다가 온 겨?”
누나와 난 다짜고짜 복흥네 옆자리에 앉으며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뜨개질을 하고 있던 복흥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우린 깜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섰다. 복흥네의 얼굴이 마치 해골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가죽만 남은 얼굴에 광대뼈가 툭 튀어 나왔고 금세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괜찮어. 내가 조금......아파서 그려. 일루 와서 앉아.”
복흥네의 목소리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너희들에게 줄 게 없다. 근디 너희들 나 안보고 자펐냐? 난 많이 보고 자펐는디......”
복흥네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순간 복흥네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괜찮어 복흥네. 우리 먹을 거 없어도 돼. 근디 어디가 아픈 거여?”
누나의 물음에도 복흥네는 대꾸도 없이 나를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날 후로 복흥네는 다시 그곳에 늘 앉아 있었다. 찬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드는 날씨에도 여전히 그곳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염병할 년이 뒈질려면 곱게나 뒈질 일이지 날도 추운디 왜 꼭 밖에 나와서 지랄이여. 지랄이.”
엄마는 저녁때가 되면 금방지은 밥과 국을 쟁반에 담아 복흥네 집으로 가져다주었다. 따라오지 말라며 성화인 엄마 뒤를 졸졸 따라가면 엄마는 복흥네 집 마루에 쟁반을 던지듯 팽개치고 소리를 ‘빽’ 지른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내가 잠자리에 들자 엄마는 아버지에게 하소연하듯 물었다.
“복흥네가 도대체 그 비싼 실을 어디서 사와서 뜨개질을 헌데요?”
“아. 내가 그걸 어찌 알겄는가. 뭐 어디 가서 날품팔이라도 하는 게비지. 험험.”
“아니 그 몸으로 뭔 날품팔이란 말요. 아무래도 어디서 훔쳐 오는 건 아닌지 모르것슈.”
“시끄럽네. 복흥네가 어디 그럴 사람인가.”
“편들기는......”
복흥네는 점점 더 심하게 말라갔으며 주위 사람들은 이제 송장을 치울 때가 됐다고 수근 거렸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복흥네는 더 이상 둑에 나오지 않고 집 마루에 앉아 여전히 뜨개질을 해댔다. 마치 뜨개질에 한이 맺혀 있는 것 같았다. 복흥네의 건강에 심각하다고 여겼는지 엄마는 누나에게 더 이상 나를 데리고 복흥네의 집에 가지 못하게 했다.
“금둥아. 너 이것 좀 복흥네 집에 갖다 주고와.”
복흥네의 얼굴을 본지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엄마는 작은 비닐봉지에 홍시 몇 개를 담아 나를 불렀다. 나는 깜짝 놀랐다. 겨울 방학을 맞은 누나는 친구 집에 놀러 가고 없는데 나 혼자 복흥네 집을 갔다 오라는 것이다. 엄마는 절대로 나 혼자 복흥네 근처에도 못 가게 했었다. 예전에 누나가 없을 때 나 혼자 복흥네가 있는 둑에 혼자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누나는 엄마에게 다리가 부러질 만큼 두들겨 맞았었다.
“나 혼자?”
“그려. 오늘은 너 혼자 갔다 와.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알았지?”
한 번도 나 혼자 복흥네 집에 가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신이 났다. 비닐봉지를 받아 들고 뛰어 가려는 날 엄마는 다시 불러 세웠다.
“금둥아. 그 잠바 벗어놓고 갔다 오그라.”
“잠바요? 왜요? 추운디.”
“오늘은 그렇게 안 추운 게 기냥 갔다 와도 된다.”
잠바가 대수가 아니었다. 신이 난 나는 잠바를 벗어 마루에 던져 놓고 복흥네집을 향해 달렸다. 밤새 하얗게 쌓인 눈이 아침 햇볕에 반사되어 눈이 시려웠다. 누가 부지런을 떨었는지 복흥네 집까지 가는 길 양 옆으로 쌓인 눈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복흥네. 복흥네.”
집에 다다르기도 전에 난 소리를 질러 복흥네를 불렀다. 지금까지 늘 얻어먹기만 했던 내가 내 손으로 먹을거리를 복흥네에게 준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르기까지 했다. 내 소리를 들었는지 복흥네의 안방 문이 활짝 열렸다.
“이거. 이거 홍시여. 엄마가 갖다 주래. 언넝 먹어봐.”
숨을 헐떡이며 마루에 봉지를 자랑스럽게 내려놓았다.
“금둥아. 안으로 좀 들어올래?”
복흥네는 내가 가져온 비닐봉지는 관심도 없는 듯 조용히 말했다.
“안으로? 왜? 엄마는 너무 오래 있지 말라 혔는디?”
“오래 안 있어. 잠깐 들어와 금둥아.”
복흥네는 말할 기운조차 없어 보였다. 방으로 들어가자 바닥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아랫목엔 금방 복흥네가 뒤집어쓰고 있었을 두꺼운 이불이 있었고 윗목엔 어제 밤 엄마가 갖다 줬던 밥과 국이 한 숟가락도 뜨지 않은 채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내가 바닥에 앉기를 주저하며 서 있자 복흥네가 두꺼운 이불을 들추었다. 거기엔 지금까지 복흥네가 뜨개질 했던 털옷이 있었다.
“따뜻하게 데폈어야 허는디 불을 못 때서 내가 밤새 품고 있었어. 조금 따뜻할 것이여. 일루 와봐. 내가 입혀 줄께.”
의아해 하는 내게 복흥네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털옷을 내게 입혀 주었다.
“우리 금둥이 참 이쁘네. 따뜻하지?”
“응. 진짜 따뜻해. 이거 나한테 주는 거여?”
“그럼. 우리 금둥이 앞으로 이거 입고 따뜻하게 잘 지내야 헌다. 알았지?”
“이거 나 줄려고 여태 짠 거였어?”
“그럼. 우리 금둥이 줄려고......”
거기까지 말을 하고 복흥네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멀뚱히 서 있는 나를 꼭 안은 채 한참을 흐느꼈다.
다음날!
아침부터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난 마루로 나가 까치발을 하고 회관쪽을 살폈다. 거기엔 동네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다. 저런 광경은 마을에 큰일이 일어났을 때나 보이는 모습들이었다. 부엌에 있던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와 함께 부랴부랴 마당을 나가고 있었다.
“금둥아 금둥아 큰일났어. 복흥네가 죽어뿐졌데.”
언제 나갔는지 누나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며 소리쳤다. 난 오랫동안 기대고 있던 벽 하나가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가족 하나 없는 복흥네지만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런 저런 지시를 하며 복흥네 장례를 치르게 했다. 엄마 역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음식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장례는 복흥네 집에서 치르게 했다. 마을 사람들 너나 할 거 없이 모두 나섰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가 엄마와 아버지의 두런두런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나도 알고 있어시유. 당신이 복흥네한테 털실을 사다 주었다는 걸.”
“음......”
아버지의 담배 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지 자식 낳아 놓고 복흥으로 갔을 때 난 그래도 얼굴 반반하니 다 잊어 부리고 새 살림 차려 잘 살기를 바랬는디.......”
“어쩌겄는가 이게 지 팔자인가비지.”
“아니 그렇다고 그 눈발에 지 자식 볼라고 여그까지 밤새 걸어온 년이 사람이냔 말여요. 그 거리가 어디라고. 난 몇 년이 지나서 다 잊고 사는 줄 았았는데 말여요. 그게 하도 애처로워 여그 살게 하자는 당신 말에 크게 반대는 안 했지만 이렇게 될 바에야 그때 야멸차도 내 쫓았어야 혔어요.”
“조용 조용 얘기허게 금둥이 깨겄어.”
갑자기 조용해진 목소리를 들으려 문 쪽에 머리를 바짝 갔다 대었다.
“그때 멍석말이 당하고 의원이 그러데요. 장기가 어디가 잘 못 됐는지 맥이 약하다고. 그러더니 점점 안 좋아 지니까 저도 살날이 얼마 안남은 걸 알았는지 금둥이 줄 옷 하나 뜰 생각이라고 나한테 사정을 하더라고요. 털실 좀 사다 달라고. 근디 내가 돈이 어디 있겄어요. 그나마 당신이 몰래 대줘서 저 옷을 만들었지만요.
“다 내가 지은 업보 아닌가 싶으네.”
“복흥네가 당신 대를 이을 금둥이를 낳아 준 것이야 고맙지만 우리가 큰 죄를 지은 것 같아서 가슴이 많이 아프네요. 그제 저녁밥을 갖다 주는디 그러데요. 처음으로 내게 성님이라고 하면서 내일 아침 금둥이만 좀 보내 달라고 하데요. 지 손으로 꼭 털옷을 입혀주고 싶다고 사정을 하더라고요.”
엄마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저 옷을 다 만들기 전까지 죽을 수도 없었다고. 지 자식에게 죽기 전에 털 옷 하나 입혀보고 싶다고 통곡을 하데요. 비밀은 절대 지킬거라면서......그게 얼마나 안쓰럽던지.”
한참동안 엄마의 소리죽인 흐느낌이 들려왔다. 나는 가슴 저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먹먹함이 올라왔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둑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던 복흥네에게 내가 다가가자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겼다.
“오늘은 우리 금둥이 혼자 왔네?”
“응 누나가 친구 만나러가서 몰래 왔어. 근디 복흥네. 그거 다 만들면 누구 줄껀디?”
나는 복흥네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신기한 듯 바라보며 물었다.
“이거? 음......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 입혀 줄꺼야.”
“그게 누구야? 복흥네 시집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아니. 시집은 안 갈꺼야. 그냥 내 가슴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 이 옷 입고 따뜻하게 잘 살라고 입혀줄꺼야.”
복흥네는 행복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었다.
한 겨울 밖에서 소복소복 눈이 내리는 소리가 가슴으로 들려왔다. 나는 조용히 복흥네를 불러 보았다.
“엄마......” 끝. 감사합니다 (김병구)
소설가 김병구 작품인가요?
순창의 복흥면 이라는 곳이 있어서 지명이 낯익어 금방 읽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