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세상 읽기] 과속 사회의 희생양 / 홍은전

등록 :2016-03-28 20:13수정 :2016-03-28 20:53

  • 페이스북
  • 트위터
  • 스크랩
  • 프린트

크게 작게

얼마 전 아버지가 접촉사고를 냈다. 앞에 가던 택시가 급정거를 했지만 대응이 늦었다. “차도 늙고 사람도 늙어 그랬다”는 아버지에게 “안전거리를 지켰어야죠” 했더니 차가 너무 많아서 그런 거 다 지키다간 욕먹기 십상이란다. “그런 걸 안 지키니까 사람이 죽잖아요.” 내 목소리가 떨리자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날은 큰언니와 형부의 기일이었다. 10년 전 고속도로에서 과속하던 트럭이 단속 카메라를 보고 급하게 속도를 줄이다가 차선을 넘어와 언니의 차와 부딪쳤다. 뒤이어 달려오던 두 대의 차가 다시 사고 현장을 들이받았다. 뉴스에서 감흥 없이 흘려보내던 불행이 난데없이 내 집 문을 두드렸던 밤. 두 사람은 결혼 후 한 달 만에 부모님을 뵈러 가던 길이었다.

아버지는 언니의 납골을 하지 않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죽은 자식이 산 자식의 짐이 되는 것도, 산 자식이 죽은 자식을 방치하는 것도 두려웠을 아버지는 죽은 딸을 당신 가슴속에 묻었다. “남의 인생까지 망칠 수는 없지.” 합의금으로 받은 돈을 남은 자식들에게 나눠주며 아버지가 말했다. “죽은 자식은 산 자식 거름이란다.” 분투하던 청춘들이 단숨에 죽어 사라졌는데 원망할 사람 하나 없었으므로 나는 그것이 두 사람의 운명이라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 무고한 죽음을 받아들일 방법이 없었다.

그 죽음을 달리 바라보게 된 것은 세월호 참사 후였다. 나는 문득 내 옆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헤아려보다가 그 수가 적지 않음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건 각각의 운명으로 달려간 듯 보였던 그 죽음들을 하나하나 연결해가자 그것이 ‘헬조선’의 통계들과 무섭도록 일치했다는 것이다. 지인의 가족들이거나 가족의 지인들이었던 그들은 하나같이 젊었고, 병들어 천천히 죽어간 것이 아니라 자살과 산재와 교통사고로 순식간에 세상을 떠났다. 신문에서나 볼 법했던 죽음들이 일상 도처에 육박해 있었다. 나는 그들이 새로 난 고속도로에서 무참히 차에 치여 죽는 고라니들처럼 이 폭주하는 사회의 희생양들임을 깨달았다.

“부모가 무능해서 그랬다.” 아버지의 회한이 고장난 시계처럼 10년째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 나는 두 사람이 자동차가 아이보다 더 빨리 태어나는 사회의 운명을 끝내 피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촘촘하게 과속하는 사회에서 촘촘하게 고통이 전가된다. 제 속도를 고집하며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일은 욕먹기 십상이므로 사람들은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를 몰아붙인다. 더 이상 고통을 전가할 곳 없는 이들이 벼랑 끝에 매달려 있고 위로받지 못한 영혼들이 스스로 몸을 던진다. 죽음이 일상이 되었으나 책임을 추궁하는 일은 부질없다. 위로나 용서는 돈이 합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최저가로 남의 인생을 망치고도 지체 없이 시동을 건다. 산 사람은 달려야 한다.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 야학 교사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 야학 교사
4월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투쟁이 시작되었다. 지난 25일 이들이 서울 마포대교를 막고 느릿느릿 행진을 이어가자, 30분 발이 묶인 이들이 30년간 갇혀 산 사람들을 향해 끔찍한 살기를 뿜어냈다. 그러나 그들은 십수년간 장애인들이 시종 저항해온 것이 바로 이 사회의 야만적 질주이며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대는 그 순간에도 자신들의 목숨이 이 고라니 같은 존재들에 의해 얼마간 연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폭주하는 사회에서 단속을 피하려는 누군가의 꼼수와 속도위반, 그리고 안전거리 미확보 따위가 운명적으로 만나는 날엔 고라니뿐만 아니라 조금 전까지 사랑을 속삭이던 젊고 건장하고 무고한 사람들 또한 살아남을 가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 야학 교사


출처: 한겨레신문 논단

  • ?
    아기자기 2016.03.28 17:54

    그야말로 눈뜬 장님들의 도시군요! ㅠㅠ

  • ?
    난감 2016.03.29 01:08

    이 기사를 저기 옆 집에 좀 갖다 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한 해 자살자가 미국, 이라크 전에서 죽은 사망자보다
    더 많았다는 제티비씨 뉴스를 보고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 ?
    김주영 2016.03.29 02:48
    장애자를 어떻게 대접하는가가 그 사회의 수준의 척도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오케이, 오늘부터 (2014년 12월 1일) 달라지는 이 누리. 29 김원일 2014.11.30 10429
공지 게시물 올리실 때 유의사항 admin 2013.04.06 36679
공지 스팸 글과 스팸 회원 등록 차단 admin 2013.04.06 53689
공지 필명에 관한 안내 admin 2010.12.05 85484
4395 이런 사람에게 의사가 되라고 권해서는 안됩니다 4 예언 2015.01.26 345
4394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2015년 1월 21일 수요일> 세돌이 2015.01.20 345
4393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최저…PK·주부·60대 이상만 남았다 1 경철 2015.01.16 345
4392 박근혜우산.오바마우산,시쥔핑우산,김무성우산,김정은우산........ 7 우산 2015.11.21 344
4391 오늘 아침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진솔한 글 한편 소개합니다. 6 file 막내 민초 2015.08.20 344
4390 건망증 5 김균 2015.05.12 344
4389 [165회] 김창옥의 포프리쇼 - 삶의 새로운 언어를 배워라 11호 2015.04.23 344
4388 김무성 '국민 나태' 발언에 화살.."의원들은 잘사니까" 1 별나라 2015.02.06 344
4387 서강대생, 응답하라 김문수~ 2 맹꽁이 2015.01.17 344
4386 접장님 6 fallbaram 2016.07.05 343
4385 환영 위원회 (Welcoming committee) 12 아침이슬 2016.03.31 343
4384 어머니 인생 2015.08.12 343
4383 아래의 글은 Kasda에서 고송자 님이 '엘렌 화잇은 표절하지 않았다'라는 근거로 올린 글입니다. 1 라이너 2015.05.02 343
4382 예수님의 humanity ( 12 ) - 바로 이것이다. 그래 맞아 사람이 우선이다. 잠 수 2015.02.05 343
4381 질문과 지적에 대하여 11 민초1 2016.08.08 342
4380 하현기선생님 36 대표 2016.02.07 342
4379 내 나이를 나는 사랑한다 / 김미경 나이 2015.06.20 342
4378 부활절 아침과 저녁 3 김주영 2015.04.04 342
4377 "사탄 짓 그만둬라"... 친정엄마의 의절 선언 삼손 2015.03.19 342
4376 재림교 6대 DNA 교리들의 명암을 뚫어본다 (8) 예신문제 4 16 민초1 2016.08.10 341
4375 제발 부탁: Mr. 박진하 관련 글들 김원일 2016.03.08 341
4374 개신교 단체, 서울시에 '봉은사역' 역명 철회 요구 2 만일 2015.02.26 341
4373 "이성간의 우정"에 일침을 가하면서 7 fallbaram 2015.02.26 341
4372 < 충격속보 >일본의 경제평론가가 본 한국의 경제구조 빛좋은개살구 2015.01.26 341
4371 교회를 향한 호소 파수꾼과 평신도 2015.01.23 341
4370 스물 다섯살로 돌아가고 싶어요? 12 fallbaram 2015.07.07 341
4369 파리 참사 제대로 이해하기 7 김원일 2015.11.15 340
4368 사순절 (Lent) 4 김주영 2015.02.22 340
4367 연합회발 유언비어 3 - 누가 한 말인가? 증거의 가치가 있는가? 단장 2015.02.21 340
4366 한나라당 대선불복과 막말 총정리 2 하와이 2015.02.09 340
4365 "안식후 첫날"(X) 오역, / " 주일중 첫날"(O)올바른 번역 김운혁 2014.10.23 340
4364 엘렌 하몬 화잇의 신학 (제 8장) 2 fallbaram. 2015.05.18 339
4363 박근혜의 진짜 영어 실력 2 허영 2015.03.29 339
4362 제1부 38평화 (제16회) (3:30-4:30): "소련의 북한 진주 후 독자 정부 수립까지의 격동의 상황" 김영미(사단법인 뷰티플하트 대표) / 제2부 평화의 연찬 (제154회) (4:30-6:00): "그리스도인의 참 자유란" 김한영(성남중앙교회 장로) (사)평화교류협의회[CPC] 2015.02.20 339
4361 - 여자와 남자의 생각 차이 - 여남 2015.02.08 339
4360 "대통령 되면 내가 이거 다 할 겁니다." "공약은 반드시 이행하겠습니다." "나의 장점은 신뢰입니다." "지킬 수 있는 것만 공약으로 내놨습니다" 5 file 신뢰 2015.02.03 339
4359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2015년 1월 14일 수요일> 세돌이 2015.01.16 339
4358 My pride 9 justbecause 2015.09.18 338
4357 십자가 앞에서 자빠지지 못하는 성도들 7 김균 2015.07.28 338
4356 내가 동성결혼식에 꽃을 팔지 않은 이유 7 야생화 2015.06.28 338
4355 미안해 여보! 나사고쳤어. 8 fmla 2015.04.23 338
4354 예수님께서는 <민초스다에 있는 오류에 빠진 자들>을 어떻게 대하실까? 4 예언 2015.02.24 338
4353 친일파 후손의 역습. 1 역습 2015.01.31 338
4352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2015년 1월 28일 수요일> 세돌이 2015.01.31 338
4351 7살 소녀가 경찰서를 찾아간 이유.jpg 2 ... 2015.01.30 338
4350 치유...??? 아~~~ !! 의미 없다 !!!! (이것도 무례한건가...??? 여러분들이 판단하시길...^^) 10 김 성 진 2016.07.20 337
4349 이현세·박봉성·허영만…하위 장르를 문화 중심에 올려놓다 시사 2015.05.06 337
4348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2015년 2월 16일 월요일> 세순이 2015.02.15 337
4347 진짜 세 천사의 기별과 복음 하주민 2015.02.15 337
4346 제1부 38평화 (제13회) : "미군정시대(美軍政時代)"(김영미 집사 신촌영어학원교회)/ 제2부 평화의 연찬 (제151회) : "하나님께서 오늘의 작은 모세인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 - 신명기 1~4장까지의 말씀을 오늘의 기별로 바꾸어 이해하기” (최창규 장로 (사)평화교류협의회 상생공동대표) file (사)평화교류협의회[CPC] 2015.01.29 337
4345 무인비행체 드론........... 언제 어디서든 '찰칵'..셀카 찍는 '드론' 드론 2015.01.17 337
4344 그리스도 우리의 의- 개혁의 모든 기초 루터 2014.12.03 337
4343 정말 미안하고 창피하지만 9 fallbaram. 2016.07.19 336
4342 이상구 박사님 주장에 대한 반대 의견 8 가르침 2016.06.13 336
4341 말씀 좀 여쭈어보겠습니다. 11 scott 2016.05.13 336
4340 봄이 깨지는 소리 17 fm 2016.03.31 336
4339 오늘은 세월호 참사 발생 500일 째 되는 날. 만일 영남삼육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가 사고를 당해 몰사했다면...... 32 세월 2015.08.27 336
4338 요나가 화를낸 진짜이유 26 Yerdoc85 2015.07.24 336
4337 만나의 맛 3 김균 2015.07.14 336
4336 재림군인 조성민 군, EFMB 휘장 획득 ‘화제’ ...... 한국군 최초 우수야전 의무휘장 받아 뉘우스 2015.05.09 336
4335 Gender: Ellen Harmon White (American Prophet) 5 아침이슬 2015.05.07 336
4334 "꽃다운 나이에.. " 세월호 판결문 낭독 판사 울컥, 울음바다된 재판정 1 2015.04.27 336
4333 물을 많이 마시면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은? 일상 2015.03.19 336
4332 <WSJ> "한국 가계부채, 7년만에 최고 속도로 증가" 배달원 2014.11.23 336
4331 너무 잘난 척 하면 이렇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5 김균 2016.08.03 335
» 안식일, 안식교, 안식: 안식교 목사님들 제발 이런 글 좀 읽고 설교 하삼. 무엇이 우리를 죽이는가. 3 김원일 2016.03.28 335
4329 다시 찿아서 온곳 8 sula 2015.08.27 335
4328 왜 여자는 예배 때 머리를 가려야 하는가? 1 위티어 2015.05.04 335
4327 "오직 성경" 같은 소리: 엘렌이 뭐가 어때서--"원숭이 똥구멍"에서 엘렌까지 6 김원일 2016.08.31 334
4326 KASDA 운영진이 하는 모조심판 (특정인이 배제된 수정 글) 6 김호성 2016.08.06 334
Board Pagination Prev 1 ... 158 159 160 161 162 163 164 165 166 167 ... 225 Next
/ 225

Copyright @ 2010 - 2016 Minchoquest.org. All rights reserved

Minchoquest.org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