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식을 아시나요?

by 옛날 생각 posted May 01, 2016 Likes 0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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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한 내음 풍기는 정체불명의 식물

  • 이현수 소설가

 

[이현수의 도란도란 식탁] 가죽장아찌&가죽자반

내게 작은 뜰이 있다면 그곳에 호두나무와 가죽나무를 심겠다. 세월이 흘러 무성한 나무 그늘 때문에 식용으로 쓸 나무가 단 한 그루만 허용된다면 한 치도 망설임 없이 호두나무를 베어 내겠다. 호두가 얼마나 좋은지 너무도 잘 알지만 나는 가죽나무를 선택할 것이다. 가죽은 널리 먹는 음식이 아니라 아는 사람만 끼리끼리 먹는 천하 귀물이기 때문이다.

가죽나무는 참가죽과 개가죽이 있는데 식용으로 쓰는 것은 참가죽나무다. 3~6월에 올라오는 햇잎을 따 나물로 쓴다. 나는 충북 영동 출신인데도 방 안 풍수여서 산속에선 그 둘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가죽나물은 시장에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물건이므로 부지런해야 된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가죽나물이 여러 채소 가운데 이물스레 섞여 있으면 횡재한 기분이다. 그리하여 보는 족족 사들인다. 어느 해는 가죽을 사러 경북 청송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 가죽으로 만든 건 뭐든 맛나지만 하이라이트는 단연 가죽자반(가죽부각)이다.

내가 가죽자반과 처음 대면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니 평소에 못 보던 것이 빨랫줄에 줄줄이 걸려 있는 게 아닌가. 두릅보다 크고 시래기보다는 작은, 정체불명 식물이 붉디붉은 찹쌀 풀을 덮어쓴 채 마당에서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었다. 겉이 반질반질한 게 맛나 보여서 한입에 넣었더니 오, 그 신이한 맛의 세계라니!

첫맛은 달고 쓴맛이 느지막이 올라오는데 쫀득한 찹쌀 풀이 혀를 넓게 감싸며 쓴맛을 지그시 눌러주었다. 마지막에 느껴지던 가죽의 오묘한 향취! 가죽자반의 맛이 절정일 때 먹었던 것이다. 가죽자반은 곶감과 비슷하다. 꾸덕꾸덕 덜 말랐을 때 가장 맛나다. 반건시를 생각해보라. 그 뒤 사찰에서 가죽자반을 먹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이때만큼 나를 사로잡지 못했다. 완전히 마른 데다 고춧가루와 물엿을 넣지 않아서 가죽의 쓴맛이 지나치게 강했기 때문이다.

가죽은 맛이 쓰고 떫으며 성질이 차다. 중국 당나라 진장기(陳藏器)의 '본초습유(本草拾遺)'에는 간과 대장, 위장에 좋고 항균, 항암 작용을 한다고 쓰여 있다. 사찰에선 오래전부터 가죽으로 만든 음식을 다양하게 먹어왔다. 가죽의 매력, 가죽의 향취, 가죽의 오묘함에 관해 자세히 쓰려면 원고지 백 장도 모자란다. 짧게 표현하면 몰래 감춰뒀다가 미운 이는 절대 안 주고 예쁜 사람한테만 내어주고 싶은 것이 가죽자반이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

1: 연한 가죽 줄기를 끓는 소금물에 데쳐 꾸덕꾸덕 말린다. 2: 흰 찹쌀 풀(찹쌀가루+물)을 쑤어 가죽 줄기 겉에 고루 바른 후 3~4일 말린다. 3: 2를 한 번 더 반복 4: 붉은 찹쌀 풀(물에 푼 찹쌀가루에 고운 고춧가루+소금+물엿+통깨)을 쑤어 가죽 줄기 겉에 고루 바른 뒤 햇볕에 말린다. 이렇게 완성된 가죽자반을 참기름에 굽거나 낮은 온도의 기름에 튀겨 투박한 옹기나 도기에 담아내면 된다. 단 나는 가죽자반이 반건조 상태일 때 잘라서 그대로 먹는다.

가죽의 향을 온전히 느끼려면 장아찌로 먹는데 봄에 나오는 연한 잎으로 담그는 게 좋다. 초여름에 나오는 가죽은 잎이 세서 소금에 절이기 때문에 짜기 십상이다. 가죽은 두툼하게 묶인 단으로 한 단 사서 담그면 4인 가족이 먹기에 알맞다. 씻어서 물기를 뺀 가죽나물에 고추장+고춧가루+다진 마늘+참기름+매실액+진간장+깨소금+물엿을 넣고 버무린다. 이때 고추장과 진간장 염도에 주의할 것. 간이 짜면 가죽 본연의 풍미가 떨어진다. 가죽장아찌는 바로 먹거나 두고 먹어도 좋지만 눅눅한 장마철에 먹으면 가죽의 톡 쏘는 향이 입맛을 제대로 돋운다.

마지막으로 가죽장떡이 있다. 한때 소설을 포기하고 가죽장떡 백반집이나 열까, 그것이 국가에 더욱 이바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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