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G. 화잇에 대한 단상(1)

by 희망돌이 posted May 12, 2016 Likes 0 Replies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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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ventists들에게 엘렌 G. 화잇은 누구시길래?


최근까지 점철되어온 논쟁의 주제는 그분의 선지성 혹은 절대성이다.

논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바울도 그의 선지성 (사도성)으로

다니는 교회마다 그에 대한 논쟁은 뜨거웠다. 그도 가는데 마다 문제에서 자유로울 없었다.


전문적 신학자들의 전유물인 문제제기 그에 대한 문제해결 방식으로 지금까지 미제로 남아있다

아마 영구히 Adventists들이 안고 가야 숙제일 지도 모른다.

그녀에 대한 신학적 정치공학적 접근만이 있었지 실재 그녀의 삶이랄까


 시대 살아간 여인의 치열했던 세월과 , 고뇌에 대해서는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 지를 깨달았던 적이 있다

어린 시절에 겪은 상처, 가난, 자식들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모성, 남편과의 끊임없는 노선 투쟁

교단과의 마찰 등등 이루 헤아릴 없는, 여인이 감내하기에는 버거운 그런 말이다. \


요즘 들어 나는 말보다 삶을 더욱 들여다보게 된다. 적어도 나에게로 향한 자세이다

날뛰는 말보다 , 영혼에서 새어 나오는 향내가 더욱 중요하다고 다잡는다

그래서 히브리 언어는 추상적이지 않고 실제적이다

그녀의 살에서 나는 냄새, 살이 삼켜져 삶이 되는 그녀의 실존의 여정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적어도 나에게 그녀는 마음 속의 덩그러이 피는 서정주의 누님 같은 송이 국화꽃이다.


그녀의 밥상에는 고아와 가난한 자들이 동석했었다

비록 가난한 환경에서도 그녀의 밥상은 공동체 밥상이었고 

지역에서 버림받았던 고아와 과부가 차지할 권리를 누릴 있는 밥상머리였다

이 지점에서 나는 한 동안 멍해졌었다

내 밥상에는 누가 앉았었고 앉아있고 앉아있을 것인가?

일상으로 자신의 밥상머리에 3자를 평생 앉힌 자세는 누님 같은 분이라고 있다

산업화 시절,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봉제공장에서 철야를 하며 집안을 건사시킨 

우리의 누님네들처럼 그녀는 그렇게 레위기를 몸소 실천하셨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 Adventist들에게 그분의 밥상머리는 매우 도전적이고 머리를 떨구게 만들지 않는가

우리들은 먹거리 문제로 지난 100년을 허비했지 그녀가 보여줬었던 밥상머리의 권리를 만들고 실천했더라면 

 그분이 우리에게 친근해지지 않았을까?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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