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ntists들에게 엘렌 G. 화잇은 누구시길래?
최근까지 점철되어온 논쟁의 주제는 그분의 선지성 혹은 절대성이다.
이 논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바울도 그의 선지성 (사도성)으로
다니는 교회마다 그에 대한 논쟁은 뜨거웠다. 그도 가는데 마다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전문적 신학자들의 전유물인 문제제기 또 그에 대한 문제해결 방식으로 지금까지 미제로 남아있다.
아마 영구히 Adventists들이 안고 가야 할 숙제일 지도 모른다.
즉 그녀에 대한 신학적 및 정치공학적 접근만이 있었지 실재 그녀의 삶이랄까
한 시대를 살아간 한 여인의 치열했던 세월과 한, 고뇌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 지를 한 때 깨달았던 적이 있다.
어린 시절에 겪은 상처, 가난, 자식들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모성, 남편과의 끊임없는 노선 투쟁,
교단과의 마찰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한 여인이 감내하기에는 버거운 그런 삶 말이다. \
요즘 들어 나는 말보다 삶을 더욱 들여다보게 된다. 적어도 나에게로 향한 자세이다.
날뛰는 말보다 내 살, 내 영혼에서 새어 나오는 내 향내가 더욱 중요하다고 다잡는다.
그래서 히브리 언어는 추상적이지 않고 실제적이다.
그녀의 살에서 나는 냄새, 살이 삼켜져 삶이 되는 그녀의 실존의 여정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적어도 나에게 그녀는 마음 속의 덩그러이 피는 서정주의 내 누님 같은 한 송이 국화꽃이다.
그녀의 밥상에는 늘 고아와 가난한 자들이 동석했었다.
비록 가난한 환경에서도 그녀의 밥상은 공동체 밥상이었고
지역에서 버림받았던 고아와 과부가 차지할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밥상머리였다.
이 지점에서 나는 한 동안 멍해졌었다.
내 밥상에는 누가 앉았었고 앉아있고 앉아있을 것인가?
일상으로 자신의 밥상머리에 제 3자를 평생 앉힌 그 자세는 내 누님 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화 시절,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봉제공장에서 철야를 하며 집안을 건사시킨
우리의 누님네들처럼 그녀는 그렇게 레위기를 몸소 실천하셨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 Adventist들에게 그분의 밥상머리는 매우 도전적이고 머리를 떨구게 만들지 않는가?
우리들은 먹거리 문제로 지난 100년을 허비했지 그녀가 보여줬었던 밥상머리의 권리를 만들고 실천했더라면
좀 더 그분이 우리에게 친근해지지 않았을까? 자문해본다.
희망돌이님.
그녀의 밥상에 흑인들도 초대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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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예의 주인들은 자기들의 무지 가운데 가두어 둔 노예들의 영혼들에 대하여 책임 져야 할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노예들의 죄악들이 주인에게 전가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지 가운데서 타락하여 하나님과 성경에 관하여 아는 바가 없으며 주인의 채찍밖에 두려워 할 줄 모르고 짐승보다도 더 낮은 수준에 있는 노예들을 하늘에 들이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정심 많은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취급하실 것이다. 반면에 주인들은 마지막 일곱재앙을 만날 것이며 둘째 부활에 다시 일어나 고통을 받다가 마지막 비참한 죽음을 당하여야 할 것이다"(엘렌 지 화잇, 초기문집, 시조사,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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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계시?
흑인을 짐승과 동일하게 취급한 화잇의 망언이 하나님이 그에게 내린 계시라면 하나님은 또라이다.
화잇의 인권의식은 당시 백인목장주가 흑인을 대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것 없다.
흑인노예를 개,돼지 취급한 백인들 반대편에는 그들의 인간해방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다.
화잇이 흑인을 개,돼지 취급한 백인편에 속했다니 그의 무지와 저급한 인간애가 놀랍다.
화잇의 가치판단 기준은 오로지 백인과 미국에 한정되었다는 말이 사실임을 새삼느끼게된다.
하나님의 뜻이
흑인 노예를 개,돼지 취급한 화잇 같은 사람에게 있을까.
흑인을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고 노예 해방과 그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게 있을까?
흑인은 개,돼지가 아니고 백인과 피부색이 다를 뿐이다.
개,돼지보다 못해 하늘에 들이지 않겠다....해 놓고
뒤이어 바로
동정심 많은 하나님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화잇은 하나님을 또라이 취급했다.
150년 전 많은 국가와 민족이 하나님과 성경,기독교에 대하여 몰랐다.
이들은 몽땅 하늘에 들일 수 없는 개,돼지 보다 못한 존재였다는 말이다.
우리 할아버지,할머니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그 할머니의 어머니....모두가
개,돼지 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 순간이다.
내 할아버지,아버지도 당연히 개,돼지에 포함된다(화잇에 의해)
노예 해방을 위해 노력했던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선지자다.
인류애,인권 인식에 있어 화잇은 그저 무지하고 편협했던 백인 여자다.
"인내 천" 사람이 곧 하늘, 인간 해방을 선언한 동학의 최제우(손병희)가 화잇보다 100배는 선지자다.